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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 읽다 말고 끄적끄적
아껴보고 싶었다. 357페이지 분량의 책이었지만 한쪽 한쪽 넘길 때마다 아쉬웠다. 아직 절반 이상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스티븐 킹의 어린 시절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아내 태비와의 이야기(개인적으로 정말 훌륭한 아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 그 모든 게 신기하고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며 재미있고, 그 와중에 틈틈이 받아 적어놓은 내용이 방대했던, 그 정도로 가치가 있던 책이었다. 하루키의 책을 읽고 김연수의 책을 읽고 스티븐 킹의 책을 읽었다. 각자가 살아온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내가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몸에 전율이 흘렀다. 결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그런 충만한 감정이었다.
# 너무나도 로맨틱한 남자.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소설가의 삶. 너무나도 평온하고 화목하고 정신적으로 윤택한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빨려 들어갔었다. 하루키의 글[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나서와도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는데, 스티븐 킹의 책이 그 감정의 깊이가 훨씬 깊었다. 어느 장을 펼쳐도 아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활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런 느낌. 너무 따뜻했다. 소설가의 삶이었지만 한 가정의 남편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단지 그의 직업이 소설가였으리라. 그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태비는 그를 믿고 묵묵히 지지해줬으리라. 나 역시도 그런 아내가 되고 싶다고 느꼈다.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역시나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화목한 가정과 행복한 삶이기에 그 내용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성공의 비결은 건강과 결혼생활이라고 말하는 로맨틱한 남편이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집필한 스티븐 킹이라니!
# 글쓰기에 관하여
수많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와 구체적인 사례들, 심지어 독자들에게 상상을 자극하는 문제까지 제시해주는 친절함까지, 역시 작가를 꿈꾸는 이들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번 정독을 하고, 귀접기와 포스트잇으로 체크를 하며 두 번 더 읽었다. 역시나 중요한 포인트는 어느 작가나 동일하다. 작가의 기본기, 글쓰기의 기본기를 갖추는 것 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기본기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이것은 피해 갈 수도, 돌아갈 수도, 지름길로 갈 수도 없는 길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즐길 때 비로소 작가가 될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글쓰기의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함이라고 마무리 짓는 이 작가가 너무 좋다. 334쪽을 읽는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내 삶뿐만 아니라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작업. 그게 글쓰기라니. 나도 할 수 있단다.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나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스티븐 킹의 장담을 보았다. 나도 스티븐 킹이 말하는 물을 공짜로 마시고 허전한 속을 어서 채워야겠다.
빼어난 스토리와 빼어난 문장력에 매료되는 것은- 아니, 완전히 압도당하는 것은- 모든 작가의 성장 과정에 필수적이다. 한 번쯤 남의 글을 읽고 매료되지 못한 작가는 자기 글로 남들을 매료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p.178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한 그 과정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 (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어가는 (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p.183
나는 하루에 열 페이지씩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낱말로는 2천 단어쯤 된다. 이렇게 3개월 동안 쓰면 18만 단어가 되는데, 그 정도면 책 한 권 분량으로는 넉넉한 셈이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고 신선함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독자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날은 그 열 페이지가 쉽게 나온다. 그러면 아침 열한시 반쯤에는 작업을 끝내고, 소시지를 훔쳐먹는 생쥐처럼 신나게 다른 볼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냥 책상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한 시 반쯤 그날 분량을 끝내는 날이 더 많아졌다. 가끔 말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에는 차 마시는 시간까지 미적거리기도 한다. 나야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정말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는 2천 단어를 다 쓰지 않고 중단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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