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비단구두
염정숙 지음 / 좋은땅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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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랍고 값비싼 느낌의 비단 보다 봄날이란 단어에 눈길이 먼저 닿았다. 캔이 부른 <내 생에 봄날은>도 생각나고 내 인생에 봄날은 있었던가 싶어서.


고난의 연속이었던 결혼 생활을 글로 쓰자니 구원이었다는 작가의 "일생을 헌신했더니 헌신짝이 된 내 삶을 생생하게 마주하는" 중이라는 말이 꽤나 아팠다.


먹먹한 마음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작가의 얼굴을 얼마간 들여다본다. 스물여섯 해의 미혼 생활, 쉰 다섯 해의 결혼 생활, 다시 한 해의 미혼 생활을 버텨내는 중인 여든둘의 엄마 얼굴이 겹쳐졌다. 엄마도 험난하고 고통스러웠던 결혼 생활이었다. 그리고 "살아봐야겠다"라는 작가의 다짐에 읽던 활자가 뿌옇게 흐려졌다.




이 책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우연히 배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진솔한 고백이 담긴 자전적 산문으로 소설보다 더 영화 같고, 시보다 더 절절한 한 여성의 기록 일지도 모르겠다.


가난과 노동, 자식 뒷바라지로 점철된 시간 속에서 비자발적 '잘림'을 경험하고 헛헛한 마음을 글로 다잡으며, 비로소 자신의 이름과 꿈을 마주하게 되는 걸 보면서 찡하다 울컥하다 감정이 난리 부루스를 친다.


한데 작가의 가족, 그중 남편도 아니고 시아버지와의 추억담이 많이 등장하는 게 뜻밖인데, 솔직히 읽다 보면 시아버지도 그다지 자상한 것 같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보고 자란 게 있으니 남편도 자상하겠거니 싶은데 작가 기억에는 고집 세고 이기적이고 못돼 처먹은 남의 편으로 그려져 좀 웃펐다. 뭐, 남편도 그런데 시어머니야 말해 무엇하랴.


세세한 집안 사정은 모르겠지만 결혼을 앞둔 나이에도 제 손으로 밥 한번 안 해 봤을 정도의 서울 살이었다면, 귀한 딸이고 부족하지 않은 형편으로 짐작된다.


그런 작가가 스물넷에 인제의 첩첩 산골 작은 마을로 납치되듯 와서 하게 된 시집살이에 "내가 이렇게 안 살아 봐서…"라는 고단하고 팍팍한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적잖이 재밌다.


53쪽


한편 전지적 며느리 시점의 고발적 내용에는 탄식이 터질 만큼 시월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어찌 며느리가 손 귀한 집의 첫 손주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이렇다 할 준비를 해놓지 않았을까? 고약한 시어머니는 그렇다 쳐도 자상하다는 시아버지는? 그래놓고 시아버지 환갑은 동네잔치를 벌이고 뭄 푼지 얼마 되지 않은 며느리를 혹사 시키는 시월드에서 왜 살지? 란 의구심 들었다. 정녕 그렇다면 홧병이 제대로 쌓여 몸에 사리가 백만 개쯤은 만들어졌겠다 싶어 절로 욕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읽다 보면 홍해삼 사건이나 며느리에게 던지는 질문 200개 등등 곳곳에 등장하는 작가의 성격도 만만치는 않아 보여서 살짝 도토리 키 재기 느낌도 들기도 해서 어쩌면 쿨한 사람이라는 건 본인 착각일지 모르겠다.


