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교양 100그램 8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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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권정민/ 창비




2024년 12월 3일,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새겨져 있다. 6월 3일 대선 결과가 보여주듯 '계엄'과 '서울 서부지방법원 폭동'에 관한 시민의 평가는 양측 비율이 엇비슷하다. 투표 도장 안에는 수많은 의미와 저울질이 담겨 있을 것이다. 혐오와 갈등이 불러온 사회의 분열은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대에 걸쳐 가열되고 있다.


이제 곧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는 자녀들을 둔 부모로서 가열되는 양상이 심히 염려된다.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접하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은 걱정을 배가시켰다. 차별과 혐오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공간에서 우리 아이들이 과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고민만 깊어가던 중 권정민 교수의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를 접했다. 목마른 자에게 우물처럼 혜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품고 읽어 내려갔다. 권정민 교수의 글 가운데 많은 부분 공감하였고, 부모이자 어른으로서 필히 읽어야 할 도서라는 생각에 주변 학부모들에게 추천하였다,





스마트 첨단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혐오에 노출되고 점진적으로 지배당하게 된다. 편향적인 유튜브 콘텐츠에 한번 노출되기 시작하면 알고리즘에 의해 확증편향이 가속화된다. 그리고 이 콘텐츠들은 메신저를 통해 확대재생산되기 마련이다. 이런 극단주의와 혐오가 '힙하고 쿨한 문화'로 소비되는 세태를 헤쳐나가는 통찰력으로 대화법을 다룬다. 사랑과 공감을 기저로 한 이 대화법으로 저자가 아들과 나눈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좋은 대화, 토론 경험이 많지 않은 부모에게 실질적인 방향 제시와 사례는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걱정과 염려로 질책하고 부모의 가치관과 사고를 강압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사고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나 상황들은 흑백의 이분론적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흔히 회색 지대라 부르는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그 모호함을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부모가 가져야 할 기준과 자세를 살펴보고, 실천법으로 건강한 대화법 7계명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참조하여 각자 환경에 맞춰서 천천히 시도해 보려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아직은 '아이'인 청소년기에 협소하고 편향된 시선에 잠식당해 극단적 성향인 성인으로 자라지 않으려면 부모, 어른의 올바른 관심과 대처가 절실하다.

혐오와 폭력,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집단을 막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인간화'하거나, 잘못된 비약적 사고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대체할 만한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알려준다.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적절한 질문이나 정보를 줄 수 있고, 부모 스스로 생각해 보고, 직접 찾아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주는 일과 함께 흑백,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존재하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인지시켜야 한다. 권정민 교수는 '혐오'와 '배제'를 뽑았다. 폭력, 차별 등등 여러 모습으로 건강한 사회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극단주의적 사고와 발언들이 확대 재생산되는 현실을 분석하는 글은 명확하여 이해를 돕는다. '쿨'하고 멋져 보이는 문화적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집단 안에서 권력을 지닌 강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기저에서 작동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혐오 표현에 대해 잘못되었다 표현하지 못하는 점 또한 쿨하지 못한,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자인하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를 이유로 들고 있다. 이런 비약을 끊어내고자 저자는 아들과 그 주제에 관해 대화를 하고, 토론을 했다.


혐오와 극단주의를 몰아낼 건강한 대화법 7계명.

저자의 실제 경험과 사례를 들어 상세하게 설명한 이 대화법으로 아들을 극우주의와 혐오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경청하고 공감하며 이해해 주고, 개인적 경험으로 연결하여 주장이나 생각이 닿는 거리를 좁혀준다. 덜컥 사실을 주지 말고 서서히 소개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인내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일상에서 찾은 소재로 대화와 토론을 시도하는 게 좋다.





