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도하는 밤
이영제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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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도하는 밤'은 약간의 강론과 더불어 3분 교리를 듣는 것 같았다. 예비신자 교리와 견진성사를 위한 교리, 성령 세미나 등 특별한 때가 아니면 평소에는 신부님을 통한 교리 교육을 접하기 어렵고 스스로 찾아 공부해야 하는데, 이렇게나마 교리를 배우는 입장이 되니 책을 읽는 동안은 3분 교리를 듣던 '청년인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시절엔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지나고 보면 참 좋은 말씀을 해 주셨던 신부님이 계셨는데, 무슨 일을 하든 내 안에, 내 곁에 항상 하느님을 두고 행하라 말씀하시던 것이 떠올랐다. 근 여섯 달 동안은 내 안에, 내 곁에 한 번이라도 계시길 원했을까. 해야만 하기에 목적 달성만 바라보고 행해왔고, 그러기에 지금의 내 안에는 텅 빈 듯한 허무함만이 남아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무엇이든 감성적이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가진 요즘의 나에게 담백하고 따스한 위로를 건네주는, 촉촉한 빗방울에 흔들거리는 촛불 앞에 앉아 함께 기도하는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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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 - 개정판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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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작가가 읽어주는 동화 같은,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작가만의 스타일로 풀어 읽어주는 듯한 책이다. 시대적 배경 설명과 성경에 적히지 않은 주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 주니, 구절 구절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그 상황 속에 내가 속해 있는 것처럼 금방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각인된 것이 있다면,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평범하였다는 점이다. 이름조차도 흔하고 평범하였고, 공생 이전의 삶도 평범한 직업에, 외모와 행색마저도 평범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땐, 극히 평범한 이름과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성씨를 가진 내 삶이 너무나도 평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삶이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이리저리 쓸데없는 방황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한 번 더 인지하고 나서야 어렸던 나의 생각과 행동이 부끄러운 것임을 느끼고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인생의 1/3을 살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다양한 삶을 보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극히 평범한 용모, 극히 평범한 수염과 머리카락, 그리고 자기 제자들에게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라고 한 마르코 복음서의 내용으로 보아 약간 초라한 차림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예수의 외모인 것이다.

예수, 전에 가톨릭에서는 '예스즈'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 발음으로는 '예수스', 히브리어로는 '예호수아'나 '여호수아'라는 이 이름 또한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었다.

-p10

복음이란 문자 그대로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요한 세례자의 메시지처럼 듣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위협적인 말은 없으며, 하느님의 분노나 벌 따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요한 세례자가 그랬듯이 예수도 회개하라고 선포했지만, 예수의 '회개하고'라는 메시지는 오히려 '망설이지 말고'라고 해석해도 될 정도이다.

예수와 요한의 메시지를 비교해 보면, 어두운 숙명을 짊어졌던 구약의 세계가 저물고, 긴긴 밤을 지나 여명이 밝아오는 듯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한 번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유다 광야의 풍경과 전혀 다른 갈릴래아 호수 주위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p64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 그것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로서 할 일이 아닌가! 용서하는 것, 베푸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들어온 지혜서의 삶의 처세술이나 바리사이파의 계율과는 전적으로 달랐고, 인간으로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호소였던 것이다. 군중은 동요했다. 그들은 비로소 예수의 분명한 대답을 들었다. 자신들의 민족적인 절규에 대해 이와 같은 답변을 들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군중은 환멸을 느꼈다. 자신들이 기대했던 예수의 이미지와, 사랑을 호소하는 실제의 예수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들의 요구를 이 유명한 가르침으로 물리쳤다. 군중은 일어나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환멸을 느낀 나머지 욕을 해댔고, 분노의 절규를 하는 이도 있었다. 오직 예루살렘의 감시원들만이 만족해하고 있었다. 민중은 예수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자 환멸을 느꼈고, 민심은 서서히 떠나가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감시원들은 이를 고대하고 있었고,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온 것을 느꼈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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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신부 카폰 - 6·25 전쟁의 성인, 전장의 그리스도, 개정판 정진석 추기경 전집 4
아더 톤 지음, 정진석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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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괜스레 코가 시큰해진다. 포항에서 있었던 학도병 전투를 비롯해, 1.4후퇴 때 할아버지가 겪으신 이야기, 138일 동안 방송을 통해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 장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6.25전쟁이라고 하면 흔히 우리나라 안에서 겪은 일만 떠올리고, 한국인 참전용사만 기리게 되지만 (그마저도 참전용사 대우를 제대로 못 받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우리에게 도움을 준 국가와 그 젊은 청년들의 희생 또한 기억해야 한다. 다행히 요즘은 다양한 방송매체를 통해 외국 참전용사들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신부님이구나.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셨을까. 무사히 귀환하여 좋은 생을 사셨을까.' 책을 읽기 전의 그 담담한 마음은 첫 장부터 말랑해져 눈물을 글썽였다. 카폰 신부님은 전쟁터 속 그리스도이셨다. 책을 읽는 내내 코가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로 존경받으실 만한 분이다'라는 말로도 카폰 신부님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 책은 카폰 신부님의 이야기로도 가슴 벅차지만, 역자 추기경님에 대해서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얼마 전에 선종하신 정진석 추기경님이 신학생 시절 번역하신 책이었고, 개정판이 나오기 전에 선종하셨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정진석 추기경님은 카폰 신부님을 닮고 싶어 하셨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한낱 사람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이 드러나고야 만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하고 회개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성이 버틸 수 없는 전쟁터 속에서 카폰 신부님은 항상 이성적이셨고 그리스도 그 자체이셨다.

