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여지
마보융 지음, 임주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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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해낼 수 있는 일을 묻지 않고, 견뎌야 하는 일을 내어줄 때가 있다. 아무리 성실해도, 아무리 치밀해도,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떠안게 되는 순간들. 남쪽에서 나는 여지를 양귀비의 생일에 맞춰 장안까지 운반하라는 명령이 그렇다. 그 한마디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게는 짧고 간단한 문장이지만,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삶 전체를 뒤흔드는 운명이 된다. 소설은 화려한 당나라의 풍경보다 그 명령 앞에 선 한 인간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얼굴 위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천천히 겹쳐진다.

주인공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다. 세상을 바꿀 힘도 없고, 권력에 맞설 권한도 없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뿐이다. 그래서 그는 부당함을 알면서도 달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향해 몸을 던진다. 삶은 종종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버텨내야 하는 무게의 문제가 되곤 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욕망만이 아니다. 등을 떠미는 책임은 한 사람을 생각보다 먼 곳까지 데려간다. 포기하는 편이 훨씬 쉬운 순간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삶을 떠받치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감당하기로 한 마음인 경우가 많다.

권력은 그 무게를 알지 못한다. 장안에서 내려온 명령은 여지를 원했을 뿐이지만, 그 한마디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 그리고 삶이 동원된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결과를 쉽게 말하고, 아래에 있는 사람일수록 과정을 몸으로 견딘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요구였던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되는 풍경. 그 익숙한 장면은 당나라라는 시대를 훌쩍 넘어 오늘의 세계와도 맞닿는다. 조직과 사회, 그리고 관계 속에서 힘의 방향은 여전히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 독자에게 다소 낯선 과일인 여지는 붉은 껍질 속에 맑고 투명한 과육을 품고 있지만 쉽게 상하기에 먼 곳으로 옮기기 어렵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여지는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지만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삶이 소모되는 욕망의 상징처럼 읽힌다.

그렇다면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말단 관리의 여정을 따라가며 오래 생각하는 것은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부조리한 구조 안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삶은 때때로 타협을 요구한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을 견뎌야 하고,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얻는 동시에 무언가를 잃는다. 그래서 생존은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은 생계를 위해, 어떤 사람은 자존심을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루를 견딘다. 인간의 품위는 모든 것을 지켜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단 하나를 통해 드러난다. 삶이 우리를 시험하는 방식은 종종 가혹하지만, 무엇을 잃을 수 없다고 여기는지는 결국 그 사람의 존재를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사람의 삶에는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씩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 깊은 곳에 오래 품고 가는 바람이 있고,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가치가 있다. 그 무게를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일 것이다. 장안으로 향하던 길은 먼 옛날의 길이지만, 그 길 위에서 마주한 고민만큼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을 걷고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지는 더 이상 낯선 과일로 남아 있지 않는다. 누구에게는 가족이 되고, 누구에게는 자존심이 되며, 누구에게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이유가 된다.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그 여지 하나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의 오천 리 길을 걸어간다.

붉은 껍질 안에 맑고 투명한 과육을 품은 여지. 향은 짙고 달콤하지만 쉽게 상해 먼 길을 견디지 못하는 과일이다. 『장안의 여지』는 그 연약한 과일 하나에서 출발해 놀라울 만큼 거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중국 현지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탄탄한 서사와 강한 흡인력을 갖춘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진짜 힘은 긴박한 사건보다 그 길을 통과하는 인간의 얼굴에 있다. 책임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던 순간을 지나온 사람, 세상이 늘 공정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몫을 감당해온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무엇보다 성공보다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더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깊이 읽게 될 것이다. 여지를 장안으로 옮기는 길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각자의 어깨에 짊어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걷는 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도서출판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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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네후네 하야세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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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공포를 느끼는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존재, 설명할 수 없는 현상, 현실 바깥의 기이한 무언가. 그러나 인간을 진정으로 두렵게 만드는 것은 위험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가 더 이상 이해되지 않을 때, 공포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입주 조건』은 그 순간을 포착한 소설이다. 이 작품의 무대는 낯선 폐허도, 살육의 현장도 아니다. 복도와 엘리베이터, 욕실과 우편함처럼 너무도 익숙한 공간들이다. 그래서 섬뜩하다. 평범헀던 풍경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할 때, 독자는 자신이 딛고 있던 현실마저 낯설게 느끼게 된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는다. 수많은 가정을 덧씌운 채 살아간다. 문을 열면 닫히고, 복도는 늘 같은 자리에 있으며, 오늘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 부르지만, 실은 세계에 대한 신뢰에 가깝다. 공포는 그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태어난다.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고, 익숙했던 것들이 설명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한 이해 위에 서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작품 속 기이한 현상들은 괴이해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현실의 규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에 공포스럽다.

