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
이희영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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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악의보다 선의를 더 쉽게 믿는다.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경계하면서도, 사랑해서 내린 선택은 끝내 옳았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진심을 감추고, 누군가는 거리를 두며, 누군가는 침묵을 택한다.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어렵게 지켜낸 가족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조금씩 자신을 접어 넣는다. 선한 의도는 그렇게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그러나 삶은 의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선의는 때로 가장 늦게 터지는 폭탄이 되어,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비극을 남긴다.

작품에는 분명한 악인이 없다. 누구 하나 타인을 파괴하려고 사랑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불행을 바라며 선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든 선택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부모의 행복을 지키려는 마음, 가족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으려는 마음. 문제는 사랑이 아닌, 사랑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사랑은 본래 선과 악으로 재단할 수 없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한 사람의 삶뿐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도 바꾸어 놓는다. 진심을 억누르는 일이 희생이라 믿었던 순간, 진실은 말할 곳을 잃고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형태를 바꾸기 시작한다. 감추어진 감정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외면당한 진심은 더 깊은 침묵을 배우고, 이름 붙이지 못한 진실은 삶의 다른 얼굴이 되어 돌아온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 출구를 잃는다. 길을 잃은 내면은 결국 가장 소중한 관계를 향해 되돌아온다.

『낙하』가 보여주는 추락은 사랑이 만들어 낸 비극이 아니다. 어쩌면 사랑을 보호하려던 선택들이 서로를 밀어낸 결과가 아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다정했던 선택들이 가장 잔인한 결과를 만든다. 상처를 막으려던 침묵은 더 깊은 상처를 남기고, 관계를 지키려던 거짓은 관계를 무너뜨린다. 선의를 품었다는 사실만으로 선택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의도는 생각 속에서 완성되지만, 책임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아무리 선한 선택이라도 그 결과만큼은 혼자 품을 수 없다. 삶은 언제나 선택이 남긴 결과를 함께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사랑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방식이다. 낙하는 어느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다. 추락은 발을 헛디디는 순간보다 더 오래전에 시작된다. 매번 자신보다 타인을 앞세웠던 선택들이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질 때, 삶은 이미 아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선의를 믿었던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 낸 시간의 궤적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랑보다 인간을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인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다. 하지만 그 희생이 언제나 타인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사랑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향해 내린 선택들이 쌓이며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래서 한 사람의 침묵은 결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몫으로만 남지 않는다. 누군가를 위한 결심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또 다른 삶을 흔들기도 한다. 악은 특별한 괴물에게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평범한 선택 속에서도 악은 충분히 자라날 수 있다. 『낙하』는 그 말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비춘다. 비극 또한 악의가 아니라 평범한 선의 속에서 자랄 수 있다고. 선의를 의심하지 못하는 관계일수록 그 비극은 더욱 늦게 발견된다. 모두가 옳다고 믿었던 선택은 누구도 쉽게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보다, 옳다고 믿으며 끝까지 놓지 못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감정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끝내 서로를 구하지 못한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지키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남는 것은 비극이 아니라, 선의에도 책임이 있다는 씁쓸한 진실이다.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진실을 감당할 용기까지 사랑의 몫이 된다. 서로를 위해 흘린 침묵들이 결국 모두를 추락시켰다. 인간은 사랑 때문에 망가지지 않는다. 가장 선한 마음을 의심하지 못할 때, 비로소 가장 깊은 추락이 시작된다.

사랑은 언제나 누군가를 구원하는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때로는 서로를 지키려던 다정함이 가장 깊은 상처를 만들고, 선한 의도가 가장 오래 남는 슬픔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랑의 결말보다 사랑을 지키는 방식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 깊게 스며들 것이다. 선의가 왜 비극이 되는지 오래 생각해 본 사람, 인간의 심리와 관계의 아이러니를 들여다보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사랑을 한순간의 감정이 아닌 삶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읽고 싶다면,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고요한 추락을 오래 따라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 흔들리는 것은 악의를 품었던 순간보다, 옳다고 믿었던 선택들이 빚어낸 시간들이다. 우리는 낙하를 한순간의 사건으로 기억하지만, 삶은 언제나 천천히 기울어진다. 『낙하』는 그 기울어짐의 시간을 끝까지 응시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도서출판 밀리의서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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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매 106동 101호
천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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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지만, 인간의 가장 깊은 불안을 숨겨두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익숙한 공간에서 시작되는 공포는 낯선 폐허보다 오래 마음에 머문다. 『급매 106동 101호』 역시 집에 얽힌 미스터리를 내세우지만,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귀신보다 인간의 마음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조건을 갖춘 집, 그 안에서 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 그리고 수상한 전 주인의 인사는 공간보다 먼저 사람의 인식을 흔든다. 공포는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 속에 스며든다.

