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 - 행복도 불행도 아닌 다행이 이긴다 사계절 시리즈
민용준 지음 / 북스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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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나치게 행복에 몰두하는 건 아닌지를 묻는 작가의 일상적 감각들이 궁금했다. 제목도 그렇게 감각적으로 다가왔고. 게다가 책 속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던 그의 편지도 가을이었다.




저자 민용준은 TV나 라디오 방송에 출연도 한다. 계속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게 바람이라는 그는 <무비스트> 영화 기자로 출발해 다양한 미디어에 칼럼과 기사를 써왔다 한다. 40세 전에 책을 내자는 목표를 40세가 되던 지난 2022년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내고 ‘2023년 세종 도서’에 선정까지 되었다니 부럽다.


내게 가을이란 계절의 감각은 딱히 좋다기보다 싫은 쪽이 더 큰데 장애를 갖게 된 후 바람이 매서워지는 겨울은 온 몸이 뻣뻣해져서 몸도 마음도 위태로워져서 좋은 계절을 묻는다면 겨울을 몰고 오는 가을이 싫다고 대답하는 편이다. 한데 그의 입장에서의 가을을 궁금해 하면서 나는 또 나대로 내게는 어떤 가을이 있었던가,를 조금은 길고 깊게 생각하게 됐다.


그는 ‘저자의 말’에서 나이 마흔에 비로소 찾아온, 마음 껏 떨어뜨려도 좋을 상념과 언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회를 밝히는데 왠지 모르게 다소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부연에 부연하며 살짝 포장하는 듯 하달까.


게다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문체에는 칼럼이 아니길, 에세이길 바라는 마음이 세게 불기도 했다. 뭐 시작은 그랬다는 이야기고 읽다 보면 그의 가을에 흠뻑 젖을 수밖에 없음을 부연하게 된다.


핫, 뜨거운 여름이 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거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두고 일조량 변화, 호르몬의 간섭, 운동에너지를 채집하는 그의 계절 감각을 보고 있자니 분명 이과생일 게야 암만 근데 이과생의 계절은 다 이래? 라는 궁금증이 휘몰아친다.


허, 재미지는 구석도 있다. 쓸쓸하게 떨어져 버린 가을 낙엽을 사랑에 진심인, 그러니까 그의 표현대로라면 ‘붙어 먹는데’ 환장한 벌레 '러브 버그'가 생을 마감하고 나서야 떨어진다고 재치 있게 풀어낸 이야기는 쓴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한 맛처럼 딱딱한 문장에도 살짝 말랑한 기분을 추가한다.


“날마다 일정하게 일상의 균형을 잡는 이의 삶이란 타인의 시선으로는 원만한 평온과 평정의 연속일 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외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오늘을 거듭하는 안간힘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61쪽


영화 <퍼펙트 데이즈> 평론을 옮겨 놓은 듯한 그의 진심에선 애써 붙잡고야 마는 누군가의 일상이 정작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무거움도 스몄다. 천장에 매달린 모빌의 위태로움을 해결하면서 안도하는 저자의 일상 평정도 나름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살아나가야겠다’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만 겨우 그럴 수 있는 사회가 올바르지 않다는 게 당연한 줄은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음이 공감되는 게 슬펐다. 왠지 히라야마는 웃지 않는 사람일 것 같다. 영화를 봐야겠다.


읽다가 눈에 박히듯 질끈거리게 만드는 문장들이 가슴에 박혔다. 목울대를 건드려 대는 통에 불편해지기도 했다. 저자의 엄마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의 아버지 탓이다.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처럼 빚을 잔뜩 지고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내내 살면서 빚을 끊임없이 불려 놓는 사람이었다. 책임은 엄마의 몫이었고.


그래서 손이 거북이 등껍질보다 더 두껍고 발톱보다 더 뭉툭해질 정도로 고단한 삶을 살아온 엄마에게 나도 그처럼 아버지와의 결혼은 하지 말았어야 함을 대신 억울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보다 더 괜찮은 관계의 아버지와 내가 있을 수도 있었을 테니 나는 엄마가 아버지와 결혼 따위는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도 떨칠 수 없다.


그러다 뭔가를 쓴다는 행위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 하는 와중에 뇌를 알코올로 닦아낸 기분이 들었다는 '돈 드는 것도 아닌 공짜고 안 되도 본전'이란 조언에 고졸로 용기 내 시작한 영화기자로의 발을 내디뎠다는 이야기를 풀었다.