많은 공포소설이 두려움의 대상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한다면, 이 작품은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의 상태를 응시한다. 무엇이 나타났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이 불안한가 하는 문제다. 인간은 세상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반대로 예측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불안을 경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포는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인식의 한계와 맞닿아 있는 감정이다. 알 수 없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괴이들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이 세워 온 질서의 바깥을 가리키는 표지와도 같다. 우리는 삶을 견디기 위해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규칙을 만들고,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한다. 그 질서 덕분에 세상은 이해 가능한 공간이 된다. 하지만 『입주 조건』은 그 질서가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익숙함은 결코 영원한 상태가 아니며, 상식 또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작품 속 공포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발생한다. 세계는 언제나 설명할 수 있는 범위보다 넓고, 인간은 그 넓이를 완전히 헤아릴 수 없는 존재다.

가장 낯선 것은 언제나 가장 먼 곳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오래 바라본 풍경 속에 숨어 있다. 매일 지나던 복도가 어느 날 낯설어지고, 익숙한 침묵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세계를 완전히 이해한 적 없었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그래서 『입주 조건』의 공포는 무엇인가가 튀어나오는 순간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감각이 무너지는 순간에 완성된다. 공포는 현실 바깥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익숙한 것들이 낯선 얼굴을 드러낼 때 비로소 시작되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늘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공포란 무엇일까. 위험한 존재를 마주하는 일일까, 아니면 안전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낯설어지는 순간일까. 『입주 조건』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기묘한 대답처럼 읽힌다. 복도와 엘리베이터, 욕실과 우편함처럼 너무도 평범한 풍경 속에서 서서히 스며 나오는 불안은 독자를 낯선 세계가 아닌 익숙한 세계의 그림자 앞으로 데려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를 찾는 이보다 공포라는 감정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더욱 어울린다. 설명할 수 없는 기척이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일본식 호러를 사랑하는 독자, 익숙함이 낯섦으로 뒤집히는 순간에 묘한 전율을 느끼는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심히 지나치던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한 번쯤 돌아보라. 가장 낯선 것은 언제나 가장 먼 곳에 있지 않다. 오래 바라본 풍경 속에 숨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곁에도.

✏️도서출판 리드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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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앰비션 - 이기적 야망의 종말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이정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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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오랫동안 야망을 찬양해왔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의지, 더 많은 것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은 성장의 원동력으로 여겨졌고, 성공은 곧 그 야망이 증명된 결과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치열한 경쟁의 끝에서 우리는 종종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를 마주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는데도 어딘가 허전하고, 충분히 애썼는데도 무엇인가 빠져 있는 듯한 감각. 문제는 야망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의미 있게 쓰이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묻는 책, 『모럴 앰비션』.

브레흐만은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전작 『휴먼 카인드』에서 인간에 대한 냉소를 걷어냈다면, 이번에는 그 믿음을 현실 속 행동으로 이어간다. 선함은 마음속에 품고만 있는 감정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작동하는 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안타까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는 선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 마음이 실제 삶의 방향이 되고 선택의 기준이 될 때 비로소 선함은 현실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된다. 책 속에는 세상을 바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들의 특별함은 영웅적인 재능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삶을 기꺼이 사용했다는 데 있다.

