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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평점 :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존재의 한 부분이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 그래서 남겨진 사람은 자꾸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금만 더 붙잡았더라면, 조금만 더 곁에 있었더라면,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마음이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흐린다. 죽은 이를 다시 불러낸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서사 속에 존재해왔지만, 이 작품은 그 기적을 결코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언니를 잃은 동생이 금기를 깨고 죽음을 거슬러 손을 내미는 순간, 사랑은 축복이 아닌, 아주 서늘한 형태의 욕망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 장면은 상실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도 무거운지를 드러낸다.
사랑은 흔히 상대를 위한 감정이라 믿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삶으로 데려오는 일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떠난 이를 위한 자비였을까, 아니면 남겨진 사람이 자신의 슬픔을 견디기 위해 붙잡은 마지막 희망이었을까. 사랑은 누군가를 내 곁에 머물게 하는 힘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그 사람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는 태도 위에서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 경계를 잃는 순간 애정은 상대를 향한 마음보다 상실을 견디려는 의지에 조금씩 잠식된다. 돌아온 언니 ‘미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존재에게 다시 삶을 강요하는 일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또 하나의 운명을 씌우는 일이 된다. 가장 순수해 보였던 사랑은 그렇게 타인의 선택마저 자신의 바람 속에 덮어버린다. 사랑이 언제나 선하다고 믿어온 마음은 이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게 된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도 상대의 삶과 죽음을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 존재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내 삶의 일부가 되기 이전에, 독립된 하나의 세계임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잃는 일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그 고통이 상대를 다시 불러낼 권리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두려운 까닭은 귀신이나 복수 때문이 아니다.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타인의 삶을 침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의와 애정도 때로는 상대를 향한 배려보다 자신의 상실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차가운 강물처럼 천천히 마음을 적신다. 상대를 향한 마음이 깊을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붙잡을 힘이라기보다, 그의 삶이 나의 의지 밖에서도 존엄할 수 있음을 믿는 일이다.
‘미래’의 복수는 단순히 죽은 자의 분노로 읽히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 감당해야 했던 희생과 침묵,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삶,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세상으로 불려온 운명이 겹쳐질수록 그녀의 분노는 더욱 깊어진다. 살아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했고, 죽어서도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 인간의 존엄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존재는 온전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작품 속 비극은 복수보다 먼저 인간의 존엄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바란다는 일에는, 그의 선택 앞에서도 물러설 줄 아는 마음이 함께 따라야 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행복만이 아니라 그의 선택까지 존중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이 자매의 슬픈 운명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어떤 사랑은 손을 놓는 용기 안에서 비로소 온전해진다. 떠나는 이를 붙잡지 않는다는 것은 잊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삶과 죽음을 끝내 그의 것으로 돌려주는 일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남겨진 몫은 죽음을 되돌리는 기적이 아니라, 상실을 품은 채 자신의 시간을 다시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는 복수의 잔혹함보다 사랑의 무게가 얼마나 쉽게 타인의 자유를 압도할 수 있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그 시선 끝에서 사랑은 소유가 아닌 존중이며, 붙잡음이 아닌 놓아줌을 통해 서로의 삶을 지켜주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강물은 흘러가는 것을 붙잡지 않는다. 다만 품었다가, 제때가 되면 다시 세상으로 흘려보낼 뿐이다. 이 작품 역시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를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상실 이후에도 사랑의 의미를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사람, 사랑과 소유의 경계를 천천히 헤아려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욱 깊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화홍련전>의 현대적 변주가 궁금한 독자, 피보다 감정의 깊이가 더 서늘한 호러를 기다려온 독자에게도 기꺼이 권한다. 강을 건너 흙에서 다시 올라온 것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져 있던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이었다. 그리고 오래된 설화 역시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시선을 거치며,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현대의 비극으로 새롭게 살아난다.
✏️도서출판 휴머니스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