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말하는 의미의 예의는 
에티켓이나 의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조직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한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를 
배울 필요가 있다. 

내가 이야기하는 예의란 사람을 대할 때의
문명화된 태도의 기본 요소로(심지어 나는 
‘교양 있는‘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풀지 않고, 
누군가에게 말할 때는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사람들의 약점을 비판하며 괴롭히지 않고, 
다른사람을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말 그대로 기본적인 것이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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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에게 누군가 그들의 등 뒤를
든든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정치, 
이러한 정치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형태밖에 없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다. 

자유시장과 개인의 자유를 유려한 문장으로 옹호한 
자본주의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조차도 『도덕감정론』(『국부론』에 앞서 쓴 책)에서 공감과 공동체와 
다원주의의 중요성을 폭넓게 다루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가가 공동체의 기반 시설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며,
필요할 때는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시장의 고삐를 확실히 죄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했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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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상황은 반대로 돌아갔다. 
기진맥진한 과학자는 침대에 누웠지만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서 일어났다.

"그의 침대 옆에 무시무시한 존재가 서있는 모습을 보았고, 
커튼을 열어젖히고는 누렇고 축축한 
그러나 생각에 잠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메리는 꿈속의 환영에 전율을 느꼈고, 밤새 그 장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사람들에게 
‘귀신 이야기‘ 주제가 떠올랐다고 말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메리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퍼시 셸리의 격려로부터 용기를 얻은 메리가 
단편 작품으로 구상했던 이야기는 1년이 흘러 소설로 
완성됐다. 그리고 그 제목을 <프랑켄슈타인, 또는 천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라고 붙였다.

메리 셸리의 대표작인 이 소설은 자연을 통제하기 위한 
과학적 시도에 대한 심오한 탐구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를 추구하는 영웅, 즉 인류를 위해 
무모하게도 신의 권력을 넘봤던 고독한 과학자에 대한 
냉혹한 비판이기도 하다. 

다양한 각색과 개작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은  오늘날의 신화로 자리 잡았고, 우리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작품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SF로서 최초의 위대한 작품이자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서 직면하게 될 경고의 메시지기도 하다.

무엇보다 <프랑켄슈타인>은 죽음을 정복하는 판타지다. 
한 시대 또는 여러 다양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메리가 빠져들었던 판타지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그녀가 만들어낸 비극적 영웅은 
수천 년에 걸쳐 신에게만 허락됐던 권능에 대한 도전을 
그리고 "죽음이 분명하게도 부패하게 만들었던 생명을 
새롭게 되살리는"도전을 자극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죽은자를 부활시키는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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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브랜더들은 더 이상 타이틀을 좇는 직장인으로 살지 않는다. 스스로를 고용한 직업인으로 변화한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도 ‘나는 나를 고용했다‘는 마인드로 자신의 직업을 정의하고 정체성으로 연결시킨다.

소속, 직업, 직급, 직책을 들어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소개말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장담하기 어려워진 세상. 오늘날 필요한 것은 전문성보다는 정체성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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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인 피츠버그의 면직물 공장에서 주급 1달러 20센트를 받았던 앤드류 카네기는

이후 철강업, 철도업, 신문 발행 등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65세에 3만 에이커 규모의  서덜랜드 스키보 skibo 성으로 은퇴했다. 

"죽을 때 부유한 것은 수치"라는 신조에 따라 
카네기는 재단을 설립해 2,811개에 달하는 
무료 도서관을 세웠다. 
미국에 1,946개, 영국에 660개였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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