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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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회복력이란 고결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억압받으며 강요당하는 삶의 방식이다. 적응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8쪽, 우리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저자 에리카 산체스. 멕시코 이민자의 딸이자 시인이고 소설가이면서 드폴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멕시코계 미국 이민자 여성의 정체성을 그린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를 썼다.


읽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이걸 읽고 앉아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질의 안녕과 HIV에 걸려 죽으면 집안 망신이라는 둥 시답지 않은 농담이 페이지를 채우는 동안 나는 세상 모든 HIV 유병자가 들었다면 솔찬히 마상을 입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아울러 좀 삐딱한 시선이 되고 말았다.


암튼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라기보다 자신의 자위와 문란한 성관계로 야기되는, 말하자면 낙태 같은 일들이 여러 문화·사회적 배경 혹은 아포리즘에 세뇌 당해 벌어진 일쯤이고 일말의 자책감도 존재한다는 그런 잡다한 이야기가 계속돼버려서 덮을까 말까 망설였다.


"가난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가난을 방치하는 것은 인류의 수치다. 하지만 필요에서 창조성과 관대함이 길러진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생존방식이다. 우리는 부족하기에 관계를 형성한다."49쪽, 광대 되기


하지만 중간중간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인종과 문화적 측면에서 남성에게 깔봄 당하는 여성차별과 지정학적 빈곤을 싸잡아 조롱하는 듯하면서 한편으로 인종차별적 현실을 꼬집기도 해서 당장 책장을 덮진 못하게도 한다. 가만, 근데 리사 심슨이 페미니스트였나? 심슨 가족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다. 어느 정도길래 우상까지?


79쪽, 광대 되기


헷갈린다. 유머와 조롱의 경계가. 그가 주장하는 유머, 대부분 신체적 비하나 조롱 섞인 농담에 대한 부분은 분명 페미니스트답지 않은 게다가 인권적으로 보자면 비인권적인 차별에 더 가까운 발언들인데 그런 것들을 지적하고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억압이라고 하는 것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억압은 부당함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한편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나타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는다. 몰입까지는 아니어도 잘 읽다가 '어?'하며 길을 잃는 순간이 있다. 아무튼 얼마간 스페인 조상의 피가 섞인 태생으로 미국에서 멕시코 이민자의 후손인데다 정숙함을 강요받는 집안 분위기와는 다르게 튀고 자유분방한 삶을 꿈꾸는 저자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물을 먹으면서 꿈틀대는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낸다.


그는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는 방법으로 주로 농담을 무기 삼는데 사실 그의 질염과, 외모, 피부색, 차별주의자, 정신질환과 자살 사고에 대한 농담은 남성우월적인 세상에서 여성, 그것도 유색 이민자 여성으로 겪는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다. 그래서 예민함을 웃음으로 무마하면서 회복을 위한 여유의 시간을 가지려 애쓴 건 아닐까.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 내 눈에는 그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칼날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읽었던 어느 전설이 떠오른다.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을 때까지, 발에서 피가 날 때까지 춤을 추었던 소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어쩌면 그 소녀도 절대 아물지 않을 상처를 치유하려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러고 있는지도.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게 바로 그런 것일지도." 104쪽, 모국으로 돌아가다


이 책은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가장자리로 밀려난 소수자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실패하고 망가지면서 마주하는 현실에서 절망하는 대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것,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회복시키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16쪽, 즐기는 게 좋아


그의 이야기는 거침없다. 너무 걸러지지 않은 말과 표현들로 그의 강요된 무의식, 우울, 자살 시도와 임신 중단의 실패와 좌절 그 속에 처연히 박히는 실없는 농담 등은 솔직히 이해와 공감의 어디쯤이라서 그냥 넘기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이란, 완전 타인이 아니라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서 누구나 밀려나는 소수자 혹은 이방인이 될 수 있으며 그런 고통스러운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회복하려 애쓰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생존 기록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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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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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그의 생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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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절의 흔적
이담 지음 / 일단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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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 봐주면 어떻겠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가정폭력에 대한 경험담이라 했다. 가정폭력은 경험하지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영역이었다. 이런 내게 알리고 싶어 했던 그의 이야기는 뭘까 싶었다. 흥미보다는 궁금했달까.