'아이들과 하는 토론은 공감과 사랑에 기반을 둔,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대화'라는 사실을 가슴에 품은 채 기다려주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고 싶다. 우리 아이가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혐오하고 분노하는 삶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더라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고 답을 찾아가고자 생각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공존의 가치관을 키우며, 공분과 관용의 자세를 갖춰갈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혹시 우리 자녀도 편향적인 사고에 빠져있나? 고민이 된다면 권정민 교수의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를 적극 권한다. 아니더라도 자녀를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도움을 주고 싶은 부모라면 꼭! 읽어보고 도움을 얻길 바란다. 적용 가능한 실용적인 팁이 많아서 시작의 장벽을 낮출 수 있다. 우리는 부모다. 우리는 자녀를 행복한 민주시민으로 키울 책임이 있다. 그 길을 찾도록 도움 주는 지도가 바로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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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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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은 문제를 마주하고 본인 스스로 힘껏 해결하고자 애쓰는 마음, 그 용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단단한 청소년들을 만나 벅차게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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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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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 김성민/ 창비교육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은 김성민 작가의 신작 장편으로,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가제본으로 사전서평단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제목만 적힌 하얀 표지로 만난 이 소설이 어떤 옷을 입고 정식판으로 출간될지 궁금하다. 하지만, 흰 표지만큼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었다. 작가가 담고 싶은 메시지와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중하다 믿고 있는 가치가 이어지고, 이를 잘 녹여낸 작품이었다.

청소년은 자기 주변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선생님에게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오늘날에는 온라인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의 주요인물은 중학교 2학년 해민, 도경이다. 두 아이를 중심에 두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들을 마주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날 수 있다는 거야."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다.




SNS에 익숙한 세대가 익명성을 전제로 '의뢰'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손에 맡겨 해결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아니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청소년들의 모습 또 의뢰 처리를 몰래 촬영하여 자신의 채널에 올리는 유튜버의 행태 등이 우려를 넘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해결사이트에 접속하는 청소년들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은 차치하고 타인의 태도나 말 혹은 주변의 상황으로 인한 자신의 문제, 감정만을 우선시하였다. 청소년들은 다분히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에 갇혀있었고, 무너진 내면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다.

그리고 도경과 해민처럼 한부모 가정에 대한 주변의 시선, 편견 혹은 선입견이 현실성 있게 표현되어 환기시켜주었다. 우리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주변 어른들의 억측과 오해 속에서 되레 좋아하는 일이 확실한 해민과 친절하고 반듯한 도경이 등장하는 여타 다른 청소년들보다 돋보였다.




"네가 무슨 재주로 다 망쳐?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망칠 수 있는 것도 없어.

넌 네가 해야 할 일을 했어.

이제 어른들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하게 놔둬."




청소년들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크거나 작은 오해와 갈등 혹은 지나친 기대와 사랑으로 인한 고민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지 지켜볼 수 있다. 지나친 자기합리화로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서슴없이 의뢰하는 아이들과 그런 의뢰 공간을 온라인에서 개설하고 이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커져갔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찾아가는 해민, 도경, 주영 덕분에 억눌렸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그리고 서로를 부러워하고 격려하며 채워나가며 성장해나가는 우정의 온기에 주름이 퍼졌다.



"너한테 중요한 건 네 문제니까, 그거나 잘하래.

잠깐은 외면할 수 있지만 결국 마주 봐야 끝이 나는 것,

그게 진짜 자기 문제랬어."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은 문제를 마주하고 본인 스스로 힘껏 해결하고자 애쓰는 마음, 그 용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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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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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저/ 문학동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5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작가가 '강아지를 둘러싼 인간의 책임'을 묻고 답해나가고자 써 내려간 소설이다.







순수해서 명랑한 개, 이시봉. 이시봉은 모르는 이시봉의 이야기는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역학 관계로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로 상처받고 방황하는 영혼, '이시습'이 혼란의 한복판에서 '이시봉'과 같이 살아가려는 분투기가 마음을 휘젓는다. 작고 여린 생명, 한없이 순수해서 주변과는 상관없이 명랑한 강아지 이시봉을 향한 시습의 마음이 읽는 내내 애잔하게 스며들었다. 아빠가 살리고자 했던 목숨, 미안함, 죄책감을 채 알기도 전부터 시습에게 '이시봉'은 그냥 '이시봉'이자 함께 사는 막냇동생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삐끗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와 이시습과 이시봉은 예전보다 더 단단하게 묶였다. 위기를 헤쳐나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아주는,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둘의 뒷모습에 울컥하면서도 안도하였다. 시습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성장과 변화가 개연성 있게 그려져 공감과 응원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우리 시습이가 어떻게 자랄지, 그게 제일 궁금하네.

