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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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어느 날 내리기 시작한 빨간 비가 회색 눈으로 바뀌면서 온 세상을 뒤덮었을 때, 사람들의 웃음은 사라졌고 거리에는 시체가 발에 채일 듯 나뒹군다.
통제된 정보 속에 남겨진 소문은 단 하나.
그게 온다고 한다.

179부터 시작하여 0으로 마침표를 찍는 이야기.
책 제목인 `날짜 없음`을 대입해 이 책이 180일 간의 일기라고 생각하면 아마 해인과 반과 그가 만나온 날이 180일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 변했고 다시 변하려는 날 함께 있는 것들.
종말을 연상하는 그것이 주는 감정들이 `그게 온다고 한다.`는 반복되는 문장으로 책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전염병이 도는 거리나 버려져 황폐화된 도시처럼 죽음이 줄곧 감도는 세상에서 점점 해골이 되어가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떠나는 회색인들을 무서워하고 피한다.
홀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회색인의 피리 소리는 반과 함께 이곳에 남기를 선택한 해인과 그에게는 유령이나 귀신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보통의 재난 이야기같은 것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생존을 향한 집착이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죽음처럼 회색 눈에 덮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마저 포기한 채 그것을 기다릴 뿐이다.

해인은 그와 자신이 과거보다 미래가 더 많은 오래되지 않은 연인이기에 남은 것이라 말한다.
서로에게 해줄 이야기나 서로를 향한 호기심이 남지 않았더라면 추운 컨테이너 속에서 회색인의 유혹에 버틸 수 없었을 거라 한다.
그게 좋았다.
이게 사랑 이야기라면 가장 좋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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