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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 - 돌봄과 상실 너머, 다시 시작된 사랑의 모험
천희란 지음 / 김영사 / 2026년 5월
평점 :
언젠가 닥쳐올 슬픔을 알면서도 기꺼이 품에 안는 것. 어쩌면 사랑이란 그런 모순 위에 세워진 감정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이 예정된 관계들이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일이 그렇다. 끝내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손을 내미는 것.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선택. 아직 이별은 오지 않았는데도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는 이유는 사랑이 현재의 기쁨과 미래의 슬픔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플 때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쩌나, 혼자 있는 시간에 외로워하면 어쩌나,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홀로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 뒤로 마음은 자꾸만 먼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아직 건강한데도 마지막을 상상하고, 아직 따뜻한데도 언젠가 식어버릴 체온을 떠올린다. 사랑은 흔히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말하지만 실은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될수록 세상에는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두려움도 함께 자라난다. 사랑은 인간을 단단하게 만들지 않고 기꺼이 약해지게 만든다.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은 상처 입지 않을 권리를 조금씩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삶을 안전하게 만드는 대신 더욱 민감하게 만들고, 타인의 아픔에 오래 귀 기울이는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 사랑이 남기는 가장 큰 변화는 행복이라기보다 이전보다 더 쉽게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이다.
작가는 세 마리의 노령묘를 돌보며 사랑만을 배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돌봄과 기다림, 그리고 다가오는 이별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배워간다.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대신 아파줄 수는 없고, 아무리 간절해도 시간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곁에 머무르는 것뿐이다. 사실 돌봄이란 상대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아니라 끝까지 떠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병을 낫게 하지 못해도, 죽음을 막지 못해도, 그 곁을 지키겠다는 다짐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 무력함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닌 태도가 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은 언어로.
우리 집에도 고양이가 있다. 삼각김밥 혹은 작은 항아리를 닮은 둥글세모난 몸, 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꼬리, 건방지게 발등을 밟고 올라서는 작은 발바닥. 별것 아닌 순간들이 사실은 어찌나 거대한 행복인지. 사랑은 대단한 사건 속에 있지 않다.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는 모습, 햇볕 아래 길게 늘어난 몸, 아무 이유 없이 곁으로 다가와 이마를 부딪치는 행동 같은 것들 속에 숨어 있다. 언젠가 이 장면들이 추억이 될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이 눈부시게 소중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은 현재의 아름다움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만든다.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들은 쉽게 지나쳐 버리지만, 유한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모든 풍경은 갑자기 귀해진다. 언젠가 잃게 될 평범한 하루를 알아보는 능력이 곧 행복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의 골골송과 오늘의 체온은 내일의 기억이 되기 전에 더욱 사랑받아야 한다.
이 책은 떠난 고양이들에 대한 애도록인 동시에 아직 곁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글은 먼 미래 언젠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고 울고 있을 나에게 미리 건네는 위로. 그날이 오면 분명 많이 슬플 것이다. 하지만 슬픔이 클수록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사랑은 언젠가 울게 될 것을 알면서도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다. 그래서 오늘도 작은 생명의 체온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 다가올 상실보다 지금 이 순간의 온기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사랑은 늘 그렇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에서 고양이가 남긴 것은 빈자리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사랑하는 법,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아끼는 법, 돌볼수록 더욱 연약해지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법 역시 함께 남겨두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언젠가의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망설여본 사람에게, 누군가를 돌보며 자신의 무력함을 배워본 사람에게, 그리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오늘의 행복을 자꾸만 미뤄두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언젠가 잃게 될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라. 당신을 향해 반짝이는 두 눈을 오래 마주하라. 보드라운 뒤통수를 한 번 더 쓰다듬어라.
✏️도서출판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