궁금해, 궁금해…"





이기호 작가가 실제 키우는 반려견이 '이시봉'이라 한다. 그 아이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개와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개 이야기'로 다가왔다. 늑대에서 개로 인간 친화적으로 변하면서 개는 인류사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인간과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뜻과는 별개로 인간의 욕구와 욕망에 크게 영향을 받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중 하나인 '종'의 구분은 사랑일지 욕망일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인위적인 계급을 수반하게 되었다.


"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거야.

강아지를 사랑하는 건 더 그래."





그냥 '이시봉'이 희귀한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로 고귀한 신분으로 밝혀지면서 긴장과 갈등이 커져가는 현재와 이시봉의 혈통과 뿌리를 쫓아올라 가는 과거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의 가장 유명한 선조인 '베로니카 코레데라 히아단스'의 삶을 그려낸다. 왕실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베로'와 그의 충실한 집사인 스페인 총리 '마누엘 데 고도이'의 서사는 이야기 속 한 줄기로 극적으로 펼쳐진다. 이 매혹적이면서도 슬프고 인색한 인간과 개의 교류는 몇 세기가 흐른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라 애달프고 통탄스럽다.





개를 사랑하는 이와 이용하는 이. 제각각 상황에서도 개와 인간이 나누는 정서적 교감 자체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존재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개와 인간 그리고 그들을 사이에 둔 또 다른 인간과의 미묘한 관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힘 있게 받쳐준다. 리다가 이시봉에게 주고자 한 미래가 이시습이 이시봉에게 주고자 한 미래와 다르다라고만 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은 시습의 입장, 리다(하영)의 사정을 다 알기에 드는 것일 테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두려움을 이기고 다른 삶을 꿈꾸는, 성장하는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리다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라고. 언니도, 이시봉도."



18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20세기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대서사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인간과 개의 관계를 정성스럽게 분석하여 인간이 '개'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 개를 이용하는 사람 또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개와 같이 살아가는 시간을 그려낸 글로, 먹먹한 울림을 선사한다. 서로 연결되어 원망하면서도 이해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끈끈한 개와 인간의 공생이 일그러진 탐욕의 가면을 기어이 찢어버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책임이라고."




인간과 개의 유대에 시습과 수아, 정용의 우정, 시습과 리다의 썸, 시습과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 그리고 태형을 향한 유정의 믿음, 동료에 대한 아빠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더해져 옹골찬 이야기로 거듭났다. 각각의 관계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결을 훑으면서 괜스레 가슴이 따스해지기도 저릿해지기도 하였다.



나는 그때 왜 미안해하지 않고 억울해했을까?

미안한 것과 억울한 것을 뒤섞지 말 것.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전체 인구의 29.9%에 다다른 오늘날, 이기호 작가는 묵직하고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녁마다 동네 하천 길을 산책하는데, 여러 반려견들과 가족들을 마주치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그의 시선이 떠올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예전과는 다르게 마음과 관심이 쓰이게 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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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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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사




스스로를 외곽주의자, 비주류, 이끼 같은 검사라 부르는 정명원 검사 아니 작가의 신작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이 출간되었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의 결이 좀 더 풍성해지고 농후해졌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머문 전문가 다운 굳은살을 지녔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낙관을 품고자 애쓰는 그 다정함이 오롯이 전해졌다. 봄날의 햇살처럼 읽는 내내 평온하고 따사로운 시간이었다.