이 책이 건네는 가장 묵직한 화두는 성공이 아닌 삶의 용도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만, 의미는 때때로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이다. 반면 용도는 훨씬 구체적이다. 하루의 시간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가진 능력은 무엇을 위해 쓰이고 있는지, 반복되는 노동과 노력은 어떤 결과를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삶은 무엇을 소유했는가보다 무엇에 쓰였는가로 기억된다.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어디에 기울이는가를 통해 삶의 방향을 증명한다. 삶은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사용되는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저마다의 형태를 갖추어간다. 누군가는 자신의 재능을 더 많은 이익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데 사용한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삶의 방향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희생이나 헌신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야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다만 그 야망이 자기 자신만을 향해 있지 않기를 바란다. 더 큰 집이나 더 높은 연봉을 꿈꾸는 대신,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꿈꾸는 것. 더 넓은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그것을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때보다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깊은 충만함을 경험한다. 자신의 노력이 타인의 삶에 보탬이 되는 순간, 야망은 경쟁의 언어를 넘어 책임의 언어가 된다. 브레흐만은 선함과 야망을 서로 반대편에 놓지 않는다. 선한 사람은 욕망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더 넓은 세계와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거대한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한 사람의 삶으로 돌아오는 책. 지금 하고 있는 일, 쏟고 있는 시간, 품고 있는 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있으며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그런 물음은 특정한 직업이나 나이의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도 결국 모두가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문제다. 누구도 완전히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한 사람의 선택은 생각보다 멀리 흘러가 다른 사람의 삶에 닿고, 그렇게 이어진 영향은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삶은 결국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무엇을 남겼는지로 기억되는 법이니까.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가끔은 지금의 방향이 맞는지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손에 쥔 것은 많아졌는데 이상하리만치 비어 있는 마음을 발견하는 날도 있다. 『모럴 앰비션』은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어디에 기울여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 인간의 선함을 믿고 싶으면서도 현실의 냉소 앞에서 머뭇거린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성공의 기술을 말하는 대신 삶의 방향을 이야기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자신을 사용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 사람의 생애는 결국 자신이 사랑한 것들과 책임졌던 것들의 총합이기에. 오래도록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욱 깊이 읽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인플루엔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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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여행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50
로런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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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가. 보지 못했던 풍경을 만나고, 알지 못했던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로런스 스턴의 『감성 여행』은 애초부터 그런 기대를 비껴간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프랑스의 거리도, 도시의 풍경도 아니다. 여행자의 시선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요동치는 마음이다. 하인의 말 한마디에 충동적으로 길을 나선 요릭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대신,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우스꽝스러운지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여행의 목적지는 외부가 아닌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던 셈이다.

요릭은 선량한 사람이다. 타인의 슬픔에 마음 아파하고, 자신의 냉정함을 후회하며, 낯선 이의 처지에 쉽게 공감한다. 하지만 동시에 허영스럽고 충동적이며, 사소한 감정에 흔들린다. 누군가를 걱정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를 의식하고,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에 스스로 취하기도 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런 모습을 위선으로 규정하거나 도덕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턴은 인간을 심판대 위에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 안에 선의와 욕망, 품위와 우스꽝스러움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바라본다. 우리는 하나의 성격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서로 다른 마음들이 잠시 한 몸을 빌려 살아간다. 선함과 허영이 한 사람 안에서 나란히 숨 쉬는 풍경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초상에 가깝다.

사람의 마음에는 늘 관객이 한 명쯤 살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순수하지 않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면서도 그 다정한 모습의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물에 감동한다. 그렇다고 그 감정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진심과 자기애는 종종 같은 뿌리에서 자라는 까닭이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는 언제나 자신을 향한 시선 또한 함께 머문다. 타인을 위하는 순간에도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작품은 감정의 순도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모순된 존재임을 담담히 그려낸다. 그래서 요릭의 모습은 익숙하다. 누구나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사소한 허영과 선의를, 그는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내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요릭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수도승과 스쳐 지나가고, 낯선 여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슬픔에 잠긴 이들을 바라본다. 그 만남들은 대단한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의 얼굴 하나, 표정 하나, 말 한마디가 마음속에서 예상치 못한 파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풍경보다 감정을 기록하고, 지식보다 마음의 움직임에 주목했던 스턴의 시선은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일 역시 결국 자신의 감정을 통과해 이루어진다. 상대의 아픔에 공명할 때조차 사람은 그 감정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도중에 멈춰 버렸지만, 그 미완성은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닮아 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여러 방향으로 흔들리고, 스스로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순간으로 흘러간다. 완벽하게 선한 사람도, 완벽하게 진실한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다.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곁에 머무르고, 자신의 감정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심을 건넨다. 『감성 여행』이 보여주는 인간상 역시 그러하다. 어설프고 모순적이며 때로는 우스꽝스럽지만, 바로 그렇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마음은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곳에서 자라고, 다정함과 허영이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을 선과 악, 진심과 거짓으로 깔끔하게 나누는 일이 늘 어렵게 느껴졌다면 이 책이 유난히 반가울 것이다.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을 오래 바라보는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 낯선 도시보다 그곳에서 흔들리는 감정에 더 관심이 많은 이들, 그리고 자기 안에 공존하는 여러 마음들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권한다. 『감성 여행』은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드문 고전이다. 미완으로 남았으나 조금도 덜 완성된 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끝맺음보다 흔들림에 가까운 것이어서.

