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이요? 없는데요? - 한 권으로 끝내는 취업종합선물세트 리얼커리어 시리즈
유성열 지음 / 리얼러닝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자신감 좀 보소? 없으면 이는 바람에 절로 무릎 꿇게 되니 죽길 각오하고 스펙을 쌓으라라 부추기는 게 아니라 없으면 없는 대로 꿀리지 않는 비법을 기꺼이 전수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제목이 강렬하다.


본인은 특이하다 했지만 읽는 나는 그다지 특이해 보이지 않은, 심리학과 출신의 직업상담사라는 이력을 가졌다. 관공서 및 교육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취준생들을 심폐 소생하고 다닌다는 그는 단순한 취업전문가와는 달리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로 설정과 그에 맞는 썰(자소서) 푸는 법 그리고 면접에 필요한 일타 강의 같은 그만의 상담 경험을 이 책에 녹여냈다.


저자의 경험을 살려 최대한 쉽게 썼다더니 정말 그렇다. 사례를 통해 진로 탐색과 취업지원기관, 채용정보, 이력서, 면접, 직업훈련 등 취업 전반에 얽힌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첫 사례가 팔랑귀 여성의 이야기다.


한데 인적자원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일 저일 중심을 잡지 못하는 성향인데 결국 지인 찬스로 어디라도 취업한 것이 다행이라는 저자의 말은 개인적으로는 수긍하기 어렵다. 이런 취업도 성공이라 볼 수 있나?


33쪽, 인터넷을 통해 채용정보 찾기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한데 다른 취준이나 스펙 쌓기 관련 자기계발서와 다르게 정보 제공에 좀 더 힘을 쏟는다. 자질구레한 부연 설명이 없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달까. 여기에 제공된 정보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Do it' 코너를 통해 스스로 체크하면서 취업 준비를 점검할 수 있게 돕는다. 특히 직무기술서나 이력서 작성에 대한 비포/애프터 설명은 현장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큼 유용하다.


57쪽, 61쪽

99쪽, 107쪽


한편, 자격증이나 외국어 성적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집하는 것처럼 취득에 열을 올리는 세태를 꼬집는다. 쓸데 없는 스펙 쌓느라 금전, 시간,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자기 탐색을 통해 원하는 직무를 찾고 그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현실적 조언을 해준다.


이후에 면접 준비와 직업훈련과정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도 소개한다. 덧붙여 근로계약서 작성 같은 취업 성공 후 적응하고 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심지어 전화응대 팁도 담았는데, 이건 십수 년이 지나도 내게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누구에게는 통화보다는 활자가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데 사실 업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아무튼 이 책은 취준생을 위한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 영역별 저자의 설명을 사례와 함께 꼼꼼히 읽고 자기 탐색을 해보면 취업은 분명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저자의 경험이 녹아 있는 현실적인 조언과 필요한 정보가 가득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 - 삶을 관통하는 여덟 가지 주제에 관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
이근후.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이름이 낯익다. 이근후 박사야 워낙 유명 인사니 그렇고, 이서원 박사는 그의 전작 <감정 식당>을 읽었었다. 읽었다고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도 아니라 쓴 서평을 다시 읽어보니 제목과 비슷한 문장이 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란 걸 기억하면 화날 일이 반으로 줄어듭니다."라는 말인데, 역시 인생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진리인가 보다.


사실 운전대 하나만 잡아도 분노하게 되는 게 이놈의 세상인데, 이것도 알고 보면 운전 하나도 내 맘대로 안 되니 그런 것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 의미심장한 제목처럼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대담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당장 목마른 사람에겐 물을 줘야지, 우물을 파 갈증을 해결하라고 하면 안 된다"라는 현실적이고 사이다 같은 지혜를 담았다니 마음이 조급해질 정도다. 얼른 잠수함에 승선한다.


이 책은 두 정신건강의가 자존, 관계, 위기, 욕망, 확신, 비움, 성장, 행복의 8가지 주제로 110가지의 짧은 대담으로 삶의 통찰을 전한다.



