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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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고등학생 도무라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체육관 피아노로 조율사를 안내하는 일을 맡는다.
조율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도무라는 조율사 이타도리가 피아노 건반을 조율하는 장면을 보면서 숲을 떠올린다.
걸어가기엔 겁나는 밤에 가까운 시간, 가문비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정결한 숲, 고요하지만 숲속의 모든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풍경.
그 소리가 내는 경치를 본 후 도무라는 이타도리를 따라 조율사가 되기로 한다.

<꿀벌과 천둥>을 볼 때도 느꼈지만 소리를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애통하다.
<꿀벌과 천둥> 속 피아노 연주가 이끄는 곳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총 천연의 빛이 있었다.
그 압도적인 기량으로 자신이 도달한 곳의 다채로운 빛을 음악을 꺼내어 생생하게 재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과 강철의 숲>의 피아노 소리가 다다를 곳은 마치 어둠 속의 오로라처럼 정적 속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숲이다.
전자가 하늘과 같다면 후자는 물과 같다.
둘다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음악은 아름다운 체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좋다.
조율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이 또한 아름다움의 경지와 맞닿아 있는 일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꿀벌과 천둥>이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떠올리게 한다면 <양과 강철의 숲>은 단연 ‘피아노의 숲’이다.
꼭 하나의 세트같은 두 작품을 큰 차이 없이 잇달아 만나 다행이다.
양털 해머로 강철의 현을 두드렸을 때 음악이 이끄는 세계로 향하게 된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소소하지만 따뜻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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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세상에 대한 공포로 인해 망설임과 함께 태어났던 아유무는 분노로 가득찬 누나 다카코를 이해하지 못한다.
누나로 인해 긴장감이 감도는 집안에서 늘 착한 아이 역할을 맡으며 자라온 아유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가고 변해간다.
아유무, 다카코, 엄마, 아빠, 야곱, 스구, 나쓰에 이모, 야다 아줌마, 고가미.
‘사라바‘는 그 모두로 인해 채워져 이내 완성되는 하나의 책이자 말이다.

그저 시시한 한 사람의 일대기라고 보면 좋은 이 책이 나오키상 수상작이 된 것에 이의 없이 진심으로 동조한다.
이 책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졌으면서 <천국에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게 만든다.
파스텔 빛으로 뒤덮여 끝까지 덤덤하게 따뜻한 말들을 펼쳐 놓았음에도 그 강렬했던 책과 맞먹는 날카로움을 담은 이야기다.
요컨대 이 유약하고 도망다니기 바쁜 아유무는 바로 나인 것이다.
언제나 정해진 규율에 반항하지 않고 수동적인 모습이, 또는 골치아픈 형제로 인해 골머리를 썩는 면이,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쉽게 감화되어 영향을 받고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면서도 유지하지 못하는 게, 후회하고 실망하며 나아가지 못하고 그 같은 죄책감을 하나씩 주어 담고 도태되고 마는 부분이, 혹은 모든 걸 아는 척 하면서도 정작 아무 것도 몰랐던 걸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서 깨닫는 것이, 그것도 아니라면 빛나는 이름을 갖고 전혀 반짝이지 못하는 점이.
그 모든 모습의 아유무가 자꾸 내가 가진 같은 색의 비밀을 추궁하는 것만 같다.
나도 저랬었지, 저런 식으로 살아와 이렇게 되었지 같은 마음을 만들어 낸다.
책을 읽는 사람 모두에게 있을 작은 조각들을 건드리면서 말한다.
이란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자란 아유무가 평범한 모두와 다르지 않음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나는 이 책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라바‘에 담긴 믿음처럼 나의 인생에도, 내 책에도 그러한 안정이 찾아들 것을 공감한다.
묘하다.
책의 결말이 구원이라는 건 낯설다.
엄밀히 말하면 말 자체의 구원이 아니지만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을 믿는 것,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인 셈이다.
종교이자 신탁이자 점이자 믿음인 것, 좌우명이나 가치관이고 모든 것의 뿌리, 살아가는 이유이며 살아나는 동기.
아주 아주 무겁다.
무디다 생각했던 석궁의 예리함에 무참히 꿰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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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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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인공수정으로만 아이를 갖고 애니메이션 같은 2D 캐릭터와 성욕을 해소하며 부부 간의 스킨십이 근친상간으로 여겨지는 미래의 평행세계, 실험도시에서는 남자 또한 인공자궁을 통해 수정을 시도하며 매년 크리스마스에 거주민 중 랜덤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임신하고 그로 인해 출생한 아가들을 모두가 엄마로서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네는 사랑의 색인 붉은 색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엄마에게 엄마와 아빠가 사랑한 결실로 자신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커왔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마네는 자신이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이 하던 원시적인 교미를 통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엄마가 심어놓은 사상이 아닌 자신만의 본능을 정의내리기 위해 만나는 인간 애인들과 섹스를 시도한다.

