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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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이 넘는 추석 연휴에 읽으려고 세 권의 책을 빌렸는데 겨우 두 권 읽었다. 요리를 했고 대구에 다녀왔고 찬장에 머리를 부딪혔고 뇌진탕에 걸렸고 응급실 신세를 졌고 인천에 다녀왔고 아직 아프고 있는 중이라 바빴다. 지금도 머리가 막 어지럽다.

내년 1학년이 쓸 교과서 선정을 위해 교과서 9종을 검토 중이다. 교과서에 실린 글들은 왜 이렇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뭐랄까. 절실함이 없다. 읽는 이에게 가서 닿고 싶다는, 귀에 내 목소리를 때려넣고 싶다는 절실함. 그게 없다. 절실한 문제는 대체로 아직 사회적 합의가 끝나지 않았고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교과서는 안전한 주제, 이미 합의가 끝난(끝났다고 믿는) 주제들만을 다룬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주장하는 글도 설명하는 글도 건의하는 글도 온건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 가슴에 가닿기는 커녕 귓구멍에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글 가지고 배움이 일어날까. 회의가 생긴다.

이 책을 읽고 교사로서 고민하게 되는 대목은 학생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학생들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하아아 그래 노력해봐야지. 힘을 내자. 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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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를 위해서 - 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개정증보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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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으로 여겨지는 생각들이 있다. 독도, 친일파, 위안부, 역사왜곡. 성역에는 ‘식민지의 기억, 위안부 할머니, 약소국, 짓밟힌 백성들‘ 등의 피해자가 산다. 성역의 밖에는 가해자가 산다. 제국주의, 일본, 타자. 가해자는 비판 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피해자는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보호와 억압의 경계가 곧잘 흐려진다.)
박유하는 이 책에서 성역을 넘나들며 가-피해자의 작위적인 틀을 벗어나, 잠시 판단을 멈추고 구체적인 사실을 들여다 보기를 권한다. 타자와 자아에 대한 왜곡을 그치고 타자와 자아를 아우르는 ‘우리‘ 안의 폭력성에 주목하고 이를 극복해야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맗란다.
성역에 들어간 자가 받는 형벌인 걸까. 2013년 이 책의 속편 격인 ‘제국의 위안부‘를 내고 박유하는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소송에 휘말렸다고 한다. 2015년 작성한 화해를 위하여 개정판 서문에서 박유하는 소송 소속을 전하며 씁쓸한 심경을 전하고 있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인간 세계 너머 다른 세상을 보고 온 자들은 행방이 묘연해 졌다거나 산으로 들어갔다거나 큰 물에 들어가서 조개가 되었다거나 하는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자는 외롭다. 이미 보아 버린 진실을 외면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갈 수도 없다.

다른 생각을 하는 자는 외롭다. 지난 금요일 있었던 일이다. 학교에서 동료교사가 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는 학생을 지도하는 중이었다.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면 학교 이미지가 나빠진다. 동네 위신도 서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학생들이라고 알아들었을까. 퇴근길에 우연히 다시 본 그 학생들은 여전히 체육복 차림이었다.

박유하는 사실과 대면하고 상대를 이해하면 화해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 순진한 생각인 걸까. 너무 사람을 믿는 건 아닐까.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직시하고 이해하기는 커녕 사람들은 박유하의 글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왜곡했다. 그리고 박유하에게 돌을 던졌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건 절망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희망적이다. ‘일본은 가해자이다. 한국은 피해자이다.‘ 이건 ‘나는 진상을 모두 안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으니 더 알아보지도 생각하지도 않겠다는 선언이다. 차라리 타자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나는 당신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고, 끝내 다 이해 못할 테지만 아무튼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소, 나는 당신을 더 알아가겠소. 이게 훨씬 건강하고 윤리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는 다 안다는 오만과 독선을 벗어나 잘 모르는 자의 입장을 가지고, 결론을 미리 내리지 말고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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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화해를 위해서

사람들의 증오나 혐오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상대를 공격하는 것. 그것은 하시모토 시장이 노동조합이나 그를 비판하는 학자들에 대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라고 느꼈다. 사람은 무언가와 싸우려고 하면서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공격하고 있는 상대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 (91쪽)

