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더 도그 - 성공하는 시나리오 쓰기의 진실을 알려주는 최초의 책
폴 기오 지음, 김지현 옮김 / B612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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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늘 영화나 드라마의 영역에 있다고 느껴진다. 전문적인 구조와 규칙,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게 시나리오 작법이 아닐까 싶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나도 써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손을 대지 못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마음보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먼저였고, 그 욕심 앞에서 시나리오는 늘 너무 멀게 느껴졌다.



한국의 작가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그 이름 김은숙 작가의 작품, 〈미스터 션샤인〉과 〈더 글로리〉를 나란히 놓고 보면 작가의 변화가 또렷하게 보인다.〈미스터 션샤인〉은 역사라는 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차근차근 쌓아 올린 드라마다. 등장인물의 한마디 말이나 말없이 지나가는 장면 하나까지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을 만큼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더 글로리〉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기보다는, 차갑고 담담한 방식으로 복수 이야기를 풀어간다. 말은 많지 않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분명하고, 전개가 단단하게 짜여 있다. 두 작품 모두 김은숙 작가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다만 하나는 감정에 깊이 남고, 다른 하나는 치밀하게 잘 짜인 이야기로 기억된다. 두 작품 모두 인상적인 드라마다



이 두 작품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뿐 아니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찾게 된 책이 바로 [킬 더 도그] 였다. 이 책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서 쓰는가”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축구에서 흐름이 바뀌는 <전환 플레이>를 예로 들며, 글이 막힐 때 필요한 건 의지나 근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환경과 리듬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장소를 옮기거나,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을 바꾸고, 프로젝트마다 다른 공간이나 음악을 정해두는 행동은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생각하고 써 내려갈 힘을 되찾기 위한 나름의 전략에 가깝다. 멈춰야 할 순간을 아는 태도, 이 책이 말하는 중요한 작법 중 하나다.



그래서 [킬 더 도그] 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보다 “어떤 상태에서 쓰고 있는가”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래서 당장 형식과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설명이 두루뭉술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예시나 스킬에 대한 부분이 생각보다 적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미 글을 쓰다가 막혀본 사람, 스스로 리듬을 잃어본 사람에게는 공감이 되지만, “그래서 다음 장면은 어떻게 쓰라는 건데?”를 기대하면 허전해지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건 구체성이다. “비싼 시계”라고 적는 대신, 정확한 브랜드와 질감을 떠올리는 순간 캐릭터는 막연한 설정에서 벗어나 훨씬 현실적인 인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시계를 조사하다가 하이엔드 시계의 암시장이나 그레이마켓,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거래 방식까지 알게 되고, 그렇게 쌓인 정보는 결국 하나의 영화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단순한 캐릭터 설정을 위한 조사였지만, 파고들다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재료가 되어버린 것이다.



[킬 더 도그]는 이야기가 늘 책상 위에서만 태어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환경을 바꾸고, 한 가지 대상에 오래 시선을 두고, 그 세계에 충분히 머문 뒤에야 글이 시작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플롯보다 캐릭터를 먼저 떠올리고, 완성보다 몰입을 택하며, 다른 작품들을 탐독해 스토리텔링의 사고 회로에 자신을 담그는 태도.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모방과 필사도 그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한 작가의 글쓰기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기록에 가깝다. 작가의 생각과 리듬을 엿보는 데에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손에 바로 쥘 수 있는 작법의 기술을 기대했다면, 범위가 다소 아쉬울 수는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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