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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를 위해서 - 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개정증보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평점 :
성역으로 여겨지는 생각들이 있다. 독도, 친일파, 위안부, 역사왜곡. 성역에는 ‘식민지의 기억, 위안부 할머니, 약소국, 짓밟힌 백성들‘ 등의 피해자가 산다. 성역의 밖에는 가해자가 산다. 제국주의, 일본, 타자. 가해자는 비판 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피해자는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보호와 억압의 경계가 곧잘 흐려진다.)
박유하는 이 책에서 성역을 넘나들며 가-피해자의 작위적인 틀을 벗어나, 잠시 판단을 멈추고 구체적인 사실을 들여다 보기를 권한다. 타자와 자아에 대한 왜곡을 그치고 타자와 자아를 아우르는 ‘우리‘ 안의 폭력성에 주목하고 이를 극복해야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맗란다.
성역에 들어간 자가 받는 형벌인 걸까. 2013년 이 책의 속편 격인 ‘제국의 위안부‘를 내고 박유하는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소송에 휘말렸다고 한다. 2015년 작성한 화해를 위하여 개정판 서문에서 박유하는 소송 소속을 전하며 씁쓸한 심경을 전하고 있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인간 세계 너머 다른 세상을 보고 온 자들은 행방이 묘연해 졌다거나 산으로 들어갔다거나 큰 물에 들어가서 조개가 되었다거나 하는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자는 외롭다. 이미 보아 버린 진실을 외면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갈 수도 없다.
다른 생각을 하는 자는 외롭다. 지난 금요일 있었던 일이다. 학교에서 동료교사가 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는 학생을 지도하는 중이었다.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면 학교 이미지가 나빠진다. 동네 위신도 서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학생들이라고 알아들었을까. 퇴근길에 우연히 다시 본 그 학생들은 여전히 체육복 차림이었다.
박유하는 사실과 대면하고 상대를 이해하면 화해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 순진한 생각인 걸까. 너무 사람을 믿는 건 아닐까.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직시하고 이해하기는 커녕 사람들은 박유하의 글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왜곡했다. 그리고 박유하에게 돌을 던졌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건 절망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희망적이다. ‘일본은 가해자이다. 한국은 피해자이다.‘ 이건 ‘나는 진상을 모두 안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으니 더 알아보지도 생각하지도 않겠다는 선언이다. 차라리 타자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나는 당신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고, 끝내 다 이해 못할 테지만 아무튼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소, 나는 당신을 더 알아가겠소. 이게 훨씬 건강하고 윤리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는 다 안다는 오만과 독선을 벗어나 잘 모르는 자의 입장을 가지고, 결론을 미리 내리지 말고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