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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유어 달링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5년 12월
평점 :

피터 스완슨의 세계는 여전히 차갑고, 또 지독할 정도로 정교했다. 이번에 읽은 [킬 유어 달링]은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리버스 크로놀로지(역순 구성) 방식을 취한다. 보통의 소설들이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며 사건을 쌓아 올린다면, 이 책은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통해 우리가 믿어온 정의와 도덕이 얼마나 모래성처럼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이야기는 평온하기만 했던 노부부, 톰과 웬디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시작된다. 영문학 교수인 톰이 과거의 진실을 투영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자, 아내 웬디는 직감한다. 남편의 펜 끝이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지탱해온 치명적인 비밀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톰이 쏟아내는 문장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잊어야만 했던 기억들을 소환하자, 웬디는 그 유령들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전에 남편을 멈춰 세우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이 부부의 위태로운 현재를 시작으로, 브라이스의 타락한 사생활과 알렉스 데이턴의 오만함이 뒤섞인 1982년의 그늘진 기억 속으로 독자를 거칠게 끌고 들어간다.
하지만 작가가 진정으로 겨누는 칼날은 그 너머에 있다. 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도 그랬듯, 피터 스완슨은 이번에도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로, 누군가는 죽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 질문 앞에 독자는 어느새 방관자가 아닌, 범죄의 공범이 된 듯한 기묘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사적 제재는 순간적인 정의를 구현할지는 몰라도, 가해자의 영혼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톰이 결국 알코올에 의지하며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진실을 고백하려 한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가 내리는 법의 처벌보다 훨씬 무거운 <기억의 형벌>을 견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자기 자신이라는 목격자로부터는 결코 도망칠 수 없다.
특히 아홉 살 아들 제이슨이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두 사람이 보여준 태도는 이들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타인의 목숨을 앗아간 손으로 자기 자식의 안위에는 전전긍긍하는 그 이중적인 잣대는 지독하리만큼 이기적이다. 톰은 "사회가 더 정의로웠다면 우리는 벌써 감옥에 있었을 것"이라며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상기하지만, 웬디는 다르다.
그녀는 처음엔 분명 악의 희생자이자 피해자였다. 하지만 폭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걸림돌을 치워버리는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포식자로 변모한다. 즉, <죽여 마땅한 사람>을 처단하는 행위는 결국 본인을 <죽여 마땅한 사람>의 리스트에 올리는 모순을 낳을 뿐이다. 악을 멸하기 위해 스스로 악이 된 자에게 남은 것은 또 다른 파괴뿐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런 고뇌를 마주하다 보니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됐다. 만약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 판사 대신, 오직 데이터로만 판단하는 AI 판사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사적 제재가 일어나는 건 결국 대중의 법 감정과 실제 판결 사이의 괴리 때문 아닐까. AI가 권력이나 감정 없이 일관된 잣대로 형량을 정한다면, 굳이 개인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책을 덮으며, 아직 피터 스완슨의 전 작품을 다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사람을 이토록 깊게 몰입시키는 단단한 필력. 인간 내면의 파괴성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그의 냉정한 시선이 다음엔 또 어디를 향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