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 권지예 소설
권지예 지음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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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닥치지만 이별은 보험 처리처럼 지지부진하다.-22쪽

누군가는 퍼즐이 삶을 견디기에 좋은 게임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틀렸다. 물론 퍼즐을 하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퍼즐만큼 꽉 차고 완벽한 인생이란 없다는 ㅅ애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들 인생은 늘 몇 조각 부족한 퍼즐 판이다, 라는 그럴듯한 통찰이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퍼즐 게임은 완벽함이 생명이다. 한 조각이라도 달아난 퍼즐 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폐기 처분되어야 마땅하다. 단 한 조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완전하게 맞추기 위해 퍼즐 게임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은, 생의 에너지는, 결핍을 채우려는 불완전한 욕구로 허덕일 뿐이다. 그게 인생과 퍼즐 판의 차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퍼즐을 하는 여자의 내면에 쌓이는 아귀 맞지 않은 욕망의 조각들을. 아직 제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유예된 증오의 부스러기들을. -34쪽

꽃은 절정이 지나 모두 떨어졌다. 그러나 꽃 진 자리가 꽃보다 더 붉다는 걸 남자는 이번에 새로 알았다.-202쪽

그대들은 둘 다 컴컴하고 조심스럽다
인간이여, 아무도 그대 심연의 밑바닥 헤아릴 길 없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은밀한 보물 알 길 없다.
그토록 악착같이 그대들은 비밀을 지킨다! - 보들레르의 <인간과 바다-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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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품절


미국 영화가 자꾸만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의 지적 힘이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자기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것을 선전해야만 안심이 되는 나라는 이미 그렇게 좋은 나라가 아니다. 자기 나라가 좋지 않은 나라라고 비판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고 그것을 수용하는 나라가 차라리 좋은 나라이다. 그 체제를 나는 부정적 신학이라는 용어를 차용하여 부정적 체제라고 부르고 싶다.-47쪽

한국 사회는, 소외/물신화/기능화 등의 후기 산업 사회의 특징을 그러난 구조로 갖고 있으며(나는 나 아닌 것이다), 분단/군사 독재 등의 후진국 경제 정치적 특성을 숨은 구조로 갖고 있다(나는 나 아닌 것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내가 나 아닌 것이어야 안심하고 살 수 있다. 나는 사유하지 않는다...... 나는 사유하지 않는다. -55쪽

구멍의 공에 제일 깊게 사유한 최초의 인물은 노자이다. 그는 항아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항아리의 텅 빈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빈 곳이 있어야 채울 마음이 생겨난다. 공은 행위, 욕망의 행위의 밑바닥이다. 장자는 그것을 더 논리화해서, 구멍을 뚫으면 혼돈은 죽는다라고 말한다. 그것을 뒤집으면, 구멍이 있으면 혼돈은 없다. 그 구멍은 질서, 사회 생활의 기본틀이다. 구멍이 없는 존재는 완전자 - 신, 악마, 자연...... - 뿐이다. 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 인간적이다. 인간은 구멍의 모음이다. 채워도 채워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구멍들......-71쪽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정음사, 1968)의 가장 끔찍한 전언은 맨 앞 대목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사는 힘은 강하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 그 동물은 체념에도 쉽게 익숙해진다. 불편하고 더러운 것, 비인간적인 것에 익숙해진 인간의 모습은 더러운 것인가, 안 더러운 것인가?-71쪽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왜 욕망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남의 이야기나 감정 도로는 하나의 전범으로 그에게 작용하여, 그는 거기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게 된다. 저항할 때 전범은 희화되어 패러디의 대상이 되며, 순응할 때 전범은 우상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된다. 나는 누구처럼 되겠다가 아니면, 내가 왜 그렇게 돼가 된다. 그 마음가짐은 그의 이름붙이기 힘든 욕망을 달래고, 거기에 일시적인 이름을 붙이게 한다. 왜 일시적인가 하면, 전범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79쪽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의 사람은 투사고 뒤의 사람은 종교인, 예술인이다.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자부심 없이는 싸울 수 없고,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사유하는 사람의 원죄성이 없이는 느낄 수 없다. -168쪽

욕망은 단순한 개인 심리적인 개념뿐만 아니라 정치적 개념이기도 하다. 욕망은 현실 원칙에 의해 억눌리고, 그러면 억압이 생겨난다. 그 억압의 상징이 아버지이다. 아버지에게 억눌린 아들은 결핍의 상태로 그 욕망을 산다. 그 결핍이 욕망을 변형시키고 왜곡시킨다. 욕망의 뿌리는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이면서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정치적 욕망이다. 살부 의식은 제임슨이 말하는 "현실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불만"이다. -190쪽

죽는다는 것은 사회적 관련하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 그 가장 극단적인 예가 로빈슨이겠지만 - 죽지 않는다. 그는 사라져 없어질 뿐이다. 죽는다는 것은 남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으나, 육체적으로는 접촉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 다시 말해 혼자 살게 되었을 때 그는 사라진다. 어디로? 무 속으로. 무마저도 없는 무 속으로. -190쪽

가장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루에 여덟 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계속 밥을 먹을 수도 없으며, 또 여덟 시간씩 술을 마실 수도 없으며 섹스를 할 수도 없지요. 여덟 시간씩 할 수 있는 일이란 일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이지요. - 포크너-?쪽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 -?쪽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킵니다. 열정없는 재능이란 없지요. - 김윤식-?쪽

생각이란 벼룩 새끼들 같아서 헤아릴 수가 없다. - 러시아 속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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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남자가 숨어있다 - 배수아의 아름다운 몸 이야기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4월
구판절판