123쪽


유려한 문장이나 화려한 수식어로 뽐내기보다는 투박에 가까운 담담한 문장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자식들 양육에 올인하며 악바리처럼 일했던 순간들, 갑작스러운 해고 뒤에 찾아온 상실감,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난 글쓰기라는 구원까지. 모든 고백이 너무 진솔하고 내 이야기 같아서 몰입하고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일흔 중반에 데뷔한 작가가 펼쳐낸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의 서사를 공감하게 만들고,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에게 "애썼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따뜻한 위안을 선사한다. 단순히 노년의 회고록이 아닌 삶의 무게에 눌려 자신의 꿈을 잠시 내려놓은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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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마음 -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기쁨
정고요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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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고요. 본명인지 필명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작가의 성향이 짐작된다. 시인, 출근하기 싫어 도망친 곳에서 매일 출근하는 삶을 산다. 강원도력으로 그는 아직 아이라 믿는다. 시집 <아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 산문집 <지난여름의 구름>을 펴냈다.




공교로움은 우연함을 동반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산책'이란 주제의 책을 연달아 읽게 됐다. 심지어 장소 역시 강릉이라서 마음이 막 파랑파랑 해지고 그런 곳에서의 삶이 부럽고 되게 되게 꿈꾸게 되는 통에 마음을 조금 앓았다.


그나저나 주변에서 중심으로의 입성을 꿈꾸는 삶이 목표로 사는 거라 이해하며 살았다. 다들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시인은 "중심에서 멀어져 바깥으로 떠도는 중"이라며, 자신들의 불시착을 은근 자랑하는데 쿵과 찡의 어디쯤인 감정이 솟았다. 울컥했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또한 이와 비슷하다. 누군가의 가치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존재만으로 사랑하기엔 충분하다." 16쪽


작가가 불시착해왔던, 그동안의 마을에서 늘 흰둥이 한 마리씩은 꼭 봐왔다는 그의 산책길의 풍경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흰둥이 꼬리처럼 마음을 대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설렜다는 말이다.


그리고 "곁이라는 건, 있는 공간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공간이니까. 옆과는 다르다."라는 문장에 생각이 골똘해졌다. 작가가 철학 하는 '곁'과 '옆' 사이 틈에서, 나는 타인의 곁을 졸라대지도 그렇다고 선뜻 내어준 적도 없는 것 같아서 순간 마음이 추워졌다. 내게 관계는 매번 그냥 옆에 머물다 끝을 내고 마는 통에. 나이 듦에서 외로움을 돌려받고 있는 건 아닌지 괜히 오늘 쓸쓸해져 버린다.


그렇게 이 책은 목적 없이 걷는 시간 속에서 서두르지 말고 삶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일상이 다채로워지는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너무 진짜 같지만 진짜가 아닌 것은 결국 마음을 무너지게 한다." 29쪽


가르릉 가르릉 소리 내는 호떡이는 곁에 머물던 타인이겠지, 생각하다가 나도 그런 타인쯤은 필요할 나이가 됐구나, 생각한다. 평행 우주의 나를 생각하면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과거를 붙잡아 두는 것이 지금의 삶을 위한 방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란 문장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인생이 폭만했다거나 드럽게 불행하다거나 생각하진 않지만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던 그날, 거길 가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꿈꾸던 체육 선생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35년째 하고는 있다. 어쨌거나 지금의 삶이, 소스케가 말한 "과거라는 어둡고 커다란 구렁텅이"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해가 바뀌기 직전에 잡았던 책을 해가 바뀌면서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차르르, 읽어야 할 책장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부표도 없는 그물을 찾는 것 같아서 그냥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했다. 그러다 아, 하는 작은 탄성과 함께 잃었던 부표를 찾은 것처럼 반가운 문장을 길어 올렸다. 아마 이 문장을 다시 곱씹고 싶었는지도.


57쪽


책을 읽는 동안 강릉의 해변과 남대천의 산책로와 곳곳을 걷게 된다. 그러는 동안 작가와 같이 심한 방향치인 나는 작가와는 다르게 종종 길을 잃었다. 방향치에게 길을 잃는 건 꽤나 마음 부침이 있는 일인데 아쉽다는 작가의 마음이 책갈피를 쓰지 않아서 잃게 되는 책장이 썩 아쉽지 않은 걸 보면 그런 마음이려나?


