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계절의 흔적
이담 지음 / 일단 / 2024년 2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 봐주면 어떻겠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가정폭력에 대한 경험담이라 했다. 가정폭력은 경험하지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영역이었다. 이런 내게 알리고 싶어 했던 그의 이야기는 뭘까 싶었다. 흥미보다는 궁금했달까.


가해자에게 집중되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오롯이 고통을 버텨내야 결국 생존할 수 있는 현실을 담담히 적어 낸다. 마치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 무심히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되려 더 상처로 남을지 모르겠다는 어설픈 오지랖이 발동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 생존자로 분류하는 작가의 말이 마음을 묵직하게 내리 눌렀다.


24쪽, 죄


일상적으로 벌어진 폭력과 학대를 다소 격양된 감정이 느껴지긴 하지만 담담히 짧게 적어 내려가는 작가의 글에서 떠오르는 단어는 '도대체'였다. 도대체 이런 어린 아이를, 자식을 죽으라 때리는 인간들을 본 적도 없을뿐더러 이런 삶이 머릿 속에서 그려지질 않아서 어떤 형태로든 감각할 수 없어 답답했다.


"당신들이 평생 죄책감에 살도록 당신들 앞에서 죽고 싶다."라던 작가의 말에 공감할 수 없다. 과연 그들 앞에서 죽어 준대도 그들이 죄책감을 알까? 안고 살아 줄까? 작가는 그렇게 살아 놓고도 왜 모를까 싶은. 그런 인간들은 애초에 그런 걸 알리 없잖은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꿋꿋이 버티듯 살아남아 그 인간들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복수다.


사실 알 수 없는 감각들을 활자로 마주하고 나서 그냥 잘 아는 것처럼 혹은 관심 많았던 것처럼 위로랍시고 말을 건네기조차 조심스럽다. 다만 그런 지옥 같은 삶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것에, 꾸역꾸역 짜냈을 용기에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도 응원한다.


"사실 정말 스스로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게 몇 개나 될까. 자신의 이름마저 남이 정한 인생인 것을." 113쪽, 나의 것


"용서를 해줘도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존재한다."라거나 "꿈에서조차 쫓아 올까 봐 침대 밑에 들어가 잠을 자야만 했다."라는 이야기에 순간 눈 앞이 흐려졌다. 매 순간 목을 조르는 느낌일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덮치는 기분이 들었다.


140쪽, 매일


이 책은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의 경험치가 없는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또 자신과 같은 경험들을 관통해 온 이들에게 보내는 반드시 살아내라는 응원의 편지요, 메시지다.



작가에게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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