27쪽, 열등감이 생기는 이유


뇌는 있는데 내가 없거나, 시험을 망친 자식보다 더 많이 운다는 한국의 엄빠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시작부터 큭 하고 웃었다. 큰소리로 웃자니 나도 그러고 있는 편이라서 그러기엔 양심이 좀 찔리고. 한국에 살면 어차피 다 그렇게 되나 보다.


웃다가 어제 아들 녀석이 학원 쪽지시험을 다 맞았다고 으스댔던 일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중간고사 성적을 보고 잔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아예 딴에는 아빠에게 칭찬받고 싶었나 보다. 워낙 칭찬에 인색한 아빠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가 칭찬해 줄 타이밍을 놓쳤다. 미안했지만 모른체했다. 그런데 생활 자체가 경쟁인 아이들에게 그 기준인 등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게 되레 이상한 건 아닐까?


'획일적 평등주의'라는 단어가 눈에 꽂혔다. 물론 짧은 글에서 저자들이 하고자 하는 말의 진위를 다 헤아릴 수 없다지만, 저자가 말하는 평등에 대해 나와 너는 같지 않음을 같다고 여기는 것,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능력을 가치로 추구하는 세상에선 능력과 역할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라는 그의 말에 애초에 능력이 열악한 사람들은 늘 열등한 대접만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건지 묻고 싶다. 능력이 없으면 배려나 시혜의 삶이 최선이 되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의 약점을 보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나의 약점을 보는 일이다." 101쪽, 외면하고 싶은 진실


132쪽, 갑질은 어디에서 오는가


특히나 갑질 천국인 한국에서 정작 갑질이 지질함에서 온다니 은근 쾌감이 있다. 진정한 우월감은 스스로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서 온다고 하니 막연하게 높은 자존감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일반적인 사회의 상식과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고, 너의 상식이 나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 상식은 시대의 산물이고 개인의 경험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155쪽, 말도 안 돼


상식에 대한 조언에 깨달음을 얻는다. 상식이 사회 통념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저자의 글에서 상식도 개인에 따라 온도차가 많겠구나 했다. 같은 문제를 바라봐도 나에겐 상식의 문제가 타자에겐 애초에 상식의 문제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언은 새길만하다.


204쪽, 진짜 만남이란 무엇인가


<진짜 만남>에 대해 읽으면서 불알친구가 생각났다. 동네 깨복쟁이로 만나 지내왔으니 50년 가까이 됐다. 입만 열면 나방이 쏟아져 나오는 사오정처럼 내 친구는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 쏟아내는 염세주의자다. 그렇게 친구나 타인에 대해 험담은 쏟아내도 피해 주는 일을 극도로 조심하는 친구라서 귀여운(?) 험담에 적당히 장단을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면 귀는 좀 피로하더라도 마음은 편해진다.


또, <틈새 파고들기>를 읽다가 문득 예전에 들었던 직원 교육이 생각났다. 몇 년 새 복지관에도 정신장애인 이용인이 늘어나고 있어 준비한 교육이었다. 이 자리에서 정신보건 전문가였던 강사는 화면에 뇌가 그려진 그림에 한 부분을 가리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전두엽이 탈이 날 수 있고, 대부분 정신질환자들이 그렇다면서 이 부위는 다시 좋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평생 약 복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신병이 생활 습관의 잘못이고, 심지어 고칠 수 있다니 저자의 이야기는 희망적일 수 있을까 싶다.


각 주제에 따른 지혜가 담긴 조언들을 보면서 가족, 친구, 동료와 주변 일들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가렵지만 어쩌지 못하고 애먹던 곳이 금세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예컨대, 갑자기 치통에 고통스러워 찾은 치과에서 치아가 아닌 뜻밖에 부비동 염증 때문에 그런 것이어서 치과가 아닌 이비인후과를 가야 한다는 일처럼. 고통을 고통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고 그 일로 지혜를 얻는 일로 만들라 조언한다.


