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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나의 세계
마이클 톰프슨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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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첩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단순한 작품의 세계관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에 가깝다. ’내가 없는 나의 세계’라는 문장은 주어와 소유가 동시에 붕괴된 상태를 가리킨다. 세계는 분명 ’나의 것‘이라 불리지만, 정작 그 세계 속에는 ‘나‘가 없다. 이 역설적인 구조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토대가 된다. 기억되지 않는 존재, 인식되지 않는 삶, 관계 속에서 증명되지 않는 자아는 과연 세계를 소유할 수 있는가. 혹은 세계란, 타인의 기억 속에 보관되지 않으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것인가.

토미의 삶은 존재가 기억에 의해 승인되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부당하는 시간이다. 가장 축하받아야 할 생일은 존재가 사회적으로 승인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폐기되는 시간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삭제는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토미라는 인간에 있어서 존재 조건 자체의 무효화에 가깝다. 가족의 기억에서, 행정적 기록에서, 관계의 감정선에서 그의 이름은 완전히 사라진다. 법과 관계가 동시에 인간을 삭제할 때, 존재는 얼마나 가벼워지는가. 사진도, 기록도, 감정도 남지 않는 세계에서 그는 늘 최초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철저한 말소는 단순한 고독을 넘어, 인간이라는 지위 자체가 박탈되는 경험에 가깝다. 보호의 대상도, 책임의 주체도 되지 못한 채 세계를 통과해야 하는 존재. 그럼에도 토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소설이 파고드는 지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기억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기억되지 않아도 존재는 이미 성립해 있었던 것인가. 토미는 그 질문을 이론으로 던지지 않고,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통과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한 번 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모든 것이 매번 무효화되는 세계에서, 그는 왜 포기하지 않는가. 작가는 그 이유를 희망이나 낙관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미의 지속은 투쟁에 가깝다. 기억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계를 선택하고, 상실이 예정된 사랑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며, 다음 날이면 사라질 세계를 알면서도 오늘을 살아낸다. 어쩌면 그가 붙들고 있는 것은 ‘남겨질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선택‘이 아닐까. 세계가 자신을 삭제하는 방식에 대해, 그는 매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선택으로 응답한다.

결국 ‘내가 없는 나의 세계’란, 자아가 사라진 세계가 아니라 자아가 끊임없이 증명되어야만 하는 세계이다. 타인의 기억 속에 남지 않더라도, 세계를 통과하며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존재의 형식을 만들어낸다.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계속 나아가려는 태도, 상실을 알면서도 다시 관계를 향해 마음을 내미는 자세는 축적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형성된 또 다른 형태의 기억처럼 보인다. 그것은 타인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기억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조율하며 만들어낸 흔적에 가깝다. 이 작품은 기억 바깥에서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한다. 남지 않기에 더 분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인간은 남겨지는 존재가 아닌 매번 선택하는 존재이다. 세계가 지워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살아가려는 태도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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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불안해질까 - 후회와 걱정을 내려놓고 진짜 ‘나’를 되찾는 불안 심리학
데이비드 A. 클라크 지음, 공지민 옮김 / 어웨이크(AWAKE)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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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kebooks.kr) 도서출판 어웨이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현관문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드물지 않다. 가스는 잠겼는지, 전기는 꺼졌는지, 집 안에 웅크려 있을 나의 고양이는 무사한지. 확인을 마치고서야 숨이 조금 돌아온다. 이미 나선 길 위에서 다시 되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기억의 부족이 아니라, 불안을 믿어버린 습관이다.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쫓아오며 머리 위에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감각 속에서 주저앉는다. 병원을 떠올렸다가도 이내 포기해버린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오랫동안 불안과 후회를 등에 업고 살아온 날들을 지나, 이제는 진짜 나를 마주해야 한다는 예감이 든다. 이것은 이 책에 대한 찬사이자 나의 부끄러운 불안에 대한 기록.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불안해질까]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안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망설임과 주저를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듯, 서두부터 불안을 몰아붙이지 않고 그저 자리를 내어준다. 이 책이 말하는 불안은 성격도, 결함도 아니다. 그것은 반복된 경험 속에서 학습된 사고의 결과이며, 지나치게 성실하게 위험을 감지하려는 뇌의 안쓰러운 습관이다. 저자는 불안을 ‘없애야 할 적’이 아닌 ’잘못 조율된 경보 시스템’으로 설명한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불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생각의 자동화된 경로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경로를 열두 가지로 분류하여 하나씩 서술하며, 우리가 어디서부터 스스로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준다.

