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좌충우돌 아빠의 일기장 - 세상 모든 부모에게 전하는 두 아들 아빠 이야기
김진모 지음 / 보민출판사 / 2024년 1월
평점 :
나는 두 아들은 아니지만 둘,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아들 수를 이겨낼 만큼 강력한 아들이 있다. 게다가 MBTI가 공감형인 F 이긴 하지만 소문자라서 공감 능력이 떨어져 내 육아의 세계는 하루하루 현타에 시달리는 시간일 뿐이다.
표지에 '세상 모든 부모'를 걸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길래 '이 양반도 어지간히 고단했구나' 싶어 마음이 심히 동했다. 나는 아들을 아들이라 호칭하지 않고, 따뜻한 애정을 담아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옆집 남 대하듯 한지 오래다. 이 정도 해야 쌍욕을 날리지 않고 얼마간 인격적 대우를 할 수 있다.
상대는 평온한데 그로 인해 나만 혈압 터질 지경으로 게이지를 올리고 스트레스 최고치로 끌어 올려봤자 내 수명만 단축된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백세 시대, 기네스북 등재를 노리진 않아도 그 정도까지는 건강히 살고 싶은 소망에 아들을 누구누구 씨로 부르며 그를 향한 부질없는 욕심을 접었다.
나는 누구누구 씨와 힘든 감정 소모전을 치르면서 네가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나중에 좀 편하게 살게 하려고,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들은 찐 진심이긴 하지만 다 내 입장이고 생각이며 사랑이라는 착각으로 포장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알아서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원하는데 취업하고 순탄하게 인생 산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다. 인생 길고 그 안에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의 결말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고사 지내고 치성 드려봤자 아무짝에 필요 없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그때그때 다른 인생을 적절히 레고 조립하듯 잘 맞춰살면 된다. 그러려면 그냥 내버려 두고 지금부터 지가 잘 맞추는 연습을 하게 하면 된다. 사랑으로 포장한 욕심을 버리면 각자도생을 터득한다. 이리 사는 게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아들과 소통하며, 때론 노력하며 터득하고 배운 '의리'에 대한 깨달음을 전하는 저자의 이야기 중에 내가 할 수 없던 '같이 하는 운동'에 대한 내용은 좀 씁쓸함을 남겼다. 다섯 살 때인가? 동네 유소년 축구 클럽에 다니던 누구누구 씨가 축구를 하자고 했다.
아직 아빠가 걷거나 뛸 수 없음을, 다른 아빠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누구누구 씨에게 나는 "축구는 네 친구 아빠랑 하는 거야"라고 일러 주었고 누구누구 씨는 입을 삐쭉 거리긴 했지만 오래지 않아 친구 아빠랑 축구도 하고 보러도 갔다. 나는 마치 에너자이저 같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없던 영역의 것들이 존재했다. 아이들과 만들어 가는 의리는 몸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새 학기가 되면 담임은 앞으로 나가든 자리에서 일어나든 반 아이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꼭 발표를 시키는 게 두 가지가 있었다. 다름 아닌 가진 꿈과 존경하는 위인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이 생각해 보지 않은 영역의 것들. 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아이들은 군인이나 대통령 같은 당시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들처럼 되는 게 꿈이었고 위인이래 봤자 위인 전기에서 보던 슈바이처나 파스퇴르 같은 그렇게 이름을 거하게 남기고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을 소환하기 급급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아버지요."라고 소리치는 친구가 있었고 담임은 실시간으로 "느그 아버지?"라고 반문 했다. 누군들 생각이나 해봤을까? 아버지가 위인이라니 존경의 대상이라니. 그땐 웃고 넘겼지만 자부심으로 다부진 표정을 짓던 그 친구는 그런 아빠로 성장했을까 궁금하다.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자녀가 부모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싶을 만큼 어려운 일이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행복한 일이라는 걸 실감한다.
읽다 보면 교사인 아내보다 자신이 더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는 아빠라는 사실을 뿌듯해 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재밌다. 하지만 육아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네가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그대로 이루어질 턱도 없다. 육아는 버라이어티 한 세계라서 네 거와 내 거가 확실히 구분되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포장지를 씌워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바람 가득 불어 넣는 육아는 이미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90쪽
육아를 말할 때 잊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이 덕선이 앞에서 했던 "나도 아빠가 처음이라 서툴다"라는 대사다. 볼 때는 마음이 울컥했는데 살다 보니 첫째나 둘째나 셋째나 다 똑같다. 육아는 몇 번을 해도 리셋되는 경이로운 일이다.
큰 아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저자의 글에는 자부심 만렙이 느껴진다. 중3인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찾고 선택과 결정에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빠른 실행에 옮기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나라면 결코 그러지 못했을 게 뻔하다.
218쪽
아이들의 성(性) 적인 문제부터 결혼 후 모습까지 미리 상상하고 대비하는 아빠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싶어 진심 리스펙트 하게 된다. 하지만 소통 잘 되는 부모로 남으려 에너지를 쏟는 모습과는 달리 나는 내심 아이들이 있는 듯 없는 듯 남처럼 살길 바라고 있어 좀 씁쓸했다. 이십여 년 돌봄을 해냈으니 남은 시간은 오롯이 아내와 둘이서 조용히 살고픈 게 욕심이다. 어릴 때부터 세뇌를 시키고 있지만 먹혀들 것 같진 않은 게 함정이긴 하지만.
283쪽
이 책은 자신의 아버지와 살가운 감정이나 추억을 만들지 못한 설움을 대를 잇진 않겠다는 다짐으로 육아에 진심이었던 저자의 마음과 노하우가 그득하다. 그렇다고 부모 되는 법이라던가 두 아들과 소통 잘 되는 아빠의 비법서 같은, 육아가 쉬워진다는 뻔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육아를 앞둔 부모나 이미 육아에 지치고 멘탈이 흔들리는 부모라면 읽어보면 유익한 찐 육아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