나는 다치기 전에는 느긋하게 걷지 못해 팔딱거리고 뛰어다니는 편이었고, 다치고 나서는 휠체어를 타게 돼서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뭣하고 그러니 알고 보면 평생 산책이라곤 해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해보기 어려운 영역인 터라 산책자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도시와 함께 내면의 지도를 완성하는 일"이란 작가의 말에는 얼마간 공감했다. 느긋이 주변을 돌아보며 거닐다 보면 세포가 온통 각성돼서 도파민이 터지는 기분일 것이란걸.


108쪽


이 책은 작가가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아닌 강릉에서 지내며 산책과 함께한 일상의 기록이다. 빠르지 않은 산책자의 일상처럼 글도 자연스럽게 늦춰지는데 괜히 부러운 마음만 빨라진다. 읽고 나면, 무언가 성취하려 아등바등 대던  삶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게 돼서 바쁘게 살아야 하지만 천천히 살고 싶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누군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보다 오 년 동안 다른 누군가 자신을 돌보아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160쪽


중간중간 올려진 시는 강릉 바다로 향하는 오래된 버스 정류장처럼 정겨워서 쉬엄쉬엄 음미하며 쉬게 된다. 그리고 끄트머리 소설 '손'은 생사를 긋던 수지 손목 위의 선과 허공을 향하던 엄마의 손을 잡지 못한 죄책감이 수완의 손에 머무는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은데 묵직하다. 작가의 일상과 시와 소설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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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열다 문화를 짓다
강온유 지음 / 좋은땅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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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온유는 한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경영과 조직심리 및 인재개발을, 성균관대학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에서 문화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있다. 현 청담 고미술 갤러리와 넛지스 북카페 대표로 다수의 기업과 대학에서 1인 창업, 퍼스널 브랜딩, 진로, 리더십, 관계 경영 전문 강사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치를 전한다.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통해 누차 밝혀 왔지만 나는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놈 안 잡는' 책방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 공간에서 책에 파묻혀지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책과 공간에 대한 책은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더군다나 '책방이 지역 문화 공간으로 성장'을 이야기한다니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조금 설레기까지 했는데 공간을 단순한 장소가 아닌 '사람이 머물고 연결되는 문화적 플랫폼'으로 확장한다.


북카페 창업과 운영에 대한 섬세한 설명은 직접 운영하면서 겪는 실무에 대한 현실적 고민들이 균형 있게 담겨 있어 읽는 내내 공감과 동기부여의 일타 쌍피 느낌으로 저자의 1년간의 여정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은 결국, 연결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넛지스'라는 공간을 열고 확신하는 저자의 말이 괜히 울컥했다. 그럴만한 포인트가 싶기도 하지만 자꾸 관계에서 연결보다는 자발적 단절을 선택하는 나로서는 그럴만할지도.


몸이 불편해지고 새로 관계 맺는 걸 피했다. 있는 관계에서도 종종 극심한 피로를 느끼곤 했다. 그렇다 보니 혼자가 좋고 점점 익숙해졌다. 그런데 저자의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그동안 외면해 온 건 아닐까, 혹 들켜서 그런 건 아닐까.


저자가 추구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하고 곱씹으면서 따라간다. 진심은 그 어떤 방법보다 훌륭한 마케팅이 된다는 이야기에 고갤 끄덕이는데, 괜히 마음이 따뜻했다. 답십리 근처에서 오랜 시간 일했는데 넛지스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기회가 되면 방문해 보고 싶어진다. 휠체어는 입장이 가능하려나?


32쪽

94쪽


저자의 공간에 대한 철학이 돋보인다. 보통의 창업과 관련된 책이 수익 모델이나 운영 기술에 집중하는 데 반해 저자는 "왜 이 공간인가" 혹은 "왜 이 공간에 머무르려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사람들이 머물 이유를 제공하는 공간을 설명한다. 나아가 그 공간은 지역에 스며들어 문화적 매개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단골은 우연히 생기지 않고, 설계되는 관계"라는 작가가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경험은 꽤나 인상적이다. 다양한 콘텐츠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시도해 보려 따로 메모도 하게 된다.