열두 개의 장은 각각 다른 얼굴의 불안을 다루지만 결론은 하나로 수렴한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 불안을 피하려 들수록, 그것은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을 증명하려 든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통제보다 관찰을, 억압보다 노출을 권장한다.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 애쓰는 대신, 불안을 느낀 채로도 건강한 삶을 계속해 나가는 연습을 제안한다. 각 장의 끝에 배치된 ‘멘탈 트레이닝’은 이 제안을 읽는 자의 현실로 끌어온다. 독자의 손과 발이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이 부분은, 그저 설명에서 멈추는 다른 심리서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불안이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삶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도록 자리를 재배치한다.

이 책은 심리학의 언어를 빌렸지만, 결국 존재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상태의 자신만을 허락하며 살아왔는가. 책을 덮고 남는 것은 해답이라기보다 태도의 변화이다. 불안을 이겨냈다는 감각보다는, 불안과 함께 있어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에 가깝다. 열 두가지의 조언은 놀라울 만큼 한없이 다정하고, 그 다정함은 독자를 무력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를 불어넣는다. 앞으로의 생에서도 불안은 여전히 찾아오겠지만, 이제는 그것을 삶의 전부로 오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깨달음이 품고 오는 따뜻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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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마을 사우나
이인애 지음 / 열림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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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이인애 작가의 [탄광마을 사우나]는 사라진 산업 이후의 시간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설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하나의 체온을 가진 장소이다. 겨울이 유난히 깊고, 산업의 시간이 멈춘 뒤에도 냉기가 남아 있는 곳. 탄광이 문을 닫은 후 마을은 몰락의 서사가 아닌 잔존의 서사로 존재한다. 쇠락한 탄광의 기억은 풍경이 되어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고, 그곳의 공기는 유년의 감각을 끈질기게 불러낸다. 매캐하면서도 구수한 연탄의 냄새, 유난히 고요했던 눈 오는 밤, 제설이 말끔한 도로 위의 적막함. 설백은 과거의 장소이자, 결코 과거로만 남지 않는 기억의 방식이다. 이 소설은 공간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탄광마을 사우나는 이 세계를 관통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몸을 씻는 행위가 반복되지만, 그 몸에 쌓여 있는 삶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벗겨진 몸 위로 남아 있는 시간은 더 또렷해지고, 물과 뿌연 김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과거를 묻지 않는다. 이해는 설명을 통해 오지 않는다. 사우나는 공동체가 마지막으로 유지되는 장소이자, 기억이 자연스럽게 부유하는 장이다. 마치 비누 거품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거품 속에는 흘려보낸 말들이 붙어 있다. 이미 끝난 대화, 이미 지나간 삶의 조각들이 현재의 공간에 부유한다. 비누 거품은 곧 기록되지 않은 역사이고, 사우나는 그 역사가 잠시 떠오르는 장소이다.

