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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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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있다. 소설가인 그의 모습이 멋있고, 그의 삶이 멋있고, 그가 지내온 인생의 과정들이 멋있다. 정말로 이 말 밖에 표현할 단어가 없는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게 내 최선인 것 같다. 그가 지내온 세월, 그 시간들, 그 과정들과 경험들 속에서 흐르는 잔잔함.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기분이 그러했다. 딱 그러했다. 멋있음과 잔잔함. 이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실로 엄청난 그의 인생이지만 그걸 조곤조곤하게 풀어내는 그의 능력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갖고 싶을 정도로.
# 매일매일 일 년 혹은 그 이상 꾸준하게 하루 5~6시간 이상씩 집필활동을 하고, 꼬박꼬박 운동을 하고,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는 그의 일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커피 자국 같은 게 묻은 그의 오래된 노트도 너무 좋고, 열심히 썼던 하나의 장을 날려버린 그 대목도 너무 좋더라. 소설가로서의 그의 인생도 너무 멋있지만, 소박하게 하나하나의 스토리가 묻어있는, 그의 일상들도 너무 아름다웠다.
# 작가로서의 삶을 처음으로 엿보게 되었다. 소설가의 일상은 어떠한지, 그 일상이 쌓이고 쌓인 소설가의 일생은 어떠한지 말이다.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멋있고, 장하고, 담담하고, 잔잔한 그런 느낌을 주었던 그런 책. 그리고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책.
소설가 혹은 작가를 준비하는 누군가에겐 가이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책이지만, 난 그저 그의 일생을 받아들인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작가인 그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재밌고, 즐거웠던 시간들.
#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매력을 느꼈다. 어떤 캐릭터라도 가공해서 '현재'에 옮길 수 있는 직업.
발 사이즈에 구두를 맞추는 게 아니라 구두 사이즈에 발을 맞출 수 있는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한) 유일한 직업.
온갖 '안 될 일'이 가능해지는 직업. 그것으로 인해 큰 기쁨과 희열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 소설가라니!
새 소설을 쓸 때마다 어떤 캐릭터를 만날까 항상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는 직업이라니!!!
# 제삼자의 의견을 듣는다는 과정에서 언제나 첫 번째의 기준음이 되어주었다던 하루키의 아내 이야기를 보면서 내 남편이 생각났다. 어쩌면 내 블로그를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오며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고, 오탈자를 발견하면 내가 글을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의 기준점은 내 남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1년도 넘게 해왔던 것 같다. 나는 거의 하루에 하나의 글 이상을 쓰고 있으니까 벌써 365편 이상의 글의 교정작업을 해준, 출판사로 치면 편집자 같은 역할을 자발적으로 해주고 있는 사람이 내 남편인 것이다.
아마 이 작업은 평생 계속되겠지? 그리고 그것은 모든 형식의 글이 될 것이다. 가령 블로그에 올리는 글 말고, 에세이라던가, 신문 기고라던가, 자서전 같은...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부부는 직장인처럼 언제 자리가 바뀔 일도 없고, 세상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작가를 잘 아는 사람이기에 글의 본질을 잘 이해하면서도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소설이라는 건 누가 뭐라고 하든 의심할 여지없이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폭넓음이야말로 소설이 가진 소박하고도 위대한 에너지의 원천의 중요한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건 내가 보기에는 소설가에게는 비방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입니다. p.15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몹시 '둔해빠진' 작업입니다. 거기에 스마트한 요소는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립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하루 종일 단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것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잘했어, 잘했어"하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덕일 뿐입니다. 책이 나왔을 때, 그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주목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 한없이 음침한 일인 것입니다. p.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