이게 은근 동질감을 가지며 줄기차게 읽고 서평을 올리고 앉은 나를 겹쳐보게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다. 분명 주객이 전도됐지만 그와는 다르게 나는 어느 출판서도 입사 제의는 해오지 않으니 나는 여전히 방구석에서만 이러고 있다. 공감은 공감이고 이게 은근 굴욕적이다. ㅋㅋ


암튼 글의 요지는 마음이 끌리는 일을 하다 보면 딱히 보상이 없더라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예전에는 알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분명 옳다. 불꽃남자 정대만을 빗대 그의 영광의 순간을 기억해 내는 센스가 멋지다.


133쪽, 난 지금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다면 삶을 방해하는 세상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직접 최전선에 서서 자신을 짓누르려는 사회 편견과 맞서 싸우며 자신이 뱉은 말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146쪽, 안녕, 마왕


그냥 넘길 수 없는 마왕에 대한, 그러니까 내가 마왕의 노래와 함께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느꼈던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연예인이 바로 마왕이라서 그의 대한 소회는 마왕은 더 이상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지 않다는 확인이어서 침울했다. 맞다. 기억한다. 그의 독설은 약자가 아닌 기득권을 가진 불평등을 만드는 이들을 향한 질타였음을. 그래서 그의 100분 토론은 빛이 났다.


챕터 <내 사전에 아버지는 없다>를 읽으면서 나는 왜 아이가 둘이나 있을까 생각한다. 결혼 전에는 막연하게 아내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들 하는 버킷리스트를 만들곤 했다. 분명히 하자면 결혼이 생의 종착지라는 기분으로 만들지 않았다.


즉 결혼은 내게 있어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로 환승하는 기적과 같은 일쯤이었다. 한순간에 몸이 불편해진 사람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과 만난다는 일은 드라마나 가능하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였으니. 그리고 여기엔 아이는 없었다. 나의 환상은 아내까지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딱히 좋은 아빠가 있지 않았던 탓에 나 역시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도 결심도 생각도 분명 없었다. 그렇다고 아내도 딱히 아이를 원하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 우리 부부에겐 자연스럽게 딸과 아들이 있다. 아니다. 둘째는 시험관 아기였으니 의지였겠다. 근데 왜 그런 의지를 가졌었을까?

그래서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굳이 후회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일이라서 부부끼리만 알콩달콩 살아 보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다는 정도는 있다.


여하튼 <응답하라 1988>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못 얻어 먹어 삶은 무한히 차별적이란 걸 깨닫는 덕순에게 아빠 동일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서툰 거 아니겠냐’며 덕선에게 선처를 바라듯 동의를 구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었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면 안 되는 삶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서툶을 장착하고 살아야 하는 아주 고된 여정이라는 걸 한참 늦게 깨달은 탓에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호기심을 담보 하지 않겠다’라는 그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찍 알았다면 나도 저자와 같았을까?


203쪽, 내 사전에 아버지는 없다


<당신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챕터를 읽다가 '풋'하고 실소가 나왔다.


"결혼이란 좀처럼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는 여행과 비슷한 면이 있다. 계획하고 예상한 방향 안에서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계획한 적도 없고, 예상한 적도 없는 길로 들어서서 즐거울 때도 있고, 난감할 때도 있을 것이다. 둘이라서 좋을 때도 있고, 그래서 나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끝내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결국 둘이라서 지나온 시간 덕분일 것이다." 294쪽, 당신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아내를 '아내'로 말하는 일이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거라고 말하는 기혼 여성이 많다는 그의 놀라움에 덩달아 놀란다. 나도 아내를 '아내'라고 별 뜻 없이 말하고 다녀서다. 심지어 그처럼 발음의 울림이 효율적이거나 편하다거나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저 와이프는 와이퍼하고 발음이 비슷해서 쓰기 싫었고 마누라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고유 명사 같아서 싫었다. 집사람은 더더구나. 어쨌든 미아리 점성술사가 내 사주를 5복이 모자라 6복을 타고 난데다 그중에 아내 복은 터질 지경이라고 했는데 정말 용하다. 처복은 인정! 주술사님, 근데 나머지 복들은 언제 터져주려나요?


저자가 일상으로부터든 사유에서든 가을에 대해서가 아닌 관해서 쓴 이 책은 가벼운 일상 사유부터 짜증 나는 정치, 민감한 사회 문제와 묵직한 가정사와 관계까지 푹 빠져들어 읽게 만든다.


이제부터 가을은 그의 표현대로 ‘낙하’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잔잔하고 담백한 그의 긴 이야기에 조금 따뜻한 가을이 왔다.


오타가 눈에 띄어 혹 재판이 있다면 수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옮긴다.

134쪽 6줄, 림밖에는 링밖에가 아닐까?