두 사제지간 사이를 보며 부러움이 끊이질 않았다. 나야 사제지간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지만 내 관계망에서 이런 마음을 담은 지혜를 주고받을 이가 있을까 싶다. 그의 말처럼 내가 그런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삶의 통찰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제21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1965년 생으로 환갑이 코앞인 나이에 미스터리 작가로 등단했다는 그의 이력이 눈에 띈다. 은퇴하고 글쓰기에 도전하려는 사람에겐 등불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명탐정과 할아버지의 상관관계는 뭘까? 명탐정이 궁금하다.


뭐랄까 상상 혹은 기대했던 하나의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추리하며 풀어 나가는 형식은 아니다. 사건의 치밀한 전개와 숨막히는 해결이 펼쳐진다기보다 손녀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주고받기 위해 사건이 만들어지는, 살짝 흥미 위주의 미스터리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할아버지의 치매성 환시가 양념처럼 곁들여져 긴장감이나 무겁다는 느낌이 덜하다.


277쪽


자아내면 스토리고, 세상 모든 일도 스토리며, 지어낸 일이기에 아름 답다지만 자고로 명탐정이 등장하는 미스터리는 손에 땀을 흠뻑 적셔야 맛일텐데 할아버지 명탐정은 그냥 따뜻해서 오히려 차분해진다. 미스터리의 전개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상상으로 풀어나가는 형태로 각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데, 손녀가 스토킹을 당하는 부분으로 이어지는 건 좀 갑작스러웠다. 전체적으로 느슨했던 부분에 부자연스러운 긴장감이랄까?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매니아가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취향이 저격당한 느낌은 아니다. 그럼에도 얽히고 섥힌 사건을 따라가야 하는 복잡한 추리물이 아니라서 좋다. 편안하게 읽다보면 푹 빠져든다.


그런데 완전 개인적인 어려움이긴 하지만 작다! 작아도 너무 작다. 이렇게 작은 글씨라니. 거스를 수 없는 생애주기 탓에 노안을 관통하고 있는지라 미간에 주름을 잡고 읽어야 해서 쉽지 않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냥 그런 하루가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이정영 지음 / 북스고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렇죠? 얼마든지 그런 하루는 있을 수도 있죠,라고 대답하고 싶어지는 제목이다. 치열해야 하루 잘 살아냈다고 자족하는 일상이 순간 조금 느슨해져도 위안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읽고 싶어졌다.


"관계라는 건 늘 생각을 거듭하고 배워 나가야 하는 과제 같다.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수는 없겠고, (…)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사람에게 좀 더 다정한 계절을 선물해야겠다." 59쪽, 달빛을 머금은 마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그의 담백한 문장가 적절한 마음이 담긴 사진에 빠져들 듯 단숨에 읽었다. 더해 이런저런 치받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도 한다. 한편 느린 것이 좋아, 어르신이 많이 사는 동네를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과 좋아한다던 생명을 소생 시키는 그의 계절과는 어색하지만 나름 또 어울릴 수도 있겠다고 느껴졌다.


나무 가지치기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솎아낼 줄 아는 작가의 혜안이 부럽다. 삶을 열심히 살라는 작가의 조언에 이미 50년 넘게 열심했어도 여전히 열심하여야 하는 내 삶을 돌이키다 보면 속상해지기도 했다. 이젠 열심히 말고 그만 적당히 살고 프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산 건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묻고 나니 가슴에 헛헛한 바람이 한가득 담겼다. 읽다 만난 너무도 편안하게 널브러진 고양이처럼 책도 그렇게 편안하게 널브러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116쪽, 유예 기간


문득 드는 생각은 작가 스스로 나보다 남을 더 위한다는, 나도 이만큼은 아련하고 고달프다고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226쪽, 담백한 바람


그의 일상적인 글과 사진에서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모두에게 하릴없이 그러면서 조급하지 않고 편안한 그냥 그저 그런 하루를 선물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스하는 언니들 - 12명의 퀴어가 소개하는 제법 번듯한 미래, 김보미 인터뷰집
김보미 지음 / 디플롯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퀴어'라는 단어를 읽어도 의미는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산다. 매년 그들을 알리는 축제가 열리는 것을 알지만 참여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혐오하는 이들의 기사와 장면에는 눈살을 찌푸린다.