정명원 검사는 '검사'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을 허물고 '검사'를 재정의해 준 인물이다. 유무죄의 결과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범죄 안팎의 서사와 맥락을 이해하려 애쓰는 정 검사와 다른 검사들의 분투기는 '검찰 국가'의 배신으로 무너진 검찰의 위상을 다시 다지게 해준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한 검사가 전하는 진심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법에 입각하여 유무죄를 판단하는 냉철한 세계에서 '사람'을, '선의'를 확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믿으려 애쓰는 마음이 숭고하다. 이렇게 제각각 제자리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유지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정명원 검사도 '심쿵 요정'이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은 세 개의 꼭지로 구성되었다. 사건 외곽의 풍경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시골지청 안단테이다.

사건 외곽에서 피의자를 비롯한 풍경들을 바라본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은 아닐지라도 사건 하나하나 품고 있는 맥락을 들여다보는 정성이 보였다. 범죄를 들여다보니 개인이 보이고, 개인을 들여다보니 기업, 가게, 사회 등 시스템이 보였다. 범죄의 이유와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수고를 넘어 기억에 남는 사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많이 들어본 이웃 같으면서도 낯선 타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유무죄 여부를 떠나 해피엔딩을 바라는, 검사들의 염원을 내비친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해야 마땅한 곳이 구치감인 외국인 여성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먹먹하게 하였다. 이 서러운 이야기의 결말이 부디 정 검사의 바람처럼 희망적이길 간절히 빌어본다.

장 검사는 의사에서 검사로 전향했다.

"의사로 일할 때랑 검사로 일할 때 가장 다른 점이 뭐야?"라는 질문에 "의사로 일할 때는 환자가 하는 말을 의심하지 않아요.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검사는 진술이 거짓말일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잖아요. 습관이 안 되어 그런지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고 답했다. 매일 속는다면서도 끝끝내 진실을 믿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끝내 믿어야 할 지점에 대한 그들의 고뇌가 읽힌다.

'유무죄의 세계의 사랑법'에서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의 정명원 검사를 만날 수 있었다. 초임검사로서, 부장검사로서,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개인으로서 인간 정명원을 채워나가는 시간이었다. 검사로서 18여 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 혹은 투지를 엿보았다. 사표를 품고 사는 여타 직장인처럼 꿋꿋이 하루를 채워나가는 그 옆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들어주고,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는 동료들, 가족들이 있었기에 회의주의적 친애주의자 정명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생겨나 마침내 종결되었다고 하기까지 사건의 길은 멀고 다양하다. 사건의 전체 여정에서 한 사람의 검사가 관여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이 책에서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두려워도 기어이 따라가 그 끝을 보고야 만 선배 이야기는 묵직했다. 밀려오는 사건의 파도 속에 적당히 잊어가는 게 보편적인 세계에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지점을 기꺼이 두려워한 사람' 그리고 '그가 마주할 수 있는 한 단계 다른 도약의 지점'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시골지청 안단테'에서는 상주지청장으로 근무한 시간을 담았다. 상주지청 검사 BTS, 심쿵 요정들, 곶감 시티 상주와 지청의 공생, 징검다리와 스타벅스 등등 7개월 정도의 짧고도 긴 여정 보따리를 소담하게 풀어놓는다. 잘 울지 않는다는 그가 떠나는 마지막 발걸음에 길고 깊은 울음을 토해냈는지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는 동행이었다. 검찰청이 이런 곳인가? 검찰청 사람들이 이런가? 싶을 정도로 정감 어리고 열정적이고 포근한 공간과 사람들이었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을 읽다 보니 검찰청이 마냥 차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검사도 사람이구나. 마냥 고개 뻣뻣이 들고 유죄를 선고하는, 냉혈한은 아니구나. 수많은 사건들이 쏟아지는 매일을 보내면서도 진실을 찾기 위해 기꺼이 배우고 실험하고 파헤쳐 간략하고 명확한 사실관계로 정리하는, 뜨거운 사람이구나.

무너진 곳을 향한 비난의 시선을 거두고, '진창에 처박힌 존재의 안간힘과 함께 기꺼이 일렁이는' 검사가 되려는 그들을 향해 응원과 신뢰를 보내야겠다. 단순히 벌하는 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늘이 무너지는 일을 막으려 애쓰고, 무너지는 하늘 아래 속수무책 서 있는 누군가의 곁에 같이 서 있으려는 검사를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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