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소설이라는 이름의 소설 괴담
사와무라 이치 지음, 강영혜 옮김 / 리드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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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이름이 특이한 제목의 책이다. 괴담소설이면 괴담소설이지, 소설괴담이라니,, 읽기 전에는 그냥 귀신이 나오고, 밤에 혼자 읽으면 조금 무서운 단편들이겠지 했다. (사실 나는 공포영화도 밤에 혼자서 볼 정도로 웬만한 공포는 공포라고 느끼지 않는 편이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기는 하는데, 이 책은 귀신보다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의 기묘한 환상이 실제 사건처럼 이어지고, 가족 사이에서 하지 못했던 말이 괴담처럼 들려오고, 누군가에게 가해진 폭력이 결국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괴담이라 말하고 있지만, 주제는 모두 사람을 향해있는 듯 하다.


첫 번째 단편은 <고속괴담>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다섯 사람이 서로 괴담을 이야기한다. 만화가 이시구로, 계약직 기자 사와구치, 편집자 호리 다이조, 사진기사 마가라까지. 처음에는 모두가 장난스럽다. 누군가는 유명한 공포영화를 꺼내고("가면 쓴 살인귀가 사람을 마구 죽이는 영화예요" p.9), 편집자 호리는 아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는 너희가 아는 그 호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식으로 사람을 더 긴장하게 만든다. 공포 이야기를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가 공포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타는 차 안은 무섭다기보다, 재밌기만 하다.


그런데 이시구로가 갑자기 이상한 그림을 그리면서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된다.


미인의 얼굴인데 눈동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고,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 기분 나쁜 얼굴이다. 이시구로 본인도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냥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란다. 여기서부터 차안에 있는 모두가 그 그림속 여자가 신경쓰이고, 궁금해진다.


사람이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그게 나중에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떨까. 그냥 어쩌다 보니 맞아 떨어진 것이다 라고 하기엔, 일반적이지 않는 모습의 사고현장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영화 <데스티네이션>이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미래에 벌어질 사고를 꿈에서 미리 본다. 그런데 <고속괴담>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 미래를 정확히 예언했다기보다, 머릿속에서 떠오른 이미지가 현실의 사건과 겹쳐진다. 그래서 오히려 데자뷰를 경험한 모습이다.


그리고 마가라가 들려주는 괴담에서는 한국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였다. 3명의 사람이 산속에 있는 폐가에서 밤을 보내면서 차례대로 잠을 자고 서로 깨워주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보니 원래 없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는 식의 괴담 말이다. 무서운 것은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잠깐,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였지?" 하고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고속괴담>도 그런 식으로 긴장하게 만든다. 괴담을 이야기하던 다섯 사람이 실제로 고속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비상등을 켠 차의 조수석 문이 열리고, 여자가 도로로 뛰어내린다. 뒤따르던 차가 순식간에 여자를 치고, 여자는 공중에서 회전하며 이들이 탄 밴의 유리창까지 부딪힌다. 그 순간 이시구로가 그렸던 얼굴이 그대로 나타난다.



검고 긴 머리, 귀걸이, 피가 흐르는 얼굴.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눈.




그림을 그린 것이 먼저였을까, 사고가 먼저였을까. 이시구로는 그 그림을 왜 그렸을까.  이 단편은, 살면서 데자뷰를 느껴봤던 사람이라면, 당시의 상황이 떠올라서 더 괴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 단편 <피리부는 집>은 일본과 한국의 공통된 문제점을 꼬집는 것 같았다.


평범한 가족 이야기처럼 시작한다. 시와노 부부가 세 살짜리 아들 슈이치와 집 근처를 산책하다, 우연히 어둡고 오래된 2층 단독주택을 발견한다. 유령의 집처럼 보이는 그 집을 가족이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아는 경찰 미나미가 다가온다. 수상한 사람이 저택을 보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온 뒤 부부는 이웃 미타니를 통해 그 집에 얽힌 소문을 듣는다.


30년 전 그곳에는 우스이라는 부부가 살았고, 두 살배기 아이가 세탁기에 들어가 사망했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기름을 쏟아 자살했고, 남편은 손목을 그었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 부분은 좀 억지스럽다고 느꼈다. 소문이라 해도 한 가족이 이렇게까지 연달아 죽는다는 설정은 너무 작위적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기묘한 지점은 여기가 아니었다. 이 단편을 읽고 나니,  섬뜩하기보다 씁쓸했다.  OOOOO는 단어가 한국에서도 이제 낯설지 않은 걸 생각하면, 두 나라가 겪는 세대 문제가 이렇게까지 닮아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스포가 될 수 있어서 단어는 다 적지 않았다.)  아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보다, 부모가 아들과 진지한 대화를 하지 못했던 시간이 계속 쌓여버렸다는 게 더 마음에 남았다. 그때 한 번 이야기했더라면, 조금 일찍 손을 내밀었더라면, 혹은 아들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세 번째 <쿠쿠다의 가면>에 이르러서는 이 책이 왜 계속 사람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시작부터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일반적인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과 조금 다르다. 마치 누군가 사건을 조사하고 그 기록을 하나씩 맞춰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25살의 감독 오지마 세이타로가 만든 슬래셔 영화 <쿠쿠다의 가면>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는 잔혹하게 학대당한 사람이 결국 가해자에게 복수한다.



p.90

잔혹하게 학대당한 인물의 역습, 직접적인 앙갚음이 구원이 되는 사람은 항상 있다.



여기서 책 속에 등장하는 쿠쿠다 지옥이라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가장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떨어지는 지옥이고, 그곳에 가면 같은 이름의 도깨비에게 영원히 몸을 난도질당한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무간지옥, 그중에서도 <시무간>이 떠올랐다.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는 그 지옥. 한 번의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진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가 흥행한 뒤 주연배우 요시즈미 료타가 자살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의 어머니가 충격적인 제보를 한다. 


영화에서는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현실에서는 피해자가 구원을 받는 경우가 흔치 않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도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쉽게 끼어들지 못한다. 나까지 피해를 입을까 봐 모른 척하기도 하고, 문제가 커지는 게 싫어서 그냥 참고 넘어가기도 한다. 피해를 당한 사람 역시 보복이 두려워 아무 말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정의가 실현되는 이야기라기보다, 현실에서는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생각을 했다. 


[괴담소설이라는 이름의 소설괴담]은 귀신 이야기라기보다는, 괴담이라는 형식을 빌려 현실에서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끄집어내는 책이라 생각한다.


<고속괴담>에서는 내가 상상한 것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불안이 있었고, <피리부는 집>에서는 가족이 너무 오래 방치한 문제가 결국 공포가 되어 돌아왔다. <쿠쿠다의 가면>에서는 폭력과 괴롭힘, 그리고 그것을 방관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복수와 저주의 형태로 나타난다.


공포는 사람이 만든 공포가 가장 무섭다.


귀신이 무섭다는 생각은 잠깐이다. 그런데 사람 때문에 생긴 상처는 책을 덮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이 책은 현실의 아픔을 괴담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이라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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