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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한 출발 - 카프카 탄생 140주년 기념 단편선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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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의 한 교실. 방학이 끝나고 첫 국어 수업에서 독후감 발표 시간이다. 카프카의 소설이 주어진 과제였다. 한 학생이 일어서서 발표를 하던 중에 선생님은 "그래서 부조리가 뭔지 설명해 볼래?"라고 숙제 노트를 줄줄 읽던 학생에게 묻는다. 옆 친구가 손톱을 물어뜯는다. 해설에 있는 '부조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던가. 사전상 '부조리'의 뜻은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리에 어긋남. 또는 그런 일.'이다. 학생들은 질문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조금은 두려운 정적을 견딘다. 운동장의 햇살은 뜨겁지만 열어 놓은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곧 가을이 다가옴을 느끼게 한다. 집과 학교만 오가던 고등학생이 느끼는 부조리에는 한계가 있다. 어른이 된 지금 그들은 사회와 관계 속에서 수많은 부조리를 듣고 본다.

 

<돌연한 출발>은 카프카 탄생 140주년을 기념한 단편집이다. 카프카의 글은 물론 육필원고와 편지 드로잉 등의 도판, 프라하 시내의 사진 등이 번역하신 전영애 선생님의 해설과 함께 실려있다.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시민 10%만이 사용하던 독일어를 사용하고, 유대인이었으나 유대교 신앙이 없는 문화적 언어적 이방인이었다. 그는 억압적인 아버지의 심리적 억압에 굴종하고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성인이 된 후 공무원 같은 보험회사에 일하는 동안 겪은 법과 관료 체계에 무기력함은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고립과 존재론적 불안으로 드러난다.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사회나 가족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단절된 채 외롭고 불안한 존재로 묘사된다. <변신>에서는 벌레로 변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가족들에게 소외된 채 죽어가고, <심판>의 요제프 K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체포되 처형당하며, <시골의사>에서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비난받고 희생당한다. <>에서 K는 성에 접근하려 하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법 앞에서>는 농부가 법에 접근하려다 평생을 보내고도 죽음 앞에 이름도 불리지 않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1800년대 후반을 살았던 카프카가 느낀 소외와 불안이 지금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는 진보했지만 인간의 삶은 더 복잡해지고 개인의 경쟁은 심화되었다. 현대인이 겪는 고통이나 소외, 무력감 등 카프카의 세계관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그의 주인공들이 도달하려는 목적지나 진실은 끝내 지연되고 도달할 수 없었듯이 카프카 자신도 수많은 원고를 미완성으로 남겼다. '그 어디에도 출구가 없는, 존재의 불안의 집약과도 같은' 작품들이 그러하다. 자주 페이지를 다시 되돌리게 되는 이유는 도대체 이건 무슨 은유일까? 생각하며 읽기 위함이다.

표제작 <돌연한 출발>의 주인공인 ''는 말을 꺼내오라고 하인에게 명령한다. '어딜 가시나이까?'라는 하인의 물음에 모른다고, 그냥 여기를 떠나겠노라 말한다. 자신이 떠나려 했으니 그것이 목적지이며 굶어 죽을지 몰라도 양식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냥 여기를 떠나 내처 가야만 다다를 수 있다는 '자신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살다 보면 분연히 일어나야 할 순간이 있다. 89765가지 이유로 출발하지 못하는 이들은 돌연히 출발할 그가 남긴 말을 믿고 싶다.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없는 정말 굉장한 여행이란 것이다."(p155)

나는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다만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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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품격
김기석 지음 / 현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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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다"

이 책은 목회자의 길을 걸어오신 김기석 목사님이 신문에 실었던 글을 엮은 칼럼 모음집으로 깊은 사유에서 길어올린 인문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도 이내 생각의 바다로 우리를 이끈다.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우리들의 '삭막하고 곤두선 전쟁터'같은 현실 속에 '다시 채우는 힘'을 불러일으키는 글들로 가득하다.

특히 시 문학작품과 영화의 지식은 물론 저자가 여행에서 느낀 해박한 경험과 독서 편력을 따라가다보면 새로운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희망'을 꿈꾸는 책이기도 하다. 개인이 갖추어야 할 마음과 자세, 경계해야 할 것들을 되새기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자연스레 성숙해지고 우리가 사는 곳은 보다 따뜻한 희망에 찬 세상이 되는 것이다.