같은 집, 같은 일상이었지만 믿음이 달라지는 순간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작품은 이를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두 개의 세계에 발을 딛고 산다. 하나는 현실에, 하나는 믿고 싶은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에.”(227쪽)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받아들인 믿음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며, 그 믿음은 눈앞의 풍경을 전혀 다른 의미로 다시 그려낸다. 어떤 이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불길한 징조가 되고, 같은 공간도 안식이 되거나 두려움의 장소가 된다. 현실은 하나일지라도 그것을 경험하는 세계는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객관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내면이 구성한 세계를 함께 품고 살아간다. 믿음은 흩어진 현실을 하나의 질서로 엮어내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사실보다 앞서는 것은 해석이다. 어떤 믿음은 현실을 바라보는 렌즈가 되고, 그 렌즈는 평범한 사건마저 필연처럼 바꾸어 놓는다. 인간에게 해석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해석은 이후의 경험을 이끌고, 기억을 배열하며, 결국 삶의 방향까지 바꾸는 힘이 된다. 하나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순간, 이후의 모든 장면은 그 의미를 증명하는 근거처럼 쌓여간다. 한 번 굳어진 해석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이미 가진 믿음을 지키려 한다. 우리는 현실을 바꾸기보다 자신이 이해한 세계에 현실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공포는 해석이 현실을 잠식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누군가가 흘린 말은 흥미를 느끼는 사람을 만나고, 다시 다른 입으로 옮겨지며 점점 더 단단한 현실이 된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이야기를 쉽게 믿고, 확인보다 해석을 먼저 선택한다. 이야기는 사실보다 빠르게 퍼지고, 사실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인간은 정보를 기억하기보다 이야기를 기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번 의미를 얻은 서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자라난다. 그래서 소문은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믿음이다. 말은 입을 떠나는 순간 개인의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그 말에 저마다의 해석을 덧입히며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간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귀신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덧붙이고 그것을 진실처럼 소비하는 인간 자신인지도 모른다.

삶은 언제나 현실 위에서 흘러가지만, 마음은 믿음 위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사실보다 자신이 믿기로 한 세계에 더 쉽게 흔들린다.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믿음에 삶을 걸고, 누군가는 소문이라는 믿음에 일상을 내어준다. 그 믿음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지우고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 삶을 견디게 하는 힘도 믿음에서 태어나지만, 삶을 무너뜨리는 힘 역시 같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눈앞의 현실보다 스스로 진실이라 받아들인 믿음이다. 믿음은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안식처이자 가장 깊은 미로다. 삶은 그 믿음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같은 자리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공포는 어둠보다 믿음에서 먼저 자라난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을 뿐인데 현실은 어느새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서 있다. 평범한 일상을 뒤흔드는 것은 때로 스스로 진실이라 받아들인 하나의 믿음이다. 귀신보다 인간의 심리를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보다 해석이 삶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소문이 어떻게 공동체의 현실이 되는지 궁금했던 독자라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쉽게 시선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익숙한 집 한 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라는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 앞에 독자를 세운다. 지금 당신은 어떤 믿음으로 소문을 키우고, 또 어떤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도서출판 쌤앤파커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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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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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존재의 한 부분이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 그래서 남겨진 사람은 자꾸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금만 더 붙잡았더라면, 조금만 더 곁에 있었더라면,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마음이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흐린다. 죽은 이를 다시 불러낸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서사 속에 존재해왔지만, 이 작품은 그 기적을 결코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언니를 잃은 동생이 금기를 깨고 죽음을 거슬러 손을 내미는 순간, 사랑은 축복이 아닌, 아주 서늘한 형태의 욕망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 장면은 상실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도 무거운지를 드러낸다.

사랑은 흔히 상대를 위한 감정이라 믿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삶으로 데려오는 일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떠난 이를 위한 자비였을까, 아니면 남겨진 사람이 자신의 슬픔을 견디기 위해 붙잡은 마지막 희망이었을까. 사랑은 누군가를 내 곁에 머물게 하는 힘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그 사람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는 태도 위에서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 경계를 잃는 순간 애정은 상대를 향한 마음보다 상실을 견디려는 의지에 조금씩 잠식된다. 돌아온 언니 ‘미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존재에게 다시 삶을 강요하는 일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또 하나의 운명을 씌우는 일이 된다. 가장 순수해 보였던 사랑은 그렇게 타인의 선택마저 자신의 바람 속에 덮어버린다. 사랑이 언제나 선하다고 믿어온 마음은 이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게 된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도 상대의 삶과 죽음을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 존재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내 삶의 일부가 되기 이전에, 독립된 하나의 세계임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잃는 일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그 고통이 상대를 다시 불러낼 권리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두려운 까닭은 귀신이나 복수 때문이 아니다.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타인의 삶을 침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의와 애정도 때로는 상대를 향한 배려보다 자신의 상실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차가운 강물처럼 천천히 마음을 적신다. 상대를 향한 마음이 깊을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붙잡을 힘이라기보다, 그의 삶이 나의 의지 밖에서도 존엄할 수 있음을 믿는 일이다.

