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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서점 북두당
우쓰기 겐타로 지음, 이유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5년 8월
평점 :

제목을 보고 순간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대전의 빵집, 북두신권,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 같은. 어쨌든 재밌는 생각이 터져 좋았다. 작가의 필모도 흥미롭다. 2020년 <숲이 부른다>로 공포소설 대상으로 등단한 후 2024년엔 <고양이 서점 북두당>으로 판타지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쓰기만 하면 대상이니 이 또한 판타지 아닌가?

인간이 지어 준 진짜 이름인 진명을 바랐지만 여덟 번의 생을 살아오는 동안 이름을 갖지 못한 고양이 쿠로는 그중 세 번째 만났던 인간 나쓰메 소세키조차 이름을 주지 않고 떠나자 스스로 긴노스케라 이름을 붙였다.
고양이가 실제 아홉 번의 생을 그것도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이어 간다는 서사가 판타지 자체인 데다 작가와 연을 이었던 고양이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북두당 서점에 모인다는 이야기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자칭 긴노스케는 결국 예민하고 염세주의자였던 긴노스케에게 물들어 여덟 번의 생을 이어오면서 인간뿐만 아니라 종족인 고양이가 보이는 선의를 믿지 않는다. '재수 없게 불행을 마주했다면 그냥 체념하고 몸을 맡기'라니 인간 긴노스케의 영향력이 대한 하긴 했나 보다.
근데 읽다 보니 긴노스케처럼 시크한 고양이의 본성은 아홉 번의 생을 통해 반복되는 관계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고양이가 달리 보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누구든 혼자가 된다. 기대는 곧 의존이 되고, 의존은 결국 패배로 이어진다. 믿는 순간 상처받는다." 23쪽
의존이 어떤 의미에서 패배의 결과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뭐, 대략의 의미는 공감되긴 해서 문장을 보면서 인간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관계에선 역시 진심의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걸 생각한다.
한편 젊은 청년들을 스스로 죽음으로 내던지게 만들었던 전쟁을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은 것으로 미화하거나 일본인들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표현이 은근하게 깔려 있어 심기가 좀 불편했다. 아이들을 내세워 자신들이 피해자라던 지브리의 <반딧불의 묘>처럼. 하지만 어쨌든 고양이의 시점으로 인간 군상에 대한 표현이니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전쟁 이후 경제성장기를 바라보는 인간 군상은 우리가 겪어온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꾹꾹 눌러가며 읽게 된다. 참혹한 전쟁 이후인지 아니면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건지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것들을 곱씹게 된다. 일본 작가의 비판적 글에서 그들 나라의 잘못을 곱씹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183쪽
"서점 주인이 낙심해 있으니 우리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단지 그 정도의 이유였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도 그 정도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216쪽
두 다리로 서서 직립보행을 하고 앞발톱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도서 재고 정리를 하던 루루의 죽음에 마녀가 침울해 하는 것을 지켜보는 전생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 기타호시의 울적한 표현이 와닿았다. 누군가 위로가 필요한 줄 알지만 선뜻 그러기 어려울 때, 해줄 게 없어서 마음만 동동 거릴 때의 기분이 공감됐다.
얼마나 멋진가! 자신의 신년을 지키기 위해 신 따위에게 맞선 고양이라니.
"고작 그거냐. 할 말 다 했으면, 어서 꺼져라. 그리고 하나 더…. 내 이름은 긴노스케다. 헷갈리지 마라, 신 따위가." 368쪽
이 책은 네 마리의 고양이와 인간 북두당 서점 마녀 기타호시, 초등학생 마도카의 이야기가 너무 생동감 있게 펼쳐져서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몰입했다. 북두당에 갇혀버린 기타호시의 저주와 작가와 전생을 살았던 고양이들의 이야기라니 정말 판타스틱했다. 그것도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의 주인이 쿠로, 아니 긴노스케였다니!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사랑하진 않지만 책은 사랑해서 선뜻 읽게 된 책인데 판타지에 빠져 읽다 보니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은 생긴 듯도 하다. 고양이와 책과 판타지를 사랑한다면 강추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