이 과정에서 민지가 추적하는 것은 사실의 복원이 아닌 이해의 가능성이다. 함께 살지 않았던 시간 속의 엄마, 알지 못했던 얼굴들은 직접 호출되지 않고, 타인의 기억을 경유해 윤곽을 얻는다. 개인의 삶은 언제나 공동체의 언어를 경유해 도달하며, 진실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 작품 속에서 감정의 중심이 아니라 인식의 지연으로 그려진다. 어린 시절의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상처는 맥락 없이 각인된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도달하는 이해가 얼마나 늦고, 그래서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준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앞에서 도달한 이해는 위로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음에 대한 자각으로 남는다. 이 소설이 슬픈 이유는 화해가 늦어서가 아닌, 이해가 항상 삶의 마지막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민지가 사우나를 청소하는 행위는 노동이자 사유의 시간이다. 표면을 닦는 동안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다. 혐오했던 고향,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삶의 궤적은 모두 정리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이다. 이 소설은 고향을 낭만화하지 않고, 이해의 가능성으로만 남겨둔다. 삶은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장소도, 완전히 귀환할 수 있는 장소도 없이 그 사이에서 지속된다. 그 모호한 중간지대에 설백은 고요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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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X : 관상지주
바오수 지음, 허유영 옮김 / 서삼독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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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츠신의 공인을 품에 안고 출간된 소설. 그가 자신 있게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바오수가 썼다.‘며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본래의 삼체 시리즈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스케일과 책을 덮은 후에도 남아 있는 긴 여운까지… 마치 류츠신이 바오수에게 마인드 스탬핑을 한 것만 같은 이 완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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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편지
이머전 클락 지음, 배효진 옮김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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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수많은 인연 중에서도 혈연이 유독 어렵고 아픈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더 쉽게 잔인해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머전 클락 작가의 [낯선 편지]는 그 잔인함 속에서도 완전히 꺼지지 않는 애정의 잔불을, 그리고 각자가 지닌 고유한 절망과 방어의 모양을 더듬어 감싸 안는 이야기이다.

카라의 여정은 기억의 층위들을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가 흔히 ‘지나간 과거’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오래된 상처의 형태로 현재를 계속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느껴지는 숨 막히는 압박감, 떠난 엄마를 향한 잘못된 자책, 다락방 속 잊힌 엽서들, 진실 앞에서 계속해서 부서지고 다시 재정의되는 가족. 그 모든 것을 짊어진 채 한 걸음씩 내딛는 그녀의 걸음은 자주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야말로 인간 감정의 본래적인 진폭이다. 카라의 내면은 불안과 절망으로 얼룩지지만 그것들은 누구 하나의 잘못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뒤섞인 감정의 결과이다. 소설은 인간이 타인을 어떻게 오해하고, 어떻게 왜곡하고, 또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 복잡한 양상을 비춘다.

세대를 거쳐 이 가족이 짊어진 짐의 모양이 비로소 선명해진다. 그들은 서로를 망가뜨렸고, 동시에 서로를 지키려 했던 존재들이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남긴 상흔의 기원은 단일하지 않다. 작가는 그 중 어느 한 사람도 완전한 악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폭력은 단순히 악의의 산물이기보다, 종종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최후의 질서로 믿어버린 절망의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소설 속 부모들은 뒤틀린 방식으로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확신했고, 아이들은 그 끈적한 어둠을 자신에게 덧씌우며 제대로 된 이유조차 찾지 못한 채 성장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비난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감정이 있다. 그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움직임, 설명 불가능한 타인의 생을 끝내 받아들이려는 긴 여정이다.

과거를 파헤치는 장면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상처의 형태 자체가 아니라, 그 상처가 각자의 삶의 방향을 어떻게 비틀고 이끌어왔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들은 뒤늦게야 알아차린다. 과거의 진실이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정서적 지층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이 소설은 비극을 회상하며 그저 무너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무너짐의 구조를 이해하고 잔해 위에 새롭게 쌓아올려 다시 쓰는 재탄생의 서사이다.

결국 그들이 내리는 결론, 곧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려는 결단은 화해나 용서의 선언이라기보다, 반복된 상처의 대물림을 멈추려는 의지처럼 다가온다. 완벽함을 향한 삶이 아닌, 결점까지도 껴안으며 기어이 나아가려는 삶의 태도. 이 소설이 마지막까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곳에 있다. [낯선 편지]는 상처 입은 가족을 해부하는 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단순하고도 복잡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말해주는 책이다. 먼지 속 오래 묻혀 있던 엽서 꾸러미가 꺼내져 햇빛을 받는 순간처럼,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말하지 못한 감정의 파편들이 빛을 받으며 제 자리를 찾는 순간들이 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순간을 향해 나아가는, 느리고도 차분한 깊은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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