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의 작사법 -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
김이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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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 앉아 한 호흡에 쉬리릭 읽었던 책. 글쓰기에 관해 관심이 있는 요즘이라 구매한 것인데, 글쓰기보다도 작사가의 삶에 대한 스토리가 녹여져 있는 책이었다.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어 시간과 장소에 제약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작사가로서의 김이나의 삶은 나에게 신기함, 그 자체였다. 작사가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유명한 가수와의 에피소드들을 가미시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도 좋았던 것 같다.

 

 

 

# 아이유의 <잔소리> <좋은 날>, 브아걸의 <아브라카타브라> <어쩌다>, 가인의 <피어나>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등 내가 아는 수많은 곡들을 작사한 사람의 책이라니 신기했다. 아니, 그 직업에 대해 신기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지만 말이다.
112페이지를 읽는 도중에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김이나 작사가가 귀여워서. 그 흥분감을 나도 알 것 같아서.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숨길 수 없을 정도의 설레임과 흥분, 나도 겪어봤기 때문에.

 

 

# 이재훈편의 이야기를 보면서 깨달았던 게 있다. 나도 멘탈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내가 추구하던 모습이기도 하고. 정말 다른 것보다도 멘탈이 야무지고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정말 간절하게 음악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불확실한 자신의 재능만 보고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이 간절한가, 아니면 현실을 챙겨가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멀리서부터라도 그 일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 간절한가? 나는 '간절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급하기만 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환경을 탓하고, 잘 된 사람들에게서 다른 외부적인 이유만을 보며, 결국에는 쉽게 포기한다. 그럴 만도 하다. 당장 하루하루가 당신을 죄여올 텐데, 어떻게 마냥 재능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며 한 우물을 팔 수 있겠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핏줄 부자가 아닌 바에야. p.13

 

 

 

 

 

 여느 프리랜서 직종이 그럴 듯, 좋아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p.17

 

 

 

 

 

작사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명심하라. 마치 외국어처럼, 어느 순간 귀가 트여 낯선 말들이 들어오듯 음악으로서의 글자가 보이는 때가 있다. 그러니 많이 듣고 분석하라. 내 맘에 드는 가사를 놓고 보지 말고, 히트를 친데다 롱런하는 곡이 있다면 왜 그 가사가 좋은 건지, 왜 그 가사를 작곡가나 제작자가 선택한 건지 파고들어라. 이것만 미리 훈련해놓아도, 당신에게 온 기회를 단숨에 잡을 확률이 아주 높아질 것이다. p.21

 

 

 

 

 

작곡가는 가수가 어떤 음역대에서 가장 매력적인 음색을 내는지, 반대로 어떤 음역대만은 피해야 하는지를 안다. 작사가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고, 좋은 결과물을 뽑는 데 필요한 소통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상상과 다른 음색이나 박자감으로 현장에서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경우 곧바로 해결할 수 있는 순발력이 있다. 짧은 구간을 수십, 수백 번 녹음하는 경우에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어느 버전이 가장 좋았는지 헷갈리게 된다. 하지만 작곡가는 귀신같이 기억하고 조합해낸다. 예컨대 엷여덟 번째 녹음한 '사랑'과 세 번째 녹음한 '해', 그리고 아홉 번째에 했던 '요'를 붙여주세요"라고 하면, 레코딩 엔지니어의 편집을 통해 완벽한 '사랑해요'라는 한 구절이 완성된다. p.55

 

 

 

 

 

 

 나의 첫 간판은 드라마 <궁>의 OST인 <Perhaps Loe>다. 나의 첫 히트곡. 길거리에서 처음 들은 내가 작사한 노래.
이 곡의 의뢰는 참 희한하게 들어왔다. 놓칠 뻔한 기회였다. 그때도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넘어서 슬슬 일을 정리하려던 중이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박근철 작곡가였다. 한 시간 뒤에 녹음을 무조건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도 픽스된 가사가 없는 상태다. 혹시 작업이 가능하겠느냐고 물어왔다. "당연하죠, 빨리 쓰겠습니다."
때마침 사무실이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게 천운이 아니었을까. 그날 일찍 퇴근했더라면 지하철 안에서 얼마나 원통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OST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개는 좋은 가사가 나오지 않으면 녹음이 미뤄지거나, 가사가 픽스된 후에야 녹음이 잡힌다. 하지만 OST는 다르다. 방영일자가 정해지면, 첫 방송 또는 특정 회차에 무조건 그 노래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OST 작업은 늘 시간에 쫓긴다. 방영 날짜가 다 되어서야 타이틀곡이 정해지고, 가수가 정해진다. 나중에 박근철 작곡가가 알려주길,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맡겨본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워낙 급하지만 중요한 곡이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 맡겨보자 하다가 나에게까지 와준 게 아닌가 싶다. p.109