친절하고 따뜻한 말, 누군가의 가슴에 꽃이 되는 품격 있는 언어는 어떠한가. 저자는 '결국 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많겠지만 파괴적 분열적 정치언어 대신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정치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는 또한 누구나 알지만 심각성을 인지 못하는, 어쩌면 경제보다 급박한 '기후 위기'와 생명중심의 녹색세상에 대해 글 곳곳에서 성찰을 일깨운다.

세상이 각박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사회적 약자들과 참사를 겪은 이들을 위한 진정한 애도이다. 저자는 '타자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이야말로 분열된 세상의 치유제'라고 하는 레베카 솔닛을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심상을 강조한다. 바로 다정함 공감 연민 묵묵한 헌신 연대 환대 배려 긍휼 명랑함 등이다.

아울러 기쁨을 느끼고 경탄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잃지 말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에 비해 가장 경계할 것은 불만족과 불안을 일으키는 소비사회, 절대적 확신의 자세, 배제 혐오 냉소 비관주의 비교주의 같은 '욕망의 노예살이'에서의 해방이다.

이 책에는 고통을 통해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드러낸 이야기도 소개되어 감동적이다. 뇌졸중으로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던 사람이 써낸 책, 산에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등산가가 오른 14번째 등반, 학년이 바뀔 때 80명 모두에게 각각의 특별한 상장을 마련하신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 등.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유머와 명랑함을 잃지 않고 친절하고 따뜻한 말로 우리 곁에 다가온 사람을 사랑으로 대할 때 '신뢰사회'는 시작된다. 삶의 의미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헤셸의 말에서도 인간의 이타성을 읽는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이어가며 어떤 의미 있는 책을 써 내려갈 것인가. 저마다 자신만의 의미를 품고 다정한 언어와 친절한 태도로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하여 스스로가 희망의 반딧불이 된다면 어떨까. 지금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꼭 필요한 것은 다정하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최소한의 품격>이 아닐까.

책 속의 책을 몇 권 메모해 본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


"온몸으로 어둠과 맞서 빛을 만들고 친절함으로 세상에 봄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세상의 희망이다." p87

"절망의 심연에 속절없이 끌려 들어갈 것인가.,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명랑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 p172

"말이 곧 당신이다. 오늘,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든다." p178

"어쩌면 '나'라고 하는 것은 타고난 바탕 위에 시간과 상황이 그려낸 무늬인지도 모르겠다." p231

"삶의 의미는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할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p236) )

"희망은 스스로 빚는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시작이다."p296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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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쌓기의 달인
노인경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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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기자가 취재를 하러 간 곳은 매일 탑을 쌓는 남매가 있는 현장이다. 비둘기 기자가 묻는다. 탑을 쌓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슬아슬해서? 어려워서? 관심받고 싶어서? 달까지 높이 가고 싶어서? 대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좋아하니까요."

남매가 쌓아 올린 물건들은 어디에나 있는 물건들. 의자, 양동이, 우산, 프라이팬은 물론 욕조에 화분, 침대, 세탁기, 냉장고 등 온갖 가구와 심지어 집까지. 그야말로 달인이다. 대롱대롱 매달려 솟아오른 높은 탑이 하늘까지 이어질 참이다.

남매는 진짜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비둘기 기자를 땅으로 데려가고 이윽고 맨 처음 의자를 툭 건드리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모든 물건들이 일순간에 떨어져 흩어진다.
"무너뜨리려고요." "다시 쌓으려고요."
"지금까지 탑이 된 비둘기 기자였습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끝나지만 새 기자는 남매가 다시 쌓기 시작하는 물건들과 함께 있다. 그 자신도 탑이 되어.