가해자에게 집중되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오롯이 고통을 버텨내야 결국 생존할 수 있는 현실을 담담히 적어 낸다. 마치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 무심히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되려 더 상처로 남을지 모르겠다는 어설픈 오지랖이 발동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 생존자로 분류하는 작가의 말이 마음을 묵직하게 내리 눌렀다.


24쪽, 죄


일상적으로 벌어진 폭력과 학대를 다소 격양된 감정이 느껴지긴 하지만 담담히 짧게 적어 내려가는 작가의 글에서 떠오르는 단어는 '도대체'였다. 도대체 이런 어린 아이를, 자식을 죽으라 때리는 인간들을 본 적도 없을뿐더러 이런 삶이 머릿 속에서 그려지질 않아서 어떤 형태로든 감각할 수 없어 답답했다.


"당신들이 평생 죄책감에 살도록 당신들 앞에서 죽고 싶다."라던 작가의 말에 공감할 수 없다. 과연 그들 앞에서 죽어 준대도 그들이 죄책감을 알까? 안고 살아 줄까? 작가는 그렇게 살아 놓고도 왜 모를까 싶은. 그런 인간들은 애초에 그런 걸 알리 없잖은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꿋꿋이 버티듯 살아남아 그 인간들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복수다.


사실 알 수 없는 감각들을 활자로 마주하고 나서 그냥 잘 아는 것처럼 혹은 관심 많았던 것처럼 위로랍시고 말을 건네기조차 조심스럽다. 다만 그런 지옥 같은 삶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것에, 꾸역꾸역 짜냈을 용기에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도 응원한다.


"사실 정말 스스로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게 몇 개나 될까. 자신의 이름마저 남이 정한 인생인 것을." 113쪽, 나의 것


"용서를 해줘도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존재한다."라거나 "꿈에서조차 쫓아 올까 봐 침대 밑에 들어가 잠을 자야만 했다."라는 이야기에 순간 눈 앞이 흐려졌다. 매 순간 목을 조르는 느낌일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덮치는 기분이 들었다.


140쪽, 매일


이 책은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의 경험치가 없는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또 자신과 같은 경험들을 관통해 온 이들에게 보내는 반드시 살아내라는 응원의 편지요, 메시지다.



작가에게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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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절의 흔적
이담 지음 / 일단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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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같은 경험들을 관통해 온 이들에게 보내는 반드시 살아내라는 응원의 편지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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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아빠의 일기장 - 세상 모든 부모에게 전하는 두 아들 아빠 이야기
김진모 지음 / 보민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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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아들은 아니지만 둘,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아들 수를 이겨낼 만큼 강력한 아들이 있다. 게다가 MBTI가 공감형인 F 이긴 하지만 소문자라서 공감 능력이 떨어져 내 육아의 세계는 하루하루 현타에 시달리는 시간일 뿐이다.


표지에 '세상 모든 부모'를 걸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길래 '이 양반도 어지간히 고단했구나' 싶어 마음이 심히 동했다. 나는 아들을 아들이라 호칭하지 않고, 따뜻한 애정을 담아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옆집 남 대하듯 한지 오래다. 이 정도 해야 쌍욕을 날리지 않고 얼마간 인격적 대우를 할 수 있다.


상대는 평온한데 그로 인해 나만 혈압 터질 지경으로 게이지를 올리고 스트레스 최고치로 끌어 올려봤자 내 수명만 단축된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백세 시대, 기네스북 등재를 노리진 않아도 그 정도까지는 건강히 살고 싶은 소망에 아들을 누구누구 씨로 부르며 그를 향한 부질없는 욕심을 접었다.


