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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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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는 처음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의 서사시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이 책의 표지와 길가메시에 대한 표현에서 캐릭터를 먼저 읽을 수 있었고, 생각보다 두께가 있지만, 시 적인 유의와 구어체를 생각하게 하는 대본느낌도 물씬 나서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page.27 거룩한 야생 암소, 닌순 여신의 젖을 빤 루갈반다의 야생 황소, 천하장사 기운을 지닌 길가메시!
장신으로 당당하고 기개있는 길가메시, 산 속에 길을 내고 고지대 비탈에 샘을 파고 광활한 바다를 건너 해 뜨는 곳으로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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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 개봉할 이터널스에서 배우 마동석의 배역이 바로 "길가메시"이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처음 알게 된 영화의 배역과 이 책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동석 배우의 배역이 너무 잘 어울린다 생각한 이유가 바빌로니아 서사의 길가메시의 이미지 때문이다. 길가메시의 강인함,(책의 서두에서 길가메시는 왕의 지위에 대적해 "짐이 왕이다" 라고 선전 포고를 한다.) 그리고 신들의 자비로움, 책 속에서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것은 인간과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영화화 하기 정말 잘 어울리는 캐릭터가 아닌가.. 길가메시의 절반은 인간, 절반은 신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길가메시로 추정되는 석상에서는 사자와 함께 있는 길가메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영화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길가메시 서사시는 4000년전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서 쓰여졌다. 실존했던 왕과 신화의 이야기를 버무렸기 때문에 느껴지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느낌은 색다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신화적인 면모보다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감정이 명백히 심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졌다는 점은 새로운 발견이다. 과거에는 뇌보다 심장을 강한 의미로 부여했고,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을 모두 심장이 한다고 결론내렸으니 말이다. 약 3200년 전에 쓰인 인도의 성전 베다 찬가들을 엮은 라그베다에도 생각이 심장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신화적인 특색만큼 역시 책의 구성 또한 독특하다. 대괄호( [] )와 점(.... ), 그리고 각 페이지의 옆 단에는 5줄로 나눠지는 상영 문자( X-220, VI-55 )들이 있다.(솔직히 그렇게 쓰여진 이유는 모르겠다. 어차피 책을 읽는데 페이지를 확인하지 문장의 줄을 세지는 않으니까. 다만 바빌로니아의 성전에서 그렇게 원문을 표시했고, 역자가 그대로 옮겨 놓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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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다룸과 동시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의 죽음의 신(타나토스)가 인간이 되어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게 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반인반신인 길가메시의 능력과 결국 인간이란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할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책은 철학적인 느낌을 준다. 신화와 철학의 조화가 느껴지는 서사시라고 할까. 죽음은 결국 인간의 한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책에서는 친절하게도 바빌로니아 개별 작품으로 개시된 시들을 소개한다. B.C. 2750 년 경에 쓰인 시지만, 과거임에도 수준이 굉장히 높다. (비록 다른 개정본 보다 짧거나 길게 남아있는 등의 완벽한 시는 아니지만, 적지 않게 판본에서 느껴지는 시는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훼손된 일부분을 제외하더라도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에도 현대지성에서 오리지널 텍스트로 확인할 수 있어서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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