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증나는 세상이다. 오염되었기 때문에 싫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겁이 많아졌다. 그래서 한 톨의 먼지에도 오염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살다가 우울증으로 자살한다.-42쪽
사람들은 제도권 안의 사고 방식의 사람들이든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든지 간에 모두가 다 광적으로 섹스에 중독되어 있다.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건전해야 한다, 음란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했다, 너는 어떻게 했니, 너는 그만큼 노골적이니, 나는 그보다 더해 보이겠어 등등 참 싫증나는 일이다. 그것말고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의사 소통이 존재하는가. 단 한 번의 인사에도 얼마나 많은 인상이 있는가. 상상력이 없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참 많이 피곤하다. 상상력이 없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43쪽
다른 사람을 통해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부분에서는 자유롭게 비위생적이 되거나 비상식적이 되어도 된다. 그것은 완벽한 기호의 문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털어놓고 용서를 바랄 필요도 없다. 혹 그것 때문에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대, 고통 하나 없는 완전한 인생을 진정 원하는가? 상처 없는 관계를 원하는가? 하나의 비밀도 가지지 않기를 원하는가? 죽을 때까지 마음 아플 일이 없기를 바라는가?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인격을 진정 원하는가? 진정인가?-58쪽
바람과 굶주림을 참고 긴 시간 알을 품고 있는 갈매기. 수천 수만이 서로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정확히 자기 새끼를 찾아내어 먹이를 주는 눈 밝은 모성. 그러나 그 새끼새가 길을 잃고 둥지에서 떨어져 나오면 얼마 안 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다른 어미새들의 공격 때문이다. 한정된 먹이와 불충분한 환경에서 자기 새끼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Only my baby. 모성이란 그런 요소가 있다. 기본적으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모성이 배타적이 아니라면, 인류라는 종족은 과연 번식할 수 있었을까. 인간은 갈매기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더 지독한 존재인데. 우리는 그런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여자와 남자와 가족과 미화의 오류 위에. -71쪽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의사소통의 기본은 육체이다. 그 사람의 인상이나 말투, 목소리나 태도도 육체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추상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 부정적이다. 정신이란 것도 결국은 뇌의 작용이 아니던가. 이유 없는 끌림이란 것은 언어로만 존재할 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인격이 육체화된다. 육체는 정말 중요한 인생의 도구다. 그것이 관계를 만들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육체가 벽이 되어 절대로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76쪽
어떤 사람은 성욕을 느끼는 친구만 있다면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정의 한 형태로 섹스를 선택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러나 섹스가 쉬운가, 친구가 쉬운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섹스할 수는 있지만 친구는 될 수 없다. 친구는 쉽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섹스는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지만 친구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섹스는 잊을 수 있지만 친구는 잊을 수 없다. 성욕은 사라지고 성적 관심도 사라진다. 그런 순간에도 우정은 남아 있다. 우리가 친구에게 더 이상의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만 않는다면. 그러지만 않는다면.-94쪽
늙어 보인다고?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늙어 보인다고 해서 모든 로맨틱한 시선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연애에서 자유로울 만큼 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준이라는 것이 있어 거기에 미달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잘생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캐스팅됐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 -131쪽
지금 우리는 사실 고독하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은 없다. 돈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대개의 경우, 돈은 오락과 문화와 친구와 애인을 만들어 준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돈은 이제 속물의 표상을 넘어 하나의 철학이다. 부끄러워하거나 격이 낮다고 의기소침해할 필요는 없다. 요는 사람의 육체는 정신 이상으로 별개이며 그 상태 그대로 사회를 이루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이런 현실일 뿐이다. 그러므로 민족이나 계급에 대한 환상은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계약된 것뿐이므로. 그러므로 인간은 굳이 데카당해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자신의 특이한 성 취향을 자랑할 필요도 없고 청소년이 혹시 어두운 성의식을 가지게 될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어둡지 않은 성의식이란 또 얼마나 썰렁한가). 무지한 대중을 계몽하려는 목소리도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충분히 혼자다. 그 자체에 폐쇄성과 비극성과 극한의 개별성이 있다. 그런 몸은 죽기까지 혼자 있는 것을 택하고 싶을 것이다. -146쪽
사람이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은 서로 남자고 여자이기 때문만도 아니고 잃어버린 반쪽이라서 그런 것만도 아니고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도 아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너무나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바로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식의 위안의 말은 안 믿는 편이다. 대상이 절대적이지 않다. 존재의 불안이 고독을 만들고 그래서 필요한 연인은 이미지로 남는다. 바로 그(녀)는 한때 나의 연인이었다는 이미지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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