 

 

 

 

 

 

 다른 곡들과 달리 OST는 서서히 인기를 끌어가기에, 나 역시 서서히 곡의 인기를 체감하는 경험을 했다. 어느 날에는 지하철에서 그 곡을 누군가의 벨소리로 듣고, 어느 날에는 미용실에서도 들리더니, 나중엔 길거리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개인적으로는 그 노래를 들으면 드라마 속 장면보다 내가 직접 겪은 이 세 장면이 더 선명히 떠오른다. 그만큼 소중한 첫 히트곡이었다.
이 곡이 발표된 이후로, 나는 몇몇 작곡가들에게 곡을 의뢰받기 시작했다. 전화가 오면 벌떡 일어나서 받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흥분하지 않은 척하느라 애썼지만, 아마 그들도 느꼈으리라, 나의 흥분을. p.112

 

 

 

 

 

별일 없이 사는 듯하다가 문득 행복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 곡의 가사를 쓰기 며칠 전 샤워를 하는데, 평생 그런 시선으로 본 적 없었던 샤워기 물줄기가 그렇게 반짝거리고 예뻐 보였다. 수압과 수온이 적당한 것이,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이 곡의 시발점이라고 하기엔 너무 보잘것없어서 창피할 지경이지만, 그렇게 '사소한 순간'이 행복으로 느껴질 때 나는 그 어떤 대단한 순간들보다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살에 닿는 듯한 행복'은 살면서 그리 자주 오진 않지만, 이 또한 훈련하다 보면 좀더 자주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p.126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중에 하나 되고
오 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 그중에 그대를 만나 중 -
p.135

 

 

 

 

 

 

 

아니, 좋고 말고를 떠나서 멘탈이 참 건강한 사람이라는 건,
그래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틀림없다.
p.209

 

 

 

 

 

 

사랑하는 사이에서의 섹스는 아름답다.
육체를 통해 정신이 확인되고, 정신이 통해야만 육체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오늘밤' 일어날 일회성 사건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섹스는 건강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가인의 <피어나>는 한 글자 한 글자 정말 많이 신경을 썼다. 자칫 잘못 다루면 나보다도 가인의 이미지에 타격이 갈 수도 있는 얘기니까. 앨범 발매 전의 마케팅 기획이나 인터뷰의 방향성 설정, 뮤직비디오 회의까지 모든 스태프들은 마치 제 딸을 성교육시킬 때처럼 조심스러웠다. <피어나>는 어떻게 보면 첫 경험의 이야기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첫 오르가즘에 대한 이야기다.
어쨌든 이 가사의 키워드가 '첫 오르가즘'이라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서로를 애틋하게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에 대한 얘기다. 즉, 정말 충만한 사랑을 통해서 가진 관계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다. p.243

 

 

 

 

 

'내가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 '당신은 이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부모님이든 애인이든 친구든 하다못해 오늘 아침 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 슈퍼 아저씨라도 나로 인해 잠깐 행복했을 수 있다. 이런 사소한 행복이 쌓여야 결국 다 함께 원대한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325

 

 

 

 

 

 내가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이미 누군가를 웃게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유기견을 돕는다는 사람에게 "그럴 돈이 있으면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애를 도와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프리카에 기부하는 사람에게 가서는 "그럴 돈이 있으면 한국에 못사는 사람이나 도와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고는 국내 기부를 하는 사람에게 가서는 "그럴 돈 있으면 나나 줘라"라고 말하겠지.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돈 생긴다고 누구 위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당장 내 옆의 가까운 사람 하나라도 도울 마음이 있는 사람이 지구 반대편의 생명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주인 없는 동물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람도 위할 줄 안다. 그러니, 사소한 행복을 느낄 줄 알고 또 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타인의 행복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p.326

 

 

 

 

 

나눔은 습관이다. 대단한 액수의 기부금을 대단한 취지의 무엇에 주지 않아도 지금 당장 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당신은 세상이 조금 나아지게 하는 씨앗을 하나 뿌린 셈이다. 아주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기적은 결국 어떤 대단한 일이 아니라, 당신 자체일 수 있다. p.326

 

 

 

 

 

http://niceloveje77.blog.me/22077267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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