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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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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계속되는 두 개골의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의사는 뇌 스캔 촬영결과 대뇌 뒤쪽에 종양이 보인다고 말한다. 몇 차례 검사를 하고, MRI촬영도 했지만, 종양을 정확하게 진단하기에는 충분히 않았다. 현미경으로 세포검사를 했던 날, 그 종양은 악성임이 밝혀졌다. 공식적인 진단명은 성상세포종 3기, 더 절망적인 상황은 의사가 머리를 열어 보았을 때였다. 종양은 동시다발적으로 자라고 있었고, 애초에 종양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젋은 소설가의 글은 노트북에서 발견되었고,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다.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독한 자신을 바라보기 싫어, 곁에 사람을 두게 된다. 더 나아가 내가 죽었을 때, 주변엔 아무도 없고, 내가 죽은 채 고독사한 채 발견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에 젊은 소설가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달갑지 않다. 그는 그들의 일상을 오히려 자신이 방해하고, 번거롭게 했다는 생각에 꺼림칙할 정도다. 그는 절실히 혼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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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시간이 한 줌 밖에 없다면, 그러니까 내가 다시는 이 사람들 얼굴을 볼 수 없고, 그 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남길 기회가 없다면, 그 동안의 인연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나누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내가 가장 오래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남이 아닌 나였다.
물론 작가의 말처럼 어떤 사람과 한 공간에 있다 해서 그와 반드시 가깝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기서, 글을 쓰는 모든 이가 그렇다고 정형화시킬 수는 없지만, 젊은 소설가가 생각하는 글귀에 공감을 얻었다.
" 언제나 일정량의 고요함과 평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그 두 가지를 내 의지대로 취할 수 있는 상황을 원했다. " 라는 것이 그것인데, 누구나 혼자 있어야만 닿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만약, 나도 젊은 나이에 삶을 달리해야 한다면, 여러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나만의 장소를 원하게 될 것 같다. 어찌보면, 평생동안 절대적인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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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살다 혼자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 하는 사람이 정작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의문이다. 어른으로 성장한 후에는, 자기 자신과 문제없이 잘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는 고독이어야 할 것이다.
한 편으로는 "죽음"을 생가하면서, 내가 갈 때를 알게 되는 것은 반대로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닌 의지를 불러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제 더는 잃을 것도 없을 때, 타인의 눈치와 자존심, 기대감에 따라 타협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 다른 방향과 관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젊은 소설가는
<어떤 사람들은 엉뚱한 일을 택하며, 자기의 길이 아닌 길을 가면서, 세월을 허비하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선택했다면, 탁월하게 해냈을 일을 찾아내기 바로 전에 포기하거나 죽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관심사가 있거나 재능이 있다면, 반드시 시도해봐햐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 말은 너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다. 그런 말은 시한부판정을 받은 소설가가 이 책을 포함해, 아홉권의 책을 쓰면서, 본인 스스로가 정말 하고 싶고, 실제 하고 있는 방향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자신을 돌아보고, 철학적인 물음을 계속해서 질문하는 글들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을 넘어, 시한부인생을 사는 누군가의 생각과 심정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좀 더 인생과 삶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다.
만약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면, 그러니까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혹은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하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80쪽의 설명하는 글이 공감을 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그저 완전한 우연에 의해 자신이 된다. 내가 나라는 사람으로 태어나 내가 되는 이 순서와 과정의 어떤 부분도 내가 택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만 우리는 작은 선택권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고, 지금의 나에게 걸맞은, 나와 조화를 이루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 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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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과거와 미래를 더 깊게 생각하게 한다. 현재, 나의 모습을 떠나 " 만약에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책의 글들은 하나같이 매우 심오하다. 철학적이다. (그렇다고 글이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깊이가 좀 더 심오해지고, 진지해진다.
더구나 작가의 이 책은 작가의 리얼 이야기가 아니다. 죽음을 주제로 쓰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시한부 인생으로 만들어 버린 작가의 사색이다. "죽음"에 관한 사색은 너무 사실적이라 놀랍기까지 하다. (서른 다섯의 젊은 소설가가 남긴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작가 로버트 판타노의 제 2의 자아가 아닌가 싶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세상의 끝에서 어떤 가치와 경이로움을 찾을 수 있을까? 철학과 문학에 바탕을 둔 로버트 판타노의 짧은 단상과 함께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짧지만 묵직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