처음 책 소개글을 봤을 때는 실험도시 부분이 너무 소름끼칠만큼 생경해서 섬짓했던 것 같다.
다 읽고 보니 그 불쾌감보다 더 심오한 질문이 남는다.
총 3부로 나뉘어진 책은 1부에서 아마네가 성장하는 과정과 결혼과 재혼까지의 내용을, 2부에서는 남편과 가족으로 지내면서 서로의 애인을 만나다 둘 다 사랑에 실패하는 장면과 그로 인해 사랑의 도피를 결정하는 내용이, 마지막 3부에서는 부부임을 숨기고 에덴이라는 이름의 실험도시로 이주해 지내면서 변화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마네가 각자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을 접하면서 가족에 대해 고민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에서 이야기는 조금씩 궤도에서 멀어져간다.
껍데기 뿐인 애인과 가족,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인간과 무생물의 구별 없이 그저 타산적으로 소비되버리는 세계에서 가족이 주는 온기의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가족의 필요성을 잃고 또한 고집스레 겨우 끌고 온 인간애인과의 섹스가 자위에 불과하며 무의미한 일임을 깨달은 채로 아마 인간의 최종 목적지가 될 곳에서 마주한 풍경에는 모두가 이름을 잃고 같은 표정으로 애완동물처럼 길러지는 모습이 놓여있다.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은 셀 수 없는 아가들을 마주하며 퇴색되고 바래진다.
무뎌지고 감퇴하며 겨우 남아있던 그 마지막 끈이 끊어진 순간부터 이야기는 폭주하며 분열된다.
그리고 이 모든 원인인 엄마를 편집하며 이미 배설되어버린 본능을 만들어내려 한다.

선악과를 먹어 욕망을 알게 된 아담과 이브, 만약 선악과의 효능이 다하거나 다른 열매로 다시 낙원인 에덴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에덴동산에서 쫒겨나며 모든 걸 잃은 아담과 이브와 모든 것이 소멸되어가는 현재의 에덴을 생각하면 ‘소멸세계’라는 제목은 이해가지만 잘 익진 않는다.
중간중간 섬짓한 대사들이 긴장감을 잇는다.
그에 비해 결말은 제대로 된 낙원을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
조금 더 나아갔어야 했다.
아주 새까맣고 무거운 돌을 기껏 들고 와놓고 얼마 가지 못하고 던져 버렸다.


“인간은 점점 진화를 거듭해서 영혼의 형태며 본능도 바뀌어가잖아. 완성된 동물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으니 완성된 본능도 존재하지 않지. 누구나 진화의 과정에 있는 동물일 뿐이야. 그러니까 세상의 상식과 부합하든 하지 않든 그건 우연에 불과하고, 다음 순간에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어지는 거지. 우리는 진화의 순간을 살아가는 거야. 언제나 그 길을 가는 ‘도중’이라고.”

“엄마는 말이지, 네가 이 미친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도록, 무엇이 올바른 세상인지 어린 너에게 가르쳤단다. 네 영혼에 똑똑히 새겨 넣었어. 태어나서 처음 본 세상이 우리 영혼에서 지워지는 일은 절대로 없어. 지금은 이 세상에 물들어 있어도 언젠가 반드시...”

남자나 여자, 그러한 구분 없이 우리는 모두 인류를 위한 자궁이 된 것이다. ‘정상’이라는 들리지 않는 음악이 우리 머리 위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음악에 지배당하고 있다. 내 몸속에도 어느새 그 음악이 우렁차게 퍼져 나갔다. 그 음악을 따라서 나는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 ‘아가’를 불렀다.

이것저것 잘 먹는데, 제일 많이 먹이는 건 이 세상이야. 세상을 먹고 그 세상에 딱 맞는 형태로 변화하는 동물이란다. 아주 신기하고 재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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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가을이 왔다.
여름의 헤어짐 이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평범한 소시민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나카마루, 우리노와 각각 연애를 시작했다.
한편 10월부터 시작된 기라 시의 연쇄 방화 사건은 달에 한 번씩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며 심각해지고 있다.
후나도 고등학교의 신문부 부원인 우리노는 평범한 학내 일상 소개가 아닌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학교 밖의 내용을 기사로 실어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해서 부장인 도지마와 대립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월간 후나도에 자선 바자회 참여를 독려하는 칼럼 자리가 생기게 되면서 우리노는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목적 하에 방화 사건을 다루는 칼럼을 실기로 한다.
그리고 계속 해서 조사를 해가며 알아 낸 정보로 다음 방화 장소를 예고하는 칼럼을 실게 되고 그것이 맞아 떨어지면서 우리노는 월간 후나도를 통해 매월 방화 장소를 추측해 예고한다.
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금요일마다 이어진 방화는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범인을 잡지 못하고 우리노는 추리가 맞아들며 신문부의 위상이 올라간 것을 계기로 자신이 범인을 잡겠다고 나서게 된다.
그리고 고바토 역시 우연한 계기로 방화 사건에 관심을 갖고 추적하기 시작한다.