✏️도서출판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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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 - 돌봄과 상실 너머, 다시 시작된 사랑의 모험
천희란 지음 / 김영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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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닥쳐올 슬픔을 알면서도 기꺼이 품에 안는 것. 어쩌면 사랑이란 그런 모순 위에 세워진 감정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이 예정된 관계들이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일이 그렇다. 끝내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손을 내미는 것.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선택. 아직 이별은 오지 않았는데도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는 이유는 사랑이 현재의 기쁨과 미래의 슬픔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플 때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쩌나, 혼자 있는 시간에 외로워하면 어쩌나,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홀로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 뒤로 마음은 자꾸만 먼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아직 건강한데도 마지막을 상상하고, 아직 따뜻한데도 언젠가 식어버릴 체온을 떠올린다. 사랑은 흔히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말하지만 실은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될수록 세상에는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두려움도 함께 자라난다. 사랑은 인간을 단단하게 만들지 않고 기꺼이 약해지게 만든다.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은 상처 입지 않을 권리를 조금씩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삶을 안전하게 만드는 대신 더욱 민감하게 만들고, 타인의 아픔에 오래 귀 기울이는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 사랑이 남기는 가장 큰 변화는 행복이라기보다 이전보다 더 쉽게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이다.

작가는 세 마리의 노령묘를 돌보며 사랑만을 배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돌봄과 기다림, 그리고 다가오는 이별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배워간다.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대신 아파줄 수는 없고, 아무리 간절해도 시간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곁에 머무르는 것뿐이다. 사실 돌봄이란 상대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아니라 끝까지 떠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병을 낫게 하지 못해도, 죽음을 막지 못해도, 그 곁을 지키겠다는 다짐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 무력함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닌 태도가 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은 언어로.

우리 집에도 고양이가 있다. 삼각김밥 혹은 작은 항아리를 닮은 둥글세모난 몸, 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꼬리, 건방지게 발등을 밟고 올라서는 작은 발바닥. 별것 아닌 순간들이 사실은 어찌나 거대한 행복인지. 사랑은 대단한 사건 속에 있지 않다.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는 모습, 햇볕 아래 길게 늘어난 몸, 아무 이유 없이 곁으로 다가와 이마를 부딪치는 행동 같은 것들 속에 숨어 있다. 언젠가 이 장면들이 추억이 될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이 눈부시게 소중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은 현재의 아름다움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만든다.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들은 쉽게 지나쳐 버리지만, 유한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모든 풍경은 갑자기 귀해진다. 언젠가 잃게 될 평범한 하루를 알아보는 능력이 곧 행복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의 골골송과 오늘의 체온은 내일의 기억이 되기 전에 더욱 사랑받아야 한다.

이 책은 떠난 고양이들에 대한 애도록인 동시에 아직 곁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글은 먼 미래 언젠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고 울고 있을 나에게 미리 건네는 위로. 그날이 오면 분명 많이 슬플 것이다. 하지만 슬픔이 클수록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사랑은 언젠가 울게 될 것을 알면서도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다. 그래서 오늘도 작은 생명의 체온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 다가올 상실보다 지금 이 순간의 온기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사랑은 늘 그렇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에서 고양이가 남긴 것은 빈자리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사랑하는 법,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아끼는 법, 돌볼수록 더욱 연약해지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법 역시 함께 남겨두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언젠가의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망설여본 사람에게, 누군가를 돌보며 자신의 무력함을 배워본 사람에게, 그리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오늘의 행복을 자꾸만 미뤄두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언젠가 잃게 될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라. 당신을 향해 반짝이는 두 눈을 오래 마주하라. 보드라운 뒤통수를 한 번 더 쓰다듬어라.

✏️도서출판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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