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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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은 심청이 이야기 외에 선녀와 나무꾼, 여우 이야기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모두 주인공 엘사가 엄마에게서 들은 어두운 이야기들이다. 



그 중에서 〈심청이 자매〉의 이야기는 두 개의 글이 교차되는데,  하나는 심청 이야기를 완전히 다르게 다시 쓴 부분이다. 화자인 심청은 눈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던져지지만, 여기서 그녀는 우리가 오래도록 배워온 성스럽고 순종적인 효녀가 아니다. 자신이 왜 팔렸는지, 누가 자신을 희생시켰는지, 그 일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폭력인지를 너무도 또렷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뱃사람들에게 묶여 바다에 던져지고, 용궁에서 어머니가 바다 여왕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연꽃으로 변해 왕의 아내가 된다. 밤마다 인간 여자로 돌아와 왕 곁에 눕지만 새벽이면 다시 썩어가는 꽃이 되고, 끝내 꽃잎 속에 파묻혀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한 번만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잔치가 열리고, 아버지는 하루 늦게 도착한다. 심청이 달려가 안기자 아버지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러나 서술자는 말한다. 아직도 나는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글은 1990년대 캘리포니아 가디나의 한국계 이민자 가족 이야기다. 서술자 엘사는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낡아빠진 자동차 정비소 다락방에는 눈에 안대를 한 아버지가 살고 있고, 약을 먹지 않은 채 정비소와 아버지를 혼자 건사해온 오빠 크리스가 있다. 아버지는 이민 생활의 누적된 손실을 고철과 쓰레기를 쌓아두는 것으로 방어해온 사람이고, 동시에 가족에게 폭력을 가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엘사는 어머니의 방을 뒤지다 한복 안감에 숨겨진 칠만 오천 달러와 주소록 장부를 발견한다. 장부에는 어머니가 수십 년간 절박한 처지의 이민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준 기록이 빼곡하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플러스로 표시된 이름 하나, 뉴저지의 강 여사. 전화를 걸자 젊은 여자 목소리가 답한다. 엘사는 직감한다. 어머니가 한국에서 포기해야 했던 또 다른 딸이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한편 오빠 크리스는 어머니가 남긴 옛날이야기가 쓰여진 노트를 쥐고 있다. 그것을 빌미로 엘사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아버지를 설득해 차고 몇 개를 넘겨받게 해주면, 노트를 주겠다고.



이 소설은 딸의 희생을 미화해온 이야기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겠다는 명분, 공동체의 믿음, 스님의 말 한마디. 그 모든 것이 한 여자아이를 물에 던지는 일을 정당화해왔다. 심청은 순결한 제물이 아니라, 억울하고, 분노하고, 자기 운명을 이해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또 어머니의 삶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돈을 모으고, 여성들을 연결하고, 숨겨진 장부를 만들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텨온 사람이다. 당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여러 얼굴을 써온 사람. 그 복잡함이 이 소설을 단순한 가족 드라마와 다르게 만드는 것 같다. 폭력적인 가정에서는 기억조차 온전히 남지 않는다. 엘사와 크리스는 끊임없이 서로의 기억을 두고 다툰다. 누가 더 많이 감당했는지, 무엇이 진짜였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폭력은 몸에만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었다. 남매 사이도 갈라놓는다.



〈심청이 자매〉를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또 딸이구나 하는 점이었다. 옛날이야기에서도 딸이 바쳐지고, 이민 가족의 현실에서도 딸은 지켜보고, 기억하고, 감당하는 사람이다. 남자들은 무너지고 분노하고 때리고 실패해도, 여자들은 끝내 버티는 쪽, 기억하는 쪽으로 남는다. 그게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된다는 것이, 한편으론 익숙하면서도 답답하다. 



심청 이야기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겠다는 결말이다. 그런데 더 이상 아름답다고만 할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사라진 대가를, 너는 알아는 줘야 하지 않느냐는 절규처럼 들린다.  그리고 어머니. 분명 부재하는 인물인데 가장 오래 남는다. 맞고, 참고, 돈을 저축하고, 딸을 숨기고, 아들을 보내고, 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옛이야기를 남기고. 이 여자는 무너진 적이 있으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늘 강했다는 말로 정리되지만, 사실은 강해야만 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어머니의 한복 안에 숨겨진 칠만 오천 달러. 자꾸 이 장면으로 돌아오게 되는 건, 그 돈이 단순한 비상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쌓아두는 것, 그게 이 여자가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장부에 적힌 이름들, 전부 빚이 갚힌, 딱 하나를 빼고. 어머니는 끝내 자기 진짜 얼굴을 다 보여주지 않은 채 사라졌다.



오빠 크리스는  춤추고, 교회에서 쫓겨나고, 약을 챙기고, 아버지 밥을 갖다주면서도 독설을 날린다. 이 사람이 가장 많은 걸 감당해온 사람인데, 정작 자기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는 농담으로만 처리한다. "아빠는 우리를 통해 트라우마를 해소했어. 아주 상투적이지." 이 말이 참 슬펐다. . 정말 그 모순이 너무 살아 있었다.



이 글의 엔딩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다만 이 소설은 여성을 결코 단순하게 쓰지 않는다. 착한 엄마, 나쁜 아빠, 가엾은 딸로 정리되지 않는다. 어떻게 한 여자가 동시에 그렇게 많이 존재일 수 있는지, 그 복잡함이 글에 잘 표현되어 있었다.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이건 어머니를 잃은 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딸을 잃어도 세상은 계속 굴러간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그런 여자들의 이야기다.



읽고 나면 울컥하기보다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조금 늦게 분노가 온다. 왜 늘 여자가 이렇게  많이 참고, 많이 감당해야 했을까 싶어서. 그런데도 그 여자들이 끝내 이야기 자체를 바꿔버린다는 점에서는, 이상하게도 희망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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