156쪽 2줄, 외고 마감은 원고 마감이 아닐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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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 - 행복도 불행도 아닌 다행이 이긴다 사계절 시리즈
민용준 지음 / 북스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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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가을은 그의 표현대로 ‘낙하’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잔잔하고 담백한 그의 긴 이야기에 조금 따뜻한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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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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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을 생선 뼈 정도의 칼슘과 동급으로 취급하다니! 죽음에 대한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이 너무 궁금했다.


가키야 미우, 1959년 생.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를 졸업, 소프트웨어 회사에 발 좀 담갔다가 2005년 <토네이도 걸>로 제27회 소설추리신인상을 거머쥐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8년엔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로 제12회 게이분도대상 문고대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서성거리며 사색 중>, <이제 이혼합니다>, <대리모 시작했습니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등 다수의 작품을 썼다.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이 몫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는데 연이은 친구 장례를 지켜보며 생각이 굳어졌다. 이번 추석 연휴 전후로 불알친구 둘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장례가 있었다. 한 친구의 아버님은 일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사이좋지 않은 아들에게 꽤나 많은 카드 빚을 남겨 주고 떠나셨고, 다른 친구 어머님은 파킨슨과 치매로 10년이 넘게 아들에게 병수발을 받다가 떠나시며 친구에게 홀가분함과 꽤나 큰 상실감을 동시에 안겨주셨다.


가끔 봉긋한 봉분 예쁜 묫자리를 원하신다며 가족 묘지를 준비해 놓은 이모를 부러워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내 대 이후 누가 돌볼 것인지 염려를 해온 탓에 예사롭게 넘길 책이 아니었다.


작가는 마쓰오 집안과 나카바야시 집안을 통해 ‘대’를 잇는 것의 의미가 현시대에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묫자리를 물려받는 것은 남성만의 고유 권한이고 쓸고 다듬는 관리의 주체는 여성의 전유물로 확인하면서 남성우월주의 내지는 가부장적 관습, 젠더 문제를 꼬집으며 편견 가득한 사회문화적 폐해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마치 열심히 흔들어 터져 나오는 사이다 같달까.


작가는 가부장적인 남편과는 절대로 묫자리를 같이 쓰고 싶지 않다고 수목장으로 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요시코,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성을 따르는 관습을 따르고 싶지 않은 시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고수하려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묫자리를 이어받을, 다시 말하면 집안의 대를 이을 장손의 존재를 통해 가부장적인 관습이 우리 정서와 비슷해서 심각해지다가도 재치 있게 돌려 까는 문장에는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그러다 묫지기를 할 수 없는 딸의 존재를 비하하는 시호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오래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외할아버지는 밥상 머리에서는 말도 웃음기도 보여서는 안되고, 딸은 쓰잘대기 없는 가시내로 취급하는 걸쭉한 양반가의 장손이셨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엄마는 집안을 돌보지 않는 전형적인 한량에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순종적인 삶을 내주었다. 어쩌면 엄마 속내도 사스키와 같지 않을까.

집안의 장손인 사촌 큰형이 제삿날 “나는 교회에 나가요. 이제 저희는 교회식으로 할게요.”라며 폭탄 선언해 버린 날 큰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 일로 난감해 하면서도 크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게 장손이 할 말이냐면서 울그락 불그락 하셨다. 그 뒤 엄마는 혹시나 집안 제사가 쓰나미처럼 우리에게 밀려 올까 신경을 곤두 세웠던 일이 떠올라 족보와 장손에 목숨 거는 한국 문화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줄곧 실소가 새 나왔다.


38쪽


조상의 위패를 모신 불단이 구청 폐기물 목록 요금 표에 올라 있다며 죽음 이후의 일들에 목을 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이 대목에서 조상의 돌보심은 진짜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조상이 돌보셨으면 내 목은 부러지지 않고 온전하지 않았을까? 돌보셔서 살아 있는 거겠지? 암튼 제상을 옮기면 조상님(귀신)이 헷갈려 배를 곪을 거란 말도 안 되는 말이 있는데 나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진짜 귀신에게 밥을 먹이려고 생고생을 해야 하나 싶긴 하다. 이 첨단 과학의 시대에? 점점 흥미로워 진다.


63쪽


또 부유한 처가 덕인 걸 망각하고 현재를 즐기며 살라고 하는 아키히코의 말에 발끈하는 사스키의 속내는 현실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는데 이게 가슴에 팍하니 와닿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소시민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살기 팍팍한 게 현실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의 안녕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하지 않은가. 에이 괜히 울컥하네.


“엄마의 유언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관습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거기서 벗어날 자유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도 죽고 난 뒤에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98쪽


한데 궁금하다. 등장인물의 공통점은 여성들은 모두 남성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근데 왜 살지? 점점 이치로와 요시코, 사토루와 시호, 데쓰야와 마키바의 성대결 구도 같이 느껴진다. 남성의 세계에 갑자기 깃발을 휘날리며 대항하는 여성의 등장에 당황하는 남성을 보여준달까. 그나저나 나는 어느 편에 서서 관망하고 있는 걸까.