나는 누구누구 씨와 힘든 감정 소모전을 치르면서 네가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나중에 좀 편하게 살게 하려고,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들은 찐 진심이긴 하지만 다 내 입장이고 생각이며 사랑이라는 착각으로 포장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알아서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원하는데 취업하고 순탄하게 인생 산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다. 인생 길고 그 안에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의 결말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고사 지내고 치성 드려봤자 아무짝에 필요 없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그때그때 다른 인생을 적절히 레고 조립하듯 잘 맞춰살면 된다. 그러려면 그냥 내버려 두고 지금부터 지가 잘 맞추는 연습을 하게 하면 된다. 사랑으로 포장한 욕심을 버리면 각자도생을 터득한다. 이리 사는 게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아들과 소통하며, 때론 노력하며 터득하고 배운 '의리'에 대한 깨달음을 전하는 저자의 이야기 중에 내가 할 수 없던 '같이 하는 운동'에 대한 내용은 좀 씁쓸함을 남겼다. 다섯 살 때인가? 동네 유소년 축구 클럽에 다니던 누구누구 씨가 축구를 하자고 했다.


아직 아빠가 걷거나 뛸 수 없음을, 다른 아빠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누구누구 씨에게 나는 "축구는 네 친구 아빠랑 하는 거야"라고 일러 주었고 누구누구 씨는 입을 삐쭉 거리긴 했지만 오래지 않아 친구 아빠랑 축구도 하고 보러도 갔다. 나는 마치 에너자이저 같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없던 영역의 것들이 존재했다. 아이들과 만들어 가는 의리는 몸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새 학기가 되면 담임은 앞으로 나가든 자리에서 일어나든 반 아이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꼭 발표를 시키는 게 두 가지가 있었다. 다름 아닌 가진 꿈과 존경하는 위인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이 생각해 보지 않은 영역의 것들. 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아이들은 군인이나 대통령 같은 당시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들처럼 되는 게 꿈이었고 위인이래 봤자 위인 전기에서 보던 슈바이처나 파스퇴르 같은 그렇게 이름을 거하게 남기고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을 소환하기 급급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아버지요."라고 소리치는 친구가 있었고 담임은 실시간으로 "느그 아버지?"라고 반문 했다. 누군들 생각이나 해봤을까? 아버지가 위인이라니 존경의 대상이라니. 그땐 웃고 넘겼지만 자부심으로 다부진 표정을 짓던 그 친구는 그런 아빠로 성장했을까 궁금하다.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자녀가 부모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싶을 만큼 어려운 일이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행복한 일이라는 걸 실감한다.


읽다 보면 교사인 아내보다 자신이 더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는 아빠라는 사실을 뿌듯해 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재밌다. 하지만 육아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네가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그대로 이루어질 턱도 없다. 육아는 버라이어티 한 세계라서 네 거와 내 거가 확실히 구분되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포장지를 씌워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바람 가득 불어 넣는 육아는 이미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90쪽


육아를 말할 때 잊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이 덕선이 앞에서 했던 "나도 아빠가 처음이라 서툴다"라는 대사다. 볼 때는 마음이 울컥했는데 살다 보니 첫째나 둘째나 셋째나 다 똑같다. 육아는 몇 번을 해도 리셋되는 경이로운 일이다.


큰 아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저자의 글에는 자부심 만렙이 느껴진다. 중3인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찾고 선택과 결정에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빠른 실행에 옮기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나라면 결코 그러지 못했을 게 뻔하다.


218쪽


아이들의 성(性) 적인 문제부터 결혼 후 모습까지 미리 상상하고 대비하는 아빠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싶어 진심 리스펙트 하게 된다. 하지만 소통 잘 되는 부모로 남으려 에너지를 쏟는 모습과는 달리 나는 내심 아이들이 있는 듯 없는 듯 남처럼 살길 바라고 있어 좀 씁쓸했다. 이십여 년 돌봄을 해냈으니 남은 시간은 오롯이 아내와 둘이서 조용히 살고픈 게 욕심이다. 어릴 때부터 세뇌를 시키고 있지만 먹혀들 것 같진 않은 게 함정이긴 하지만.


283쪽


이 책은 자신의 아버지와 살가운 감정이나 추억을 만들지 못한 설움을 대를 잇진 않겠다는 다짐으로 육아에 진심이었던 저자의 마음과 노하우가 그득하다. 그렇다고 부모 되는 법이라던가 두 아들과 소통 잘 되는 아빠의 비법서 같은, 육아가 쉬워진다는 뻔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육아를 앞둔 부모나 이미 육아에 지치고 멘탈이 흔들리는 부모라면 읽어보면 유익한 찐 육아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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