둘은 잠시 헤어진 동안 각자 연애를 하고 소시민에 가까워졌지만 결코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의 결핍을 느끼면서 1년을 보낸다.
물론 이들이 다시 서로를 찾게 되리란 걸 겨울이 남아있음만 봐도 너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없음으로 인해 생긴 지극히 미미한 깨달음이나 결국은 서로가 차선책인 걸 인정하며 타협으로 정의내리는 관계는 이 달콤해보이는 시리즈의 씁쓸함을 너무도 잘 드러낸다.
사귀자는 한 마디면 끝날 것을 굳이 많은 말을 포개어야 하는, 최고의 상대는 아니어도 서로의 숨겨둔 것을 자연스레 공유할 수 있고 그로 인한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나눌 수 있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곁에 있을 상대.
캐릭터의 성격부터 그렇지만 둘의 관계도 고전부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밋밋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고전부 시리즈와 달리 소시민 시리즈는 한 번 헤어졌다 만난 유대감에 감정이 싹트면서 더욱 더 깊은 달콤함을 내려한다.
결락과 보완,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결착은 거의 공범들의 연대감처럼 느껴졌는데 달콤함을 맛보여 준 연애를 끝낸 후 그 부산물 같은 감정을 지닌 채로 마주 본 관계는 더욱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겠지.
결국 연애 상대를 이용해버린 셈이 되긴 했지만 서로 간의 명확한 관계 정립을 위해선 필수적인 요소였단 게 상대의 흠을 통해 변명처럼 알려진다.
사건이야 크게 무겁지도 어렵지도 않았고 비록 1년이 금방 지나가버리긴 했지만 좋았다.
특히 상편보다는 하편이.
끝까지 빠짐 없이 챙겨서 완성된 걸 내놓으니 참 좋다.
디저트라는 그 요소 하나가 의외로 큰 것 같기도 하고.
생전 처음 들어본 구리킨톤의 맛이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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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저
할런 코벤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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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변호사인 애덤은 낯선 자, 스트레인저가 말을 걸기 전까지 아내 커린과 두 아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들 속에 있었다.
첫째인 토머스의 라크로스팀 선발을 참관하기 위해 미국재향군인회관에 앉아있던 애덤에게 스트레인저는 2년 전 커린이 했던 임신과 유산이 거짓이었다고 말한 뒤 떠난다.
그들이 알려 준 사이트와 카드 기록을 조사한 애덤은 교사인 커린이 2년 전 수업 준비물이라 했던 결제 내역이 가짜 임신 사이트에서의 지출이란 걸 알았고 아들들의 유전자 검사까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곧 애덤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알아 챈 커린이 채근하자 애덤은 그녀에게 가짜 임신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묻게 된다.
쉽게 시인하며 누구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따지는 커린에게 황당함을 느끼며 더 많은 이야기를 요구하지만 그녀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의 생각 이상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하며 내일까지 기다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약속을 한 뒤 출근한 커린은 얼마간 떨어져 있자며 연락하지 말고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사라진다.
그리고 곳곳에서 낯선 자가 출몰해 비밀을 폭로하는 일이 잇따르고 곧 그 당사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애덤은 위치 추적 앱과 자신의 동료였던 샐리에게 전화를 했던 기록으로 2년 전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해 커린이 가짜 임신을 꾸민 것임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알게 된 날 스트레인저가 타고 있던 차부터 시작해 커린을 찾기 시작한다.

남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주된 사건이고 이는 결국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정통을 벗어 난 스릴러이고 무게로 치면 좀 가벼운 편이다.
그에 얽힌 살인 사건은 자세히 따지면 굳이 관련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개연성이 떨어지고 스케일도 작다.
또한 결국 가장 문제였던 커린의 실종은 너무도 맥 빠지게 눈 앞에 있던 인물이 범인이었고 살해 동기도 참 소소하다.
흙을 파내 묻힌 시체를 확인하는 것과 비밀이 드러나는 것의 비유와 파헤쳐진 비밀이 곧 또 다른 비밀을 낳는 구성은 단순하지만 직관적인데 그것을 보여주는 연출은 긴장감과 임팩트를 하나도 모른다.
소설로만 따지면 정말 밍밍한데 어쩌면 그래서 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정말 누군가는 그러한 저마다의 이유로 똑같은 짓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었다.
기대 만큼 재미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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