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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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을 생선 뼈 정도의 칼슘과 동급으로 취급하다니! 죽음에 대한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이 너무 궁금했다.


가키야 미우, 1959년 생.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를 졸업, 소프트웨어 회사에 발 좀 담갔다가 2005년 <토네이도 걸>로 제27회 소설추리신인상을 거머쥐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8년엔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로 제12회 게이분도대상 문고대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서성거리며 사색 중>, <이제 이혼합니다>, <대리모 시작했습니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등 다수의 작품을 썼다.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이 몫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는데 연이은 친구 장례를 지켜보며 생각이 굳어졌다. 이번 추석 연휴 전후로 불알친구 둘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장례가 있었다. 한 친구의 아버님은 일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사이좋지 않은 아들에게 꽤나 많은 카드 빚을 남겨 주고 떠나셨고, 다른 친구 어머님은 파킨슨과 치매로 10년이 넘게 아들에게 병수발을 받다가 떠나시며 친구에게 홀가분함과 꽤나 큰 상실감을 동시에 안겨주셨다.


가끔 봉긋한 봉분 예쁜 묫자리를 원하신다며 가족 묘지를 준비해 놓은 이모를 부러워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내 대 이후 누가 돌볼 것인지 염려를 해온 탓에 예사롭게 넘길 책이 아니었다.


작가는 마쓰오 집안과 나카바야시 집안을 통해 ‘대’를 잇는 것의 의미가 현시대에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묫자리를 물려받는 것은 남성만의 고유 권한이고 쓸고 다듬는 관리의 주체는 여성의 전유물로 확인하면서 남성우월주의 내지는 가부장적 관습, 젠더 문제를 꼬집으며 편견 가득한 사회문화적 폐해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마치 열심히 흔들어 터져 나오는 사이다 같달까.


작가는 가부장적인 남편과는 절대로 묫자리를 같이 쓰고 싶지 않다고 수목장으로 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요시코,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성을 따르는 관습을 따르고 싶지 않은 시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고수하려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묫자리를 이어받을, 다시 말하면 집안의 대를 이을 장손의 존재를 통해 가부장적인 관습이 우리 정서와 비슷해서 심각해지다가도 재치 있게 돌려 까는 문장에는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그러다 묫지기를 할 수 없는 딸의 존재를 비하하는 시호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오래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외할아버지는 밥상 머리에서는 말도 웃음기도 보여서는 안되고, 딸은 쓰잘대기 없는 가시내로 취급하는 걸쭉한 양반가의 장손이셨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엄마는 집안을 돌보지 않는 전형적인 한량에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순종적인 삶을 내주었다. 어쩌면 엄마 속내도 사스키와 같지 않을까.

집안의 장손인 사촌 큰형이 제삿날 “나는 교회에 나가요. 이제 저희는 교회식으로 할게요.”라며 폭탄 선언해 버린 날 큰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 일로 난감해 하면서도 크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게 장손이 할 말이냐면서 울그락 불그락 하셨다. 그 뒤 엄마는 혹시나 집안 제사가 쓰나미처럼 우리에게 밀려 올까 신경을 곤두 세웠던 일이 떠올라 족보와 장손에 목숨 거는 한국 문화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줄곧 실소가 새 나왔다.


38쪽


조상의 위패를 모신 불단이 구청 폐기물 목록 요금 표에 올라 있다며 죽음 이후의 일들에 목을 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이 대목에서 조상의 돌보심은 진짜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조상이 돌보셨으면 내 목은 부러지지 않고 온전하지 않았을까? 돌보셔서 살아 있는 거겠지? 암튼 제상을 옮기면 조상님(귀신)이 헷갈려 배를 곪을 거란 말도 안 되는 말이 있는데 나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진짜 귀신에게 밥을 먹이려고 생고생을 해야 하나 싶긴 하다. 이 첨단 과학의 시대에? 점점 흥미로워 진다.


63쪽


또 부유한 처가 덕인 걸 망각하고 현재를 즐기며 살라고 하는 아키히코의 말에 발끈하는 사스키의 속내는 현실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는데 이게 가슴에 팍하니 와닿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소시민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살기 팍팍한 게 현실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의 안녕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하지 않은가. 에이 괜히 울컥하네.


“엄마의 유언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관습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거기서 벗어날 자유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도 죽고 난 뒤에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98쪽


한데 궁금하다. 등장인물의 공통점은 여성들은 모두 남성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근데 왜 살지? 점점 이치로와 요시코, 사토루와 시호, 데쓰야와 마키바의 성대결 구도 같이 느껴진다. 남성의 세계에 갑자기 깃발을 휘날리며 대항하는 여성의 등장에 당황하는 남성을 보여준달까. 그나저나 나는 어느 편에 서서 관망하고 있는 걸까.


"오늘날 유명인이라면 SNS 등에서 비난이나 중상을 받는 것은 예삿일이다. 하지만 덴지로 세대의 대부분이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잘 사용하지 않으니 자신들이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측근들도 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입에 발린 말만 하다가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300쪽


출생률이 바닥인 두 나라의 정책 역시 탁상공론이라는 점까지 닮은 현실을 기성세대의 낡은 사고와 고리타분하고 비상식적인 정치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정치가는 늙거나 젊거나 다 그놈이 그놈인 것 같은 게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 한가 지구만.


책은 저출생, 고령화, 젠더 등의 사회 문제를 유쾌 상쾌 통쾌하게 담았다. 솔직히 장례 문화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답답하기까지 한데 기성세대의 관습과 문화는 답습이 정답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어제가 아닌 내일을 봐야 한다는 깨달음은 준다. 어차피 유골은 칼슘에 불과하니까. 세대를 막론하고 읽어봐야 할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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