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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 굉장히 깊이 볼 줄 아는 작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상당히 좋았다. 어떤 책들은 작가가 조금은 거만한(??)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이 책은 굉장히 겸손하면서도 문장 안에 뼈가 있는 진지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 챕터 하나하나를 읽는데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거리들이 굉장히 많았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책, 이게 내가 인생 책으로 꼽는 기준 중 하나이다.
# 내가 왜 책을 읽고, 그것들을 나누고, 글을 쓰는지 조금을 알게 된 것 같다. 읽을수록 갈증이 더 해지는 나날들... 그럼에도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계속 책을 읽다가 요즘엔 내 생각이 궁금해졌다. 내 내면의 생각이 궁금해질 찰나에 이 책을 접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답은 여러분의 삶 안에 있다는 것만은 미리 밝혀 둡니다.
p.8
나를 당신과 사랑에 빠졌던 남자로 추억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지평선에 뜬 작은 무지개를 보여 주러 당신을 엘버타 주로 데려갔던 남자로,
스위스의 산장에서 당신에게 담배를 가르친 남자로,
당신이 자신을 괴롭힐 때마다 영국에서부터 달려왔던 남자로 기억해 주십시오.
나 역시 당신을 그런 방식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p.16
할머니는 시를 읽고 쓰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합니다. 시 창작반에 나오는 날은 아침부터 서두르게 된다고 합니다. 설거지도 좀 빨리 하게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 원해서, 스스로 기뻐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학자들이 말하는 '자율성의 시간'입니다. p.28
'나를 키우는 시간'은 시간의 척추입니다.
우리 몸에도 척추가 있지만 시간에도, 영혼에도 척추가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이 없다면 우린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질 것입니다.
p.40
배워서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삶 속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에너지들이 시간을 채웁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은 다시 자기 자신을 만듭니다. 성공이나 명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요. 결국 나를 키우는 시간에는 내가 '한 성공한 인간으로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사는 데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걸려있는 것입니다. p.44
책을 읽는 능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데 꼭 필요한 능력들이 있긴 합니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자신을 채웠던 반복과 습관의 타율성을 비우고 새로운 리듬과 질서를 받아들이는 능력 같은 겁니다. 독해력이 있어야 한 해에 1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들을 하곤 하는데 저는 그 생각에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많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책을 몇 번 되풀이해서 보거나 곱씹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정도 규칙적으로 책 읽는 시간을 갖는 것이 몇 권을 읽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p.57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할 사람 또한 자신이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나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는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함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자기를 필요로 하기를, 선택하길 원했습니다. 회사에서 내쳐진 이 노동자는 현대 사회의 가장 난처한 질문 '과연 누가 날 필요로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을 가장 급진적으로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자리와 필요를 책을 읽으며 스스로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에게 다른 인간이 되고 싶다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복직만큼이나 중요해졌습니다. p.75
안정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욕망입니다. 자기 계발서나 긍정 심리학 책들은 안정되고 싶어 하는 우리 마음의 조급하고 약한 부분을 파고듭니다. 뭔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격려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 보고 싶은데 의지할 다른 발판이 없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읽습니다. p.111
우리 시대에 가장 오염된 말 중 하나는 바로 '자기 계발'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이 초상]에서 헨리 경의 입을 통해 "인생의 목적은 자기 계발"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자기 계발은 우리 시대에서 통용되는, 스펙 쌓기를 통한 경쟁력 강화란 의미의 자기 계발과 그 의미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가 말한 자기 계발은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기 계발이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잠재력이란 말도 "알고 보니 내가 미술에 재능(소질)이 있더라." 같은 말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 잠재력은 "내가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는데, 하는구나!" "나한테 그런 힘이 있는 줄 몰랐는데, 있구나!" 같은 것입니다. p.116
그러니 마음 놓고 잊되 꼭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딘가에 간단히 발췌를 해 놓건, 필사를 하건, 에라스무스처럼 주석을 달건, 뭐든 써 보는 겁니다. 발터 벤야민은 한 권의 책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옮겨 쓸 때라고 하기도 했지요.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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