164쪽


이 책은 북카페를 운영과 관리에 대해 주의할 만한 것들을 짚어 주는데 초기 자본이나 손님이나 직원의 관리, 커뮤니티 운영 등 수익 다각화 같은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유용한 조언들이 이어진다. 그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서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책 팔아서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우려 섞인 시선이 있었는데, 저자의 월 3천만 원의 수익을 창출하는 노하우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특히 독서 모임, 강연, 작은 공연 등 공간이 커뮤니티와 함께 확장되는 과정은 엄청 매력적이었다. 역시 스토리가 중요한 시대임을 실감한다.


북카페 운영의 경험은 구체적인 전략이나 운영 매뉴얼을 디테일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개인적으로 좀 아쉽다. 물론 저자의 공간 철학에 집중한 책이긴 하지만 북카페를 열망하는 입장에서는 뭔가 살짝 김빠진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핫플레이스가 아닌 조용한 동네에서 시작하는 공간과 문화를 잇겠다는 철학의 과정 속에서 흔들리고 고민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지역에서 북카페라는 공간이 어떤 역할을 만들어 내야 하는지에 대한 영감을 얻기에는 충분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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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 - 글이 책이 되기까지, 작가의 길로 안내하는 책 쓰기 수업
임승수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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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모르게 이름이 눈에 익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를 읽었더랬다. 아마 '생계형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에 혹해서였을 것이다. 찾아보니 "뒤통수 한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다"라는 소감도 덧붙여 블로그 서평도 남겼던 인상적인 작가였다. 갑자기 이스트도 없이 부푸는 빵처럼 기대감이 거대하게 부풀었다.


서울대학교 공대 석사 출신의 A4 한 장을 채우지 못하는 글치였다는 묘한 이력의 소유자.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고 삶의 가치를 사회주의로 노선을 정하고, 20년째 철저한 자본시장에서 사회주의를 앞세워 전업 작가로 자본을 획득하는 그가 그동안의 내공을 이 책에 쏟았다. 이 외에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오십에 읽는 자본론>, <글쓰기 클리닉> 등 다 수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부터 뜨끔했다. 그 많다는 책을 쓰려는 사람 중에 나도 숟가락 얹고 있는 데다, '한두 편의 좋은 문장만으로는 책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몇 줄 쓰고 캬~ 소릴 내며 자뻑이 일상이라서.


하편 숙연해지기도 했는데 작가 덕분에 생전 하지 않던 '왜 쓰려 하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한다. 진짜 나는 왜 쓰려는 거지? 뭘 쓰려는 거지? 나는 내 삶을 풀어내 글 쓰고 강의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INFJ라던데… 은근 관종인가? 어쨌든 운 좋게 로또에 1등 당첨이 되더라도 그런 명품의 삶을 살고 싶다. 작가처럼.


"책을 쓰는 일은 결국, '나의 무엇이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행위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쓰자.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거나, 위로를 받거나, 기분 좋게 웃었다면, 그 순간 글은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쓸모'를 증명한 셈이다." 39쪽


하,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려나. 쓰고 싶은 열망은 가득하지만 쓸만한 깜냥이 없다는 이 거센 열패감에 무릎이 꺾인다.