‘미래’의 복수는 단순히 죽은 자의 분노로 읽히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 감당해야 했던 희생과 침묵,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삶,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세상으로 불려온 운명이 겹쳐질수록 그녀의 분노는 더욱 깊어진다. 살아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했고, 죽어서도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 인간의 존엄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존재는 온전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작품 속 비극은 복수보다 먼저 인간의 존엄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바란다는 일에는, 그의 선택 앞에서도 물러설 줄 아는 마음이 함께 따라야 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행복만이 아니라 그의 선택까지 존중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이 자매의 슬픈 운명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어떤 사랑은 손을 놓는 용기 안에서 비로소 온전해진다. 떠나는 이를 붙잡지 않는다는 것은 잊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삶과 죽음을 끝내 그의 것으로 돌려주는 일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남겨진 몫은 죽음을 되돌리는 기적이 아니라, 상실을 품은 채 자신의 시간을 다시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는 복수의 잔혹함보다 사랑의 무게가 얼마나 쉽게 타인의 자유를 압도할 수 있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그 시선 끝에서 사랑은 소유가 아닌 존중이며, 붙잡음이 아닌 놓아줌을 통해 서로의 삶을 지켜주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강물은 흘러가는 것을 붙잡지 않는다. 다만 품었다가, 제때가 되면 다시 세상으로 흘려보낼 뿐이다. 이 작품 역시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를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상실 이후에도 사랑의 의미를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사람, 사랑과 소유의 경계를 천천히 헤아려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욱 깊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화홍련전>의 현대적 변주가 궁금한 독자, 피보다 감정의 깊이가 더 서늘한 호러를 기다려온 독자에게도 기꺼이 권한다. 강을 건너 흙에서 다시 올라온 것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져 있던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이었다. 그리고 오래된 설화 역시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시선을 거치며,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현대의 비극으로 새롭게 살아난다.

✏️도서출판 휴머니스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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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머신 - AI는 우리가 위로받고 연결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제임스 멀둔 지음, 송이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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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응답해주는 존재를 우리는 왜 원하게 되는 걸까요? 그리고 그런 관계는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Al 동반자와의 관계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 질문들은 놀라울 만큼 절실하게 다가오네요. 이 책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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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아버지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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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인간이라는 종을 당연함의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을 뒤집어 보여주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전제들을 흔들어 놓는다. 『아버지들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한 고생물학자의 죽음으로 시작되지만, 그 죽음이 가리키는 방향은 범인을 찾는 일이 아니다.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가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베르베르는 가장 오래된 질문을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되살려낸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인류의 첫 조상을 찾기 위해 과거를 파고든다. 하지만 과거를 향해 걷는 그들의 발걸음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인간은 늘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정작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싶을 때는 뒤를 돌아보게 된다. 강물이 자신의 근원을 잊지 않듯, 인간 역시 자신이 흘러나온 곳을 이해할 때 비로소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다른 생명체들도 흔적을 남기지만, 자신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의미를 찾으려 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지나온 시간을 해석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는 것.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여정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학문적 탐구에 머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노력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진화의 정점이라 믿어 왔다. 자연을 해석하고, 문명을 건설하고, 우주를 탐사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베르베르는 그 확신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수백만 년 전 평원 위를 떠돌던 원시 인류와 오늘날의 인간 사이에는 놀라울 만큼 많은 공통점이 남아 있다. 두려움을 피하고, 생존을 갈망하며, 자신보다 거대한 세계를 이해하려 애쓴다는 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다. 인류는 세계를 이해할수록 그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설명하는 능력은 자연을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별함에 대한 확신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겸손이다.

작가 인터뷰에서 베르베르는 최초의 인간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맹수의 위협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들에게 세상은 공포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조금씩 두려움을 극복해 왔다. 불을, 도구를,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앞의 위험만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까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삶, 더 안전한 내일, 더 넓은 가능성에 대한 상상. 생존만으로 하루를 채워야 하는 존재에게 사유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이 별과 신화, 미래와 희망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견딜 만큼의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힘의 역사보다 상상력의 역사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태초를 향한 탐색인 동시에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류의 첫 조상을 찾는 여정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일이며, 더 나아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일이 된다. 과거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된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 위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먼 곳으로 향하기는 어렵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살인 사건과 음모, 추리와 반전 속에 철학적 통찰을 숨겨 놓는다. 인간이라는 종을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소설. 그리고 그 의심 끝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소설.

먼 곳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일수록 가끔은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게 된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그런 시선을 과거의 가장 깊은 곳까지 데려가는 소설이다. 인간은 왜 인간이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 인류의 역사와 진화의 비밀에 매혹되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인간만이 특별하다는 믿음을 잠시 내려놓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잘 어울린다. 추리 소설의 속도감 속에서 묵직한 철학적 사유를 함께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권한다. 태초를 향한 탐색은 결국 현재를 이해하는 일이 되고, 인간의 기원을 좇던 발걸음은 어느새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오래된 과거를 향한 여정 속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방향을 가늠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도서출판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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