2000년대에 와서 우리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평소에는 의무적으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야 전쟁은 언제나 가까이 있음을 깨닫고 진심을 다해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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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주성범 - 그리스도를 본받아, 개정3판 꼭 읽어야 할 그리스도교 고전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윤을수 옮김, 박동호 윤문 / 가톨릭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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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도서는 3권 중 택하여 받아 볼 수 있었는데, 내 생활에만 치중해 있던 요즘의 나를 반성하고자 준주성범을 선택하였다. 처음 접했던 자기개발서를 읽을 때만큼이나 빼곡하게 태그를 붙일 정도로 책을 읽는 내내 깨닫고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은 수도자의 정신생활과 인간 내적 생활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어, 도움이 되는 부분이 꽤나 있었다. 내가 받은 책은 4권의 합본으로, 1권은 정신생활에 유익한 훈계, 2권은 내적 생활로 인도하는 훈계, 3권은 내적 위로에 대한 내용, 4권은 존엄한 성체성사에 대한 내용이다. 3권과 4권은 하느님과 제자가 대화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도, 저자의 삶의 지혜에서 확신을 얻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주변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며 평화롭게 앞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다짐을 하고 위로를 받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책이 작아 매일 가방에 넣어 출퇴근을 하면서도 얼른 읽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다음엔 무슨 내용이 있을지, 저자의 어떤 훈계가 들어 있을지, 내가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었고 알아야 할지에 대한 궁금함이 더 앞섰다. 그래서 틈만 나면 책을 꺼내들었고, 책을 읽던 시간만큼은 무언가도 방해할 수 없는 공간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좀 더 나아가, 반성을 해본다면 최근에 나는 주변을 챙길 수 없음은 물론 스스로도 돌보지 못해, 조그만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날카롭던 시기를 지내고 있었고, 그러기에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잡기 위해 나 자신만 챙기고 생각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어느 날은 며칠 연속으로 차량 사고가 날 뻔했는데, 이러다 정말 큰 사고가 날것 같아 왜 그런지에 대한 단면적인 이유만 찾았지만 시원한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 6월 도서를 읽기 시작하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자 바쁜 출근길,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서 있던 행인들에게 양보하는 내 모습이 보였고, 어떤 이유에서든 도로의 무법자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 걸 느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권쯤은 인생 책이 있을 텐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를 알아차리게 되고 내적인 변화를 느껴서인지, 나에겐 그 몇 권의 인생 책 중 하나가 되었다.

더 많이 알고 더 깊게 알수록 더 거룩하게 살지 않는다면, 그만큼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무슨 기술이 있고 무슨 지식이 있다고 자랑하지 마라. 오히려 네가 습득한 지식을 두려워하라. 네가 스스로 많이 아는 것 같고 모든 것을 잘 이해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오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라.’(로마 11,20 참조) 차라리 네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라. 너보다 박학하고, 너보다 법에 익숙한 사람이 많은데 어찌 네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유익함을 알고 배우고자 한다면 남이 너를 몰라주고 하찮게 여기는 것을 오히려 더 좋아해야 한다.

-p19

오랫동안 하던 것을 버리기도 어렵지만 자기 의지를 거슬러 나아가기는 더욱 어렵다. 네가 작고 가벼운 것도 이길 수 없다면 더 어려운 일을 이겨 나갈 수 있겠는가? 유혹이 있거든 처음부터 끊어 버리고, 좋지 못한 습관은 처음부터 익히지 마라. 점점 더 큰 악으로 빠져들게 될까 봐 두렵다. 훌륭한 생활이 자신에게는 평화를 가져다주고, 다른 이들에게는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영성의 진보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p42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적당한 때를 찾아라. 그리고 자주 하느님의 은혜를 묵상하라. 호기심거리는 무엇이든 버려라. 취미거리보다는 마음을 감동하게 할 만한 것들을 읽어라. 무익한 담화를 하지 말고 필요 없는 왕래를 끊고 헛된 소문과 쓸데없는 말을 듣지 않게 되면 묵상하기에 적절하고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위대한 성인들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될 수 있는대로 피하고, 피정을 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택했다.