와, 씨! 소름 돋았다. 작가가 자본론을 읽고 인간이든 노동이든 경제든 뭐든 '가치'를 깨달았다는데, 나는 이 책을 읽고 '오만함'을 깨달았다. 물론 작가가 선거 유세에서 느꼈다는 감각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21년을 비장애인으로 살다 이후 34년을 장애인으로 살면서 편견과 차별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아주 후진 사회 인식을 바꿔 보자고 강의를 다니고 글을 끼적 거린 '주제'가 가당치 않은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막 터져 버린 화산처럼 뜨겁고 메슥거리는 감각들이 솟구쳤다. 그래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없다고 했던가, 그 진리를 마주해버린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익숙한 틀로 본다.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들, 늘 그래 왔던 방식, 동일한 감정의 패턴." 104쪽


사람들은 개성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남들과 다른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썼던 거구나,를 깨닫는다. 자신이 기진 고유한 틀이 다름의 환상을 빚어냈던 이유라면 이미 굳어버린 나만의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아주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또, 글쓰기는 변비와 같아서 아무리 힘들어도 힘주는 만큼 나오게 되어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음과 동시에 그동안 수없이 찾아 읽었던 글쓰기 책과 교본과는 확실히 다르다. 세포 속 극소량으로 묻어있는 글쓰기 세포를 흔들어 깨운달까. 얼굴이 싯뻘개질 만큼 막혔던 것이 뽕 하고 빠져나올 때처럼 짜릿하다.


131쪽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작가와 챗지피티의 문답인데, 작가라는 본질에 담긴 심층적인 내용이 적잖이 놀랍다.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낼 수 없다는 작가의 단호함도 그렇고 챗지피티가 가져올 서브작가의 수준도 기대된다. 감각과 감정의 차이는 결국 기계에겐 넘사벽일지 모른다는 뿌듯함도 있다. 은하철도 999에서 기계 인간이 되고 팠던 철이를 바라보던 메텔의 안타까움이 스쳤다.


166쪽


“작가는 독자 없이도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독자가 있을 때 비로소 그 글은 살아 있는 무언가가 된다. 글은 독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267쪽


글을 쓴다고 깝치면서도 수준은 일기(물론 작가는 일기도 보여 주려 쓴다고 했지만) 정도라서 어딘가 내놓으면 안 될 수준이란 것을 종종 자각한다. 그럴 때면 타조처럼 구멍에 머릴 박고 숨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잘 쓸까’보다는 ‘무엇을 왜 쓸까‘를 조금은 고민하는 편이라서 작가의 글이 꽤 많이 위안이 됐다.


체대를 다니며 과할 만큼 건강하던 사지가 뜬금없는 사고로 전신마비를 겪으며 삐걱대고 이족보행이 불가하게 됐다. 한데 '다른' 생각과 모양새에 지독히 차별적인 나라에서 살다 보니 나름 할 말이 많아졌다. 모래가 입안에 가득 든 것처럼 까실 거리지만 인내해야만 했던 시간을 농밀한 언어로 풀어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은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와 목적, 기획, 계약 등 출판에 관련한 내용을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닌 '작가로 살기'를 선택할 때의 벌어질 수 있는 작가의 경험담을 토대로 재치 있는 필력이 더해져 글쓰기 초행길을 걷는 사람에게 손전등이 아니라 야구장에서나 봄직한 거대하고 밝은 서치라이트를 비춰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33년 차 방송작가가 전율을 느꼈다는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186쪽


많은 글쓰기 책처럼 이상적인 조언만 하는 게 아니라 '왜 쓰는가', '내 글이 누구에게 무엇이 될 것인가' 같은 태도의 문제를 짚어 주는 게 인상적이다. 거기에 책이 만들어지는 꽤 실무적인 과정까지 다루면서 투고나 출판 계약할 때 유용한 꿀팁을 알려주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널리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 정도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읽고 싶은 마음이다. 단언컨대,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눈알에 힘주고 궁서체로 꾹꾹 읽은 글쓰기 책 중에 단연 탑이다. 두고두고 간직하겠다. 이 책만큼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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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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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카고 예술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창작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에세이와 소설을 발표해 온 주목 받는 작가가 어린 시절과 정신 병동에 3년간 입원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회고록이자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고백한다.