"오늘날 유명인이라면 SNS 등에서 비난이나 중상을 받는 것은 예삿일이다. 하지만 덴지로 세대의 대부분이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잘 사용하지 않으니 자신들이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측근들도 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입에 발린 말만 하다가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300쪽


출생률이 바닥인 두 나라의 정책 역시 탁상공론이라는 점까지 닮은 현실을 기성세대의 낡은 사고와 고리타분하고 비상식적인 정치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정치가는 늙거나 젊거나 다 그놈이 그놈인 것 같은 게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 한가 지구만.


책은 저출생, 고령화, 젠더 등의 사회 문제를 유쾌 상쾌 통쾌하게 담았다. 솔직히 장례 문화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답답하기까지 한데 기성세대의 관습과 문화는 답습이 정답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어제가 아닌 내일을 봐야 한다는 깨달음은 준다. 어차피 유골은 칼슘에 불과하니까. 세대를 막론하고 읽어봐야 할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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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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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막론하고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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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미, 무엇이 나를 통제하는가 - 인생각본, 해방에 대하여
이진동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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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는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9할은 제목인 게 확실하다. 이 책 역시 ‘덜미’라는 단어에 덜미를 잡혔다. 보통 이 단어는 달아나다가 억지로 잡히는 그러니까 계속 도망쳐야 할 의지를 꺾어버리는 피동사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잔인하다.


저자 이진동은 화가이자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정년퇴임 하고 현재 <해우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한다. 교직에 있으며 상담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변화를 지켜보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살았다. 20년 전 공황장애를 경험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 책은 부모의 부정적인 양육 태도가 자녀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부정적인 삶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스스로 삶을 통제하는 방법을 사회, 심리, 철학 등 학문적 이론을 통해 풀어낸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부모나 사회 환경 등 어떤 외부적 힘에 이끌리지 않도록 교류분석을 토대로 무의식을 지배하는 부모로부터 각인된 금지어(생존, 애착, 정체성, 역량, 안전)에 실존주의 철학을 더해 치유의 삶이 될 수 있게 하면서 오롯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필요한 인생각본을 짤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인간이 출생과 더불어 1차적으로 만나는 부모의 영향으로 인생각본을 부여 받는다고 설명하면서 이는 6세 전후에 퇴고(종결)된다고 한다. 즉 이때 만들어진 각본이 평생 이어진다고 한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이 각본에 덜미를 잡혀 평생 부모의 꼭두각시놀음을 한다는 얘기다. 음… 꽤나 과격한 표현인데 정말 그런가? 우리 엄마는 평생을 당신 말을 죽어라 안 듣는다고 하소연하셨는데?


어쨌거나 저자는 부모의 양육자적 관계를 통해 인생각본이 만들어지고 이 각본은 6세 전후에 1차 소거되지만 청소년기에 일부 수정 보완되면서 완성 되어 각본에 따라 인생을 살게 된다고 설명하는데, 이 중요한 아동기에 부모는 통제가 아닌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유연하게  아주 최소한으로만 각본에 관여하여야 하고고 통제보다는 탐색과 모험의 기회를 통해 지혜를 터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209쪽, 인생각본을 떠나 실존의 바다로


저자는 아동기에 부모의 양육방식이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면서 치유 방법으로 교류분석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데 특히 그 출발점으로 자율성을 꼽는다. 그러면서 이 자율성의 회복에는 수용과 자발성, 친밀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아무리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더라도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런 선택의 존재는 자기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덧붙인다.


"선택의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나 결과는 결코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이 처해 있는 실존적 상황이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자기의 존재의 특성은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음이다." 242쪽


결과는 선택할 수 없지만 선택 자체를 할 수 있는 것이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인가? 무지 어렵다.

책은 솔직히 난해함 그 자체다. 부모의 양육방식이 아동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데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인생각본으로 설명하는 건 알겠는데 치유에 필요한 교류분석과 실존철학에 대한 설명 과정이 다소 전문적이어서 난해하다.


342쪽, 내면 홀로 서기를 위해


어쨌거나 결론은 아동기에 끔찍한 경험을 했더라도 행복은 외부가 아닌 내부, 즉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참자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자신이 참자아로 실존할 때 비로소 인생에서 행복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결국 과거의 불행에 매몰되지 말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라는 얘기가 아닐까. 자신의 성격으로 인생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마리를 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또 '다 너를 위해서'라는 양육 태도를 보이는 부모에게도 좋은 양육 지침서이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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