-p69

불평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면, 십자가가 너를 지고 네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리고 갈 것이다. 비록 이 세상은 아닐지라도 저곳에서는 고통이 끝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다면, 십자가는 네게 짐이 되어 너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참아야만 할 것이다. 십자가 하나를 내버리면 분명히 다른 십자가를 만날 터인데, 아마 그것은 전보다 더 무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p155

무엇 때문에 헛된 근심으로 몸과 마음을 소모하느냐? 무엇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으로 번뇌하느냐? 나의 뜻을 따라라. 그러면 아무 해도 없을 것이다. 편하게만 지내려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면 결코 평안할 수 없으며 걱정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생활에서는 반드시 부족한 것이 생겨나며 무슨 일에서든지 너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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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그륀의 종교란 무엇인가 - 안셀름 그륀 신부에게 던지는 75개의 질문
안셀름 그륀 지음, 신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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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국가에 사는 만큼,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종교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와 '신앙 실행의 자유'로 나누어지며 그 안에서도 세부 자유가 파생되어,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

'신앙의 자유'는 흔히 우리가 아는 종교의 자유를 대표하는 '신앙을 가질지, 가지지 않을지'에 대한 자유이다. 사회적 문제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 신앙의 자유이다.

'신앙 실행의 자유'는 '얼마나 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 신앙을 실천할지'에 대한 자유이며, 이러한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한다.

 

종교에 대한 자유를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종교에 대한 자유를 침해 당해도 크게 처벌받은 사례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러니한 것은 '국가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 종교의 자유를 제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법이 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많은 사건이 일어나도 제대로 보장을 받거나, 제한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나 역시 신앙을 가진 사람이지만, 모태 신앙이거나 가족 모두 신앙인인 가정이 아니기에, 종교의 자유나 종교의 다양성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로운 편이다. 오히려 모태 신앙이었다면 종교에 대한 강요를 받았을 수도 있고, 그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유아세례에 대해서도 이견을 갖고 있는데, 이 종교의 자유는 아이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울 것이 많다는 이점이나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아세례를 행할 테지만 신앙을 갖고 싶지 않다면 그것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 나도 강요받아서는 안되고, 내가 강요 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종교를 가지는 원초적인 목적에는 '내 안의 평화'이기 때문이다.

 

'안셀름 그륀의 종교란 무엇인가'는 종교에 관한 75가지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고, 종교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궁금했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고 신자들에게는 재인식의 시간을 갖기에 좋다.


+ 하느님께서는 나와 무관한 독립적인 실재이신가요?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하는 사물과 창조된 세계와 인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사물이나 창조된 세계, 인간 안에만 머물러 계시는 분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 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모든 것을 초월하십니다. 신학은 이 사 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물 안에 내재하실 뿐만 아니라 사물들을 초월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보고 알 수 있는 모든 존재자 너머의 고유한 실재이십니다.

32p

+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존재에 관한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나요?

그리스도교 신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경으로, 하느님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고 서로 연결시켰습니다. 우리는 인간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로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본질을 묘사할 수 없습 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인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학은 하느님과 인간을 서로 혼합시키 지 않습니다.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님 안에서 신성 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고 혼합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 은 우리와 하느님 관계에서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결합되어 있지만 “분리되지도 혼합되지도” 않습니다. 즉, 우리는 온전히 인간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와 결합되어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의 가장 내밀한 중심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안에 사시면 우리의 인성이 변화되고, 그분이 우리 생각과 마음을 관통하시게 됩니다. 그러니 우 리는 때때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참자기에 도달할 수 있게 됩 니다. 하느님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자아에 관해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자기, 즉 원천적이며 순수한 당신의 모습 을 닮은 우리와 가까워지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55p

+ 신앙을 받아들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힘의 원천은 직관입니다. 신앙은 순수 이 성적인 결정에만 근거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이성적인 근거는 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의 직관은 사 실을 인식하는 또 다른 원천이 내 안에서 샘솟는다고 말해 줍니다.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또 다른 원천은 갈망입니다. 저는 많은 사 람들에게서 신앙에 대한 갈망을 느낍니다. 갈망은 예술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환상이 아니며 그 아름다움에서 하느님 영광 자체가 빛난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137p

+ 신심과 영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가요?

예전 사람들은 신심이라는 말로 하느님과의 경건한 관계, 즉 하느님 께 대한 내적인 자세를 표현했습니다. 신심은 하느님께 헌신하고, 그 분께 자신을 열어 보이며 그분께서 선사하신 모든 것에 감사함을 의 미합니다. 영성은 더 넓은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오늘날에는 애매하게 쓰입니다. 사람들은 ‘종교 없는 영성’ 내지 ‘하느님 없는 영성’을 말하 기까지 합니다. 마찬가지로 밀교도 이 개념을 자신들의 다양한 수행과 자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래서 영성은 우리를 능가하는 신비에 대한 개방성 내지 정신 집중, 묵상, 침묵 등 영적인 주제에 몰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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