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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평점 :

김시덕 작가의 [한국 도시 2026]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이 독자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라고 다그친다는 느낌이었다. 위로나 대안부터 건네는 책이 아니라, 불편한 장면을 먼저 꺼내 놓고 눈을 피하지 말라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길 수 있는 책도 아니었다. 특히 도시재생과 교외 택지 개발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러 지방 도시에서 반복돼 온 흐름을 떠올리게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저자는 도시재생이 인구 감소를 되돌릴 수 있는 만능 해법처럼 소비되고 있지만, 외곽 개발이 계속되는 한 구도심 쇠락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공주시 사례처럼 잠시 인구가 늘었다가 다시 줄어드는 흐름은, 콘텐츠 중심의 재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진단은 설득력이 있다. 다만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지방 도시에게 <선택의 책임>을 얼마나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해 보게 된다.
용인시 사례에서 다룬 반도체 특수와 난개발 문제는 이 책의 경고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면 도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 뒤에, 난개발과 재난 위험, 그리고 인접 도시로 빠져나가는 효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을 저자는 집요하게 짚는다. 평택이 삼성전자 불황과 함께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사례는, 특정 산업 하나에 도시의 미래를 걸었을 때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성장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불안정한 전제 위에 놓여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력과 물 부족 문제에 대한 서술 역시 이 책의 중요한 강점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과 물은 더 이상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실제 지역 갈등과 생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고압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반복되는 충돌은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나 님비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도시는 전선을 지중화하면서 농어촌에는 송전탑을 세우는 구조가 과연 공정한지에 대한 질문은 충분히 제기될 만하다. 밀양 송전탑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말하듯 이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조정해야 할 영역이라는 점에 공감하게 된다. 전력과 물 문제를 외면한 채 산업 확장만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더 큰 비용을 뒤로 미루는 일에 가깝다.
세종시에 대한 논의 역시 저자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출범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인구를 끌어모았고, 젊은 도시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이런 성과 자체는 분명 의미가 있다. 다만 저자가 지적하듯, 그 성장이 정부 부처 이전이라는 공공 기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민간 산업 기반과 생활 인프라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세종시 역시 특정 기능에 의존하는 도시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도시는 어떤 선택 위에 세워졌는가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세종시는 성공 사례이면서 동시에, 아직 진행 중인 실험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반면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한국은 이미 다인종 국가다”라는 단언은 현실의 한 단면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미래의 방향이 되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농촌과 공장,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현실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노동 환경 개선과 산업 구조 개편을 미뤄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외국인 노동자 의존을 불가피한 선택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고착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특히 불법 체류 단속 완화를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서술에서는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법과 제도가 흔들리는 사회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할지, 그 부담을 누가 감당하게 될지에 대한 질문은 끝내 남는다.
[한국 도시 2026]은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멈춰 서게 만드는 책이다. 전력과 물, 세종시처럼 구조적 문제를 짚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시선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만, 외국인 노동자 문제처럼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지점에서는 분명한 이견도 생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불편하더라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는 지점이 많음에도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은, 그 불편함이 지금 한국 도시가 처한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