"정신 병동은 정신질환을 치료도 하지만 생산하기도 하는 시스템"이라는 성찰과 동시에 독서와 글쓰기는 병원 밖 삶으로 회귀하는 여정일 수 있다고 말이 인상적이다. <뉴욕 타임즈>, <뉴요커> 등 주요 매체의 호평 속에 동시대 중요한 여성 문학으로 자리매김한 책이라고 한다. 그럴만하다.


특히 이 책은 자신의 정신 병동 장기 입원과 그로 인한 낙인의 기억을 문학 작품 읽기 경험에 깊이 겹쳐내며 써 내려간, 회고록과 문학비평을 아우르는 눈부신 에세이로 평가받는다.




공교롭게 정신질환과 관련된 책을 연이어 읽게 됐고,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연재의 에피소드도 정신 질환 이야기라서 왠지 요즘 내 정신 상태가 이와 비슷하게 멜랑꼴리해서 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엄마의 삶을 대신 살아온 듯한 오리나가 '자신에게도 아침이 오겠냐'라고 묻자 효신(이정은 분)은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냐'라며 맞을 준비가 되었다면 아침은 꼭 온다고 했다. 문득 이 장면을 더듬게 된다. 그때 나는 효신의 말을 들으며 그랬다, 그럼 그곳에선 아침은 누구에게나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구나, 밤만 있는 사람도 있겠구나 했었는데 저자의 글에서 확인하는 기분이다.


"사람은 외로움으로, 아무와도 얘기하지 않고 여러 날, 여러 주를 보내는 것으로도 이상해해질 수 있다." 19쪽


주목할 것이 아무와도 여러 날, 여러 주를 얘기하거나 만나거나 하지 않아서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 그렇게 된다고 한다. 근데 그게 정말 그래서 사람은 어차피 외롭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이미 기억도 희미해진 이십 년 전에 작가가 겪고 느꼈던 일들의 회고록이라지만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빠져들었다. 느낌 상 1인칭 소설 같았달까? 단지 내 귀에는 뛰어내리든 뛰어들든 뭐든 결정을 내리라고 '지금'이라는 재촉해대는 말이 들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위안 삼으면서 읽게 된다.


또, 정신병원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스며들어 자신이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치료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들'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읽기와 쓰기가 어떻게 돌봄이 되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런 작가의 경험이 철학이 되는 순간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그게 병원에 들어 '갔던지' 혹은 '있던지' 아니면 나와서 다시 들어가야 하는지 같은, 정신병원이 중심이라는 게 문학적이 될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아무튼 정신 병동에서의 삶이 그에게는 생존의 연장 선상이라기 보다 머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42쪽


"당시 병동에는 매일 아무 맛도 첨가 안 된 뻥튀기 한 봉지만 먹고 다른 건 아무것도 먹지 않던 여자 간호사가 한 명 있었지만, 그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미친 게 아니었다. 내 의료 차트에 나의 식습관을 '기괴하다'라고 적었던 사람이 이 간호사다." 43쪽


과연 우리는 미쳤다는 걸 알기나 하나? '미친 여자'로 낙인찍는 사회 관습이 아닌 그의 말대로 나는 병원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머물렀던' 것이라면 그게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문득 궁금했다.


109쪽


한참을 더 읽다가 맞닥뜨린 히스테리라는 단어에 큭 했다. 앞에서 읽었던 '돌아다니는 자궁'이라는 의미가 달려왔다. 히스테리가 여성만 걸리는 정신병이었다는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버렸다.


180쪽


"나는 X를 느껴요. 혹은 Y를 느껴요,라고 말하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 302쪽


작가가 '미쳤다'는 프레임에 갇혀 매 순간 자신의 감정을 검열하고 밝히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사회 제도적 관점에서 '고통스러운 내면'의 탐색을 통해 문학으로 펼쳐낸 점이 존경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터운 작가의 경험이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깊은 위로와 공감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와 전문적이거나 철학적인 문체는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관심에 따라서는 좀 딱딱하게 느껴져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정신적 고통과 치유에 관심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푹 빠질만한, 의미 있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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