"증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회에 넘치는 증오의 말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회가 그 실패를 숨기기 위한 필수품인 것이다. (150)

신자유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교육의 시장화에 의해 붕괴되는 미국 공교육의 현장을 면밀히 관찰해왔던 스즈키 다이유는 어느덧 ‘풍요로운 비지니스의 토양‘이 되어버린 학교의 새로운 모델로서 차터 스쿨을 소개하고 있다. 휑뎅그렁한 방에 수많은 칸막이로 나뉜 박스가 있으며 아이들은 헤드폰을 낀 채 눈앞의 컴퓨터를 향하고 있다.
"학교 측은 정규교원을 줄이고, 시급 15달러의 무면허 강사가 한 번에 최고 130명의 학생을 모니터하게 함으로써 1년간 약 5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교원의 절반은 경력 2년 미만이고 75퍼센트는 단 5주간의 트레이닝으로 비정규 교원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티치 포 아메리카(미국의 교육봉사단체) 출신이다."
이 학교를 열렬하게 지원하는 실리콘밸리의 사장들은 물론 자기 아이들을 이 ‘서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머지않은 풍경일까.
스즈키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고찰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경제적 합리성을 모든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원리가 우리 ‘마음속까지 깊이‘ 침투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자처해서 장기판의 말이 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맞서야 한다. 우선 우리 자신의 내면과 말이다.(162~163)

사람은 실수한다. 조직이나 사회도 실수한다. 국가도 실수한다. 그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정의‘든 간에 "나는 실수하지 않는다"고 하는 놈은 의심해야 한다. 자칭 ‘애국자‘라고 하는 놈들은 ‘국가의 올바름‘에 민감하다. 하지만 올바르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손택에게 조국인 미국은 ‘올바름‘과 ‘부정‘이 뒤섞인 존재였다. 그녀는 그런 모순된 미국을 사랑했다. (182~183)

"의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고착되기 쉽다는 점이다. (....) 어떤 일이든 거기에는 항상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어떤 사건이든, 그 밖의 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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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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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읽을 책
강수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유아사 마코토, 덤벼라 빈곤
야마다 마사히로,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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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에게 박수 치는 게 왜 놀랄 일일까? - 사회 문화 질문하는 사회 1
오찬호 지음, 신병근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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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의 책 중 처음 읽은 것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였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진격의 대학교‘에서도 오찬호는 늘 화가 나 있다고 느껴졌다. KTX 정규직 전환 투쟁에 공감하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이상해진 남자들에게, 맹목적으로 돈을 좇는 대학에게 그는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의 ‘화‘가 좋았다. 내 주위 사람들도 나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곧잘 내는 캐릭터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버렸다. 우리는 메에에에 양처럼 순한 사람들이 되었다. 메에에에- 나는 양처럼 살고 있지만,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책 속에서 화를 내고 있는 오찬호가 좋았다. 아아 더 화끈하게 화내 줘요. (물론 이러라고 쓴 책은 아니겠지만.)
그런데 이번 책은 표지가 좀 귀엽다. 제목도 그렇다. 알고 보니 중학생을 위한 책이었다. ‘이 정도면 사회학이 정말 매력덩어리 아닐까요?‘라니. 설마 오찬호마저 메에에에 양이 된 걸까.
아아 다행이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라고, 좌절할 만한 일이 너무 많다 보니까 게을러진 거라고, 120만원이면 먹고 살만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곰곰 생각해 보지 않고 안일한 결론에 이르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더 생각해 봐야 한다고 채근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중2병은 정말 나쁜 것일까‘이다. ‘중2병‘이라는 말은 청소년기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청소년들에게서 자아를 탐색할 시간을 빼앗고 어서 어른이 되라고 재촉한다. 오찬호는 청소년이 겪는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히려 꼭 필요한 것이라고 외친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사물에 대해 높임법을 사용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그들이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무한경쟁 사회에서 과잉친절을 강요받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더 읽을 책
박정호, ‘재미없는 영화, 끝까지 보는 게 좋을까?‘
박현희,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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