내가 '앨라이 Ally'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고, 각종 명칭이 헷갈리기도 했지만 여러 '섹슈얼'의 구분법도 배울 수 있어 나름 좋다. 대학원에서 소수자 인권에 대해 배울 때도 솔직히 'LGBTQ'는 타인의 '성'쯤의 영역으로 치부해 금세 잊고 말았다. 지금도 퀴어를 검색창에 넣고 있다. 정확한 의미가 뭘까 싶어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네이버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매번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부침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12명의 인터뷰이가 물꼬가 트인 것처럼 쏟아낸 많은 말에서, 저자 또한 하고 싶었던 말들을 고르고 골라 이 책에 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식의 티키타카 인터뷰집이 아니라 정제된 글이라 더 좋다.


'유교레즈' 혹은 좀 더 적극적 레즈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살아낸다는 현실은 가혹하리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안다. 다른 것들에 열려 있지 않은, 수 세기 동안 하얀 옷과 배달로 뭉쳐있음을 자부심으로 키워낸 사회는 다른 것들은 이물질로 치부하게끔 시스템화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사회에서 끈질긴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당차고 묵직하게 다가 온다. '끈질기게' 행복하자고 이를 악물고 다짐해야 하는 것이 실상은 당연한 것들임에도 요구해하는 일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었을까 생각하면,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차지 못할 정도로 답답하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활동가 한채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무엇이, 아니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정상성인지 모르겠다. 사실 종교에서 말하는 신화적 존재들의 탄생도 다 이상한 것들이 아닌가? 알에서 나오거나 곰의 새끼로 나오거나 최초 여성은 찰흙으로 빚어지고 남성은 그 여성의 갈빗대를 뜯어서 조립된 게 정상인가?


아무튼 종교에서 외치는 모두를 사랑하자에는 헌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왜 포함되지 않는지 심히 계산적이라는 치사함이 격하게 느껴지는데, 이제 그런 사랑은 좀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어졌다. 종족 번식만 내세우면 우리가 동물과 뭐가 다를까. 동물을 정상성에 끼워 맞출 수는 없지 않은가.


59쪽, '나중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어떠한 개인도 어떠한 관계도 욕구의 양상이 똑같지 않다'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공유 한다면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이 사회를 함께 통으로 흔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67쪽, '나중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뎅 소리와 함께 환청처럼 계속 울리고 있는 말이 있다. 밥 먹듯 커밍아웃 한다는 변호사 장서연의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말이다. 초등학교 이후 남중고를 나온 입장에서 그 시간을 더듬어 보면 얼핏 알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는데 어디에서도 보이면 안 됐던 친구들에게 이제야 마음이 쓰였다. 여성스럽던 그래서 마구잡이로 놀림과 험난한 대접을 받아야 했던 친구들은 잘 살고 있을까. 부디 안녕하길 바란다.


그리고 줄곧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거리고 불편한 또 하나는, 성 정체성을 겪는 것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모 역시 같은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


딸, 아들과 함께 살면서 아이들이 이성 친구를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고 딱히 그맘때 가지는 성적 호기심도 내비친 일을 본 적이 없다. 혹시? 라는 생각과 커밍아웃이라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렵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일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까 봐. 아이에게는 벅찬 일이 내게는 숨 막히는 일이 될까 봐. 평소 성소수자를 바라본 내 인식을 검열하게 된다.


283쪽, 고독을 벗 삼아 죽음을 마주 하라


그런 와중 활동가 최현숙이 던진, 국가는 계속 안 할 거고, 그럴 희망도 없지만 하염없이 그러면서 신나게 죽을 때까지 하겠다는 다짐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를 확인시켜 주는 말이어서 뜨거워지는 무엇이 있다. 국가가 하지 않겠다면 시민이 하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스크림이 녹기만 하는 계절에 미처 마음 준비도 못하고 읽었지만, 다가 올 모든 계절에는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으로 조금은 더 단단해지길 바란다. 어줍지 않을지 몰라도 그들이 '나'로서 제법 그럴듯한 미래를 그려 나가길 응원하게 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