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애 - 개정판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치 작가가 읽어주는 동화 같은,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작가만의 스타일로 풀어 읽어주는 듯한 책이다. 시대적 배경 설명과 성경에 적히지 않은 주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 주니, 구절 구절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그 상황 속에 내가 속해 있는 것처럼 금방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각인된 것이 있다면,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평범하였다는 점이다. 이름조차도 흔하고 평범하였고, 공생 이전의 삶도 평범한 직업에, 외모와 행색마저도 평범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땐, 극히 평범한 이름과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성씨를 가진 내 삶이 너무나도 평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삶이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이리저리 쓸데없는 방황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한 번 더 인지하고 나서야 어렸던 나의 생각과 행동이 부끄러운 것임을 느끼고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인생의 1/3을 살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다양한 삶을 보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극히 평범한 용모, 극히 평범한 수염과 머리카락, 그리고 자기 제자들에게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라고 한 마르코 복음서의 내용으로 보아 약간 초라한 차림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예수의 외모인 것이다.

예수, 전에 가톨릭에서는 '예스즈'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 발음으로는 '예수스', 히브리어로는 '예호수아'나 '여호수아'라는 이 이름 또한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었다.

-p10

복음이란 문자 그대로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요한 세례자의 메시지처럼 듣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위협적인 말은 없으며, 하느님의 분노나 벌 따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요한 세례자가 그랬듯이 예수도 회개하라고 선포했지만, 예수의 '회개하고'라는 메시지는 오히려 '망설이지 말고'라고 해석해도 될 정도이다.

예수와 요한의 메시지를 비교해 보면, 어두운 숙명을 짊어졌던 구약의 세계가 저물고, 긴긴 밤을 지나 여명이 밝아오는 듯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한 번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유다 광야의 풍경과 전혀 다른 갈릴래아 호수 주위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p64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 그것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로서 할 일이 아닌가! 용서하는 것, 베푸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들어온 지혜서의 삶의 처세술이나 바리사이파의 계율과는 전적으로 달랐고, 인간으로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호소였던 것이다. 군중은 동요했다. 그들은 비로소 예수의 분명한 대답을 들었다. 자신들의 민족적인 절규에 대해 이와 같은 답변을 들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군중은 환멸을 느꼈다. 자신들이 기대했던 예수의 이미지와, 사랑을 호소하는 실제의 예수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들의 요구를 이 유명한 가르침으로 물리쳤다. 군중은 일어나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환멸을 느낀 나머지 욕을 해댔고, 분노의 절규를 하는 이도 있었다. 오직 예루살렘의 감시원들만이 만족해하고 있었다. 민중은 예수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자 환멸을 느꼈고, 민심은 서서히 떠나가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감시원들은 이를 고대하고 있었고,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온 것을 느꼈다.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