<특종! 쌓기의 달인 >의 저자 노인경 작가님은 아이들이 탑을 쌓아가는 과정이 '순간의 기쁨에 충분히 몰입' 한 상태로 보았다. '탑(결과)과 쌓기(과정)'를 통해 자신의 세상을 마음껏 부수고 다시 지으며 단단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어릴 적 블록 쌓기는 누구에게나 즐거운 놀이 중 하나이다. 나무나 플라스틱 모양을 하나하나 쌓다가 무너지는 순간, 아쉽지만 슬프지 않다. 언제든지 다시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무너짐이 실패나 좌절이 아닌 다시 시작하면 되는 즐거움이라는 걸 알기에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다.

이 그림책에는 블록이 아닌 생활 속 모든 사물을 쌓을 수 있고 쌓는다는 설정이 유쾌하고 독특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무너져도 괜찮다는 사실은 어른에게도 울림을 준다. 다시 한번 재밌고 행복한 일이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이다.

무너져야 새롭게 세울 수 있다. 탑을 쌓는다는 목표와 성취, 쌓아가는 과정의 보람과 즐거움, 무너져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쌓으려는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 오롯이 몰입하며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던가. 오늘 우리가 즐겁고 기쁜 동심의 마음으로 새로 쌓고 싶은 탑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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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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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그림책 <멸치 다듬기>는 이상교 님의 2019년 시집 <찰방찰방 밤을 건너> 속 '멸치 다듬기' 시가 밤코 님의 그림과 만난 재밌고도 유니크한 작품이다.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대가리 떼고 똥 빼고
....
국에 넣을 멸치 몸통을 다듬는다
차례를 기다리는 멸치
많기도 하다"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이어지는 재밌는 운율. 작고 귀여운 멸치를 다듬는 아빠 손과 아가 손. 이때 부수러기를 받쳐 줄 신문지는 꼭 필요한 준비물이다.

차례를 기다리는 멸치들은 다양한 신문 기사를 배경으로 모험을 떠난다. 철새 대이동의 계절, 오늘의 운수, 발레리나의 환상 공연, 토막상식 코너, 네 컷 만화와 전시 안내, 영화 소개, 여름철 피서 소식 등이 기다리는 세상 속으로.

주위를 호시탐탐 노리는 밤색 고양이와의 실랑이도 잠시. 이윽고 대가리와 똥 떼인 고소한 멸치들이 수북이 쌓인 그릇이 향한 곳은 엄마가 물을 끓이고 있는 부엌. 오늘 저녁은 멸치 국수를 먹기 때문이다.
양파 탁탁탁, 당근 척척척, 애호박 채채채, 썰어 넣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 국수를 후후 쪼로록 불어 먹는 행복한 저녁 식탁.

구수한 멸치 국물 냄새가 나는 저녁, 누군가와 멸치를 다듬고 국수를 삶아 함께 식사를 하는 행복 가득한 모습이 떠오른다. 소소한 일상 속 함께 나누는 정과 문득 엄마가 그리워지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책 <멸치 다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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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에게 일어난 일
에밀리 보레 지음, 뱅상 그림, 윤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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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엄마가 펑펑 운 듯 슬픔에 잠겨 있다.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슈퍼 고양이 듀크가 아팠었는데.. 투실투실한 방귀쟁이에 배에 언제나 낙엽을 붙이고 다니고 걸걸한 아저씨 목소리로 그르렁거리던 슈퍼 고양이 듀크가 떠났다는 것이다. 대체 어디로? 엄마는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 하늘로!‘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인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도저히 아이에게 할 수 없었던 엄마와 아빠는 온 힘을 다해 갖가지 이야기들을 지어내 설명하고 듀크와의 추억을 떠올리지만 아이는 묻는다. ”왜 그랬을까?“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고 우는 엄마에게 아이는 자신의 망토를 씌우더니 말한다. ”엄마, 나 듀크가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

어른도 그 의미를 다 이해하기 어려운 삶과 죽음, 이별과 상실이라는 슬픔을 아이가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맑고 천진하다. 오히려 엄마와 아빠를 위로할 줄도 아는 씩씩함까지. 역시 슈퍼 엄마, 슈퍼 아빠, 슈퍼 가족임을 확인한 세 사람은 꼭 껴안고 듀크를 기린다. 아이의 생각은 무엇이었고 듀크는 어디로 갔을까?

이 작품의 저자 에밀리는 자신의 아들 뤼시엥과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고 소중한 기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싶을 때 용기를 주는 따뜻한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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