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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렌 허프 지음, 정해영 옮김 / ㅁ(미음) / 2021년 12월
평점 :

동성애자나 트렌스젠더 등의 성 소수자를 "더럽다"고 표현하는 일부 사람이 있는 가하면, "응원하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통계에서 보면 성 소수자를 대하는 시선과 인식이 좋지 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직은 동성애자를 이해하는 사람보다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동성애자를 에이즈 보균자라는 편견으로 묶어두며, 동성애를 성행위와 연관짓는 것이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다. (책에서는 여성끼리 하는 성 행위를 빗대어 "가위치기"라고 불린다.이런 부분을 한 남성의 질문으로써 확인시켜 주는데,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 진다. 성 소수자들의 성행위를 저급한 용어로 만들어 그들을 비하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들이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반하면서도 정작 군대 안에서 구강 성교를 하기도 하고, 이를 적발하기도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헬렌은 이런 그들의 모습에 경계심을 낮추고, 믿어선 안 될 사람들에게 자신과 관련된 약간의 정보를 흘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의 작가 로렌 허프는 여성 동성애자이자 공군이다. 이 책으로서 동성애자로 겪은 일들과 감정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냈는데, 이처럼 책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편견과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성 소수자를 그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작가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도발적이지만,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녀를 지지하는 친할머니는 장로 교회 노파들로부터 "늙은 미친년"이라는 욕을 주기적으로 들었지만, 그 할머니는 그 시대보다 조금 빨리 깨어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군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녀의 차에는 낙서가 쓰여져 있었다. 누군가 렌터카에 거친 여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속어인 "다이크"를 쓰고 "죽어라" 라는 말을 써 놓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미군 복무 규정이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도 알 수 있지만, 개인의 인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도 동성애자나 트렌스젠더 등의 성 소수자는 군인으로 복무할 수 없지만, 한국보다 더 빨리 민주주의로 정착했던 미국의 방식 또한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또, 로렌이 보안관의 개인적인 일을 도왔을 때도, 보안관의 주택이었음에도 방화가 일어났다. 그렇게 로렌은 장소불문, 차와 살해 협박을 받았다. (군과 연결된 수사관들은 군법 회의에서 오히려 로렌이 살해 협박을 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차에 방화를 했다고 믿을만한 물증을 찾는다.)
"page.36
베리 윈첼 육군 일병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켄터키에 있는 주둔지 막사 복도에서 야구방망이로 얻어맞아 사망하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두려웠다. 내가 두려워한 최악의 사태는 공군에서 쫓겨나는 것이었다. 내 자동차에 불을 붙인 행위는 살인과는 큰 차이가 있어 보였다. 구타 가능성은 좀 더 커보였다. 그러니까 자동차가 불에 타고 6개월이 지난 6월에 나는 다음 메시지를 받았던 것이다. " 총, 칼, 방망이 중에 뭐가 좋을지 결정을 못하겠군."

로렌은 진실된 말보다는 거짓을 말해야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이비 광신도 집단에서 이미 터득한 이유이기도 했다.) 사회는 자신이 처한 사실 뿐만 아니라 거짓으로 스스로를 숨기기를 바라는 듯 하다. 로렌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찾는다. 누군가를 대신해 사우디아라비아로 3개월 간 떠났을 때도 군에서 시간을 버는 완벽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짧을 수도 있는 3개월의 답답한 기간이었지만,(사우디아라비아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여성들은 아바야와 히잡을 써야 한다.) 그녀는 그 곳에서 카드 놀이를 하는 등,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헬렌은 차라리 그 편이 좋았다고 얘기한다.
[혼자서 하는 카드 놀이]에서는 작가가 어릴 적 광신도 집단에서 생활했던 이야기와 불과 24살에 군대를 제대하게 된 이야기가 있다. 군대에서 로렌 허프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그들은 로렌의 협박범이 누군지, 차에 불을 붙인 게 누군 지가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로렌 허프를 군대에서 쫓아낼것인가를 궁리한다. 어쩐지 부모들로 인해 광신도 집단에 들어갔지만, 다시 찾은 집단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해 씁쓸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로렌은 이후 새로운 인생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후 로렌은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그리고 그 직업 안에서 불편한 사실들을 마주하고, 그 문제에 대해 질문한다. 에세이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여러 직업을 경험하고 그녀의 생각들이 함께 어울려지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부분은 실소와 함께 웃음을 짓게 한다. 그리고 그녀의 정체성만큼 이야기의 깊이가 있는 것은,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그녀가 삶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였다. 에세이지만 여러가지 질문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인문학적인 느낌도 주는 새로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