싫증나는 세상이다. 오염되었기 때문에 싫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겁이 많아졌다. 그래서 한 톨의 먼지에도 오염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살다가 우울증으로 자살한다.-42쪽

사람들은 제도권 안의 사고 방식의 사람들이든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든지 간에 모두가 다 광적으로 섹스에 중독되어 있다.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건전해야 한다, 음란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했다, 너는 어떻게 했니, 너는 그만큼 노골적이니, 나는 그보다 더해 보이겠어 등등 참 싫증나는 일이다. 그것말고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의사 소통이 존재하는가. 단 한 번의 인사에도 얼마나 많은 인상이 있는가. 상상력이 없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참 많이 피곤하다. 상상력이 없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43쪽

다른 사람을 통해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부분에서는 자유롭게 비위생적이 되거나 비상식적이 되어도 된다. 그것은 완벽한 기호의 문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털어놓고 용서를 바랄 필요도 없다. 혹 그것 때문에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대, 고통 하나 없는 완전한 인생을 진정 원하는가? 상처 없는 관계를 원하는가? 하나의 비밀도 가지지 않기를 원하는가? 죽을 때까지 마음 아플 일이 없기를 바라는가?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인격을 진정 원하는가? 진정인가?-58쪽

바람과 굶주림을 참고 긴 시간 알을 품고 있는 갈매기. 수천 수만이 서로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정확히 자기 새끼를 찾아내어 먹이를 주는 눈 밝은 모성. 그러나 그 새끼새가 길을 잃고 둥지에서 떨어져 나오면 얼마 안 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다른 어미새들의 공격 때문이다. 한정된 먹이와 불충분한 환경에서 자기 새끼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Only my baby. 모성이란 그런 요소가 있다. 기본적으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모성이 배타적이 아니라면, 인류라는 종족은 과연 번식할 수 있었을까. 인간은 갈매기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더 지독한 존재인데. 우리는 그런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여자와 남자와 가족과 미화의 오류 위에. -71쪽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의사소통의 기본은 육체이다. 그 사람의 인상이나 말투, 목소리나 태도도 육체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추상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 부정적이다. 정신이란 것도 결국은 뇌의 작용이 아니던가. 이유 없는 끌림이란 것은 언어로만 존재할 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인격이 육체화된다. 육체는 정말 중요한 인생의 도구다. 그것이 관계를 만들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육체가 벽이 되어 절대로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76쪽

어떤 사람은 성욕을 느끼는 친구만 있다면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정의 한 형태로 섹스를 선택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러나 섹스가 쉬운가, 친구가 쉬운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섹스할 수는 있지만 친구는 될 수 없다. 친구는 쉽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섹스는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지만 친구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섹스는 잊을 수 있지만 친구는 잊을 수 없다. 성욕은 사라지고 성적 관심도 사라진다. 그런 순간에도 우정은 남아 있다. 우리가 친구에게 더 이상의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만 않는다면. 그러지만 않는다면.-94쪽

늙어 보인다고?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늙어 보인다고 해서 모든 로맨틱한 시선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연애에서 자유로울 만큼 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준이라는 것이 있어 거기에 미달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잘생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캐스팅됐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 -131쪽

지금 우리는 사실 고독하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은 없다. 돈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대개의 경우, 돈은 오락과 문화와 친구와 애인을 만들어 준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돈은 이제 속물의 표상을 넘어 하나의 철학이다. 부끄러워하거나 격이 낮다고 의기소침해할 필요는 없다. 요는 사람의 육체는 정신 이상으로 별개이며 그 상태 그대로 사회를 이루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이런 현실일 뿐이다. 그러므로 민족이나 계급에 대한 환상은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계약된 것뿐이므로. 그러므로 인간은 굳이 데카당해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자신의 특이한 성 취향을 자랑할 필요도 없고 청소년이 혹시 어두운 성의식을 가지게 될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어둡지 않은 성의식이란 또 얼마나 썰렁한가). 무지한 대중을 계몽하려는 목소리도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충분히 혼자다. 그 자체에 폐쇄성과 비극성과 극한의 개별성이 있다. 그런 몸은 죽기까지 혼자 있는 것을 택하고 싶을 것이다. -146쪽

사람이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은 서로 남자고 여자이기 때문만도 아니고 잃어버린 반쪽이라서 그런 것만도 아니고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도 아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너무나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바로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식의 위안의 말은 안 믿는 편이다. 대상이 절대적이지 않다. 존재의 불안이 고독을 만들고 그래서 필요한 연인은 이미지로 남는다. 바로 그(녀)는 한때 나의 연인이었다는 이미지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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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방
김미월 지음 / 민음사 / 2010년 4월
구판절판


한때 나는 늘 기다렸다. 관은 올 듯 올 듯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듯 오지 않을 듯 오기도 했다. 당시 누군가 지옥이 무어냐 물었다면 나는 대답했을 것이다.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또 누군가 천국이 무어냐 물었다면 마찬가지로 나는 대답했을 것이다.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그러니 본질이란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더이상 관을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행복과 안온과 평강이 다시 내게 찾아든 것을 확인했다. 희망을 버렸더니 행복해지더라고 석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희마을 버려서 얻은 행복은 가짜야. 석은 그렇게 대꾸했던가. 차라리 희망을 갖고 불행해져. 모든 건 지나가게 돼 있으니까. 불행조차 말이야. 지나가고 나면 다 괜찮아질거야. 그렇게 말했던가.-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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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양석일의 다른 작품 좀 재출간해주시면 안되나요? 피와 뼈 읽고 싶어 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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