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흐르는 언덕
모리스 바레스 지음, 박용주.홍순도 옮김 / 등(도서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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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 숨 쉬는 곳이 있다. 모리스 바레스는 그 한 문장으로 한 권의 소설을 시작하지만, 계속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언덕의 신비가 아니라 그곳에 선 인간의 마음이다. 프랑스 로렌 지방의 실제 성지였던 시옹 언덕은 누군가에게는 믿음의 공간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희망의 장소였다. 장소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때로 인간의 내면을 빚어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 언덕 위에서 피어난 신앙은 사람들을 모았고 공동체를 되살렸으며, 오래 잊혀 있던 성지에는 다시 생명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가장 높이 들어 올리는 힘은, 때로 가장 깊은 추락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무너진 성당을 복원하고, 흩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려 했던 바이야르 형제의 열망은 분명 선의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선의는 언제나 옳음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믿음은 신을 향한 시선에서 자신의 확신을 향한 시선으로 방향을 바꾼다. 자신의 생각이 곧 신의 뜻이라고 믿게 되는 순간, 믿음은 자신을 낮추는 행위에서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일로 변한다. 믿음은 본래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자신을 맡기는 행위다. 그러나 그 믿음이 스스로의 해석과 구분되지 않는 순간, 인간은 진리를 따르는 자가 아니라 진리를 ‘소유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된다. 신을 향하던 시선이 어느새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신앙은 원래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길이어야 하지만, 그 겸손을 잃은 믿음은 가장 단단한 오만으로 자라난다.

누구보다 순수했던 열정도 스스로를 의심하는 능력을 잃는 순간 얼마든지 광신으로 변할 수 있다. 인간은 진실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옳다는 감각에는 더욱 쉽게 마음을 내어준다. 그 확신은 처음에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지만, 점차 다른 목소리를 밀어내고 비판을 거부하며 세상을 하나의 정답으로만 바라보게 만든다.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귀가 닫혀서가 아니다. 이미 마음속에 모든 답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의심은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하나의 숨결과도 같은데, 확신만이 남은 자리에서는 성찰도 함께 사라진다. 믿음이 서로를 이해하는 다리가 되지 못하고 서로를 심판하는 칼이 되는 순간, 공동체는 가장 먼저 무너지기 시작한다.

바레스는 자유로운 영감을 무조건 찬양하지도 않고, 제도의 권위를 절대적인 해답으로 내세우지도 않는다. 질서는 생명을 잃으면 굳어 버리고, 영감은 절제를 잃으면 사람을 집어삼킨다.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것마저 되돌아볼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삶은 확실함보다 모호함을 더 많이 품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불안보다 확신을 선택하려 한다. 확신은 두려움을 잠시 잠재울 수 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믿음을 더 오래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미덕에 머물지 않는다. 진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 두는 태도이기도 하다.

삶은 저마다 품은 믿음의 방향을 닮아간다. 우리의 선택과 관계, 희망 역시 그 믿음 위에서 자란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자신을 향해 닫히는 순간, 진리는 어느새 우상이 된다. 믿음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순간 인간은 무너진다. 스스로의 생각과 진리를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은 가장 쉽게 타인을 밀어내고, 가장 늦게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영감이 흐르는 언덕』은 신앙을 통해 인간을 비추고, 인간을 통해 다시 믿음의 본질을 되묻는 소설이다. 가장 위험한 무지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이 곧 진리라고 믿는 순간이다. 인간은 평생 참된 것을 향해 걸어가지만, 그 길을 거듭 가로막는 것은 타인의 거짓보다 자신의 확신이다. 그래서 진리에 가까운 사람은 가장 확신에 찬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품은 확신마저 오래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책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떤 책은 인간을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영감이 흐르는 언덕』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신념을 오래 붙들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언덕에 올라보기를 권하고 싶다. 신앙과 광신의 경계가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헤아려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소설은 오래 머물 만한 사유를 내어준다. 믿음을 다룬 이야기이지만, 결국 시선이 향하는 곳은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소가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빚어내는지, 한 공간이 어떻게 한 시대의 정신을 품을 수 있는지를 사유하는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공간은 때로 사람을 품는 배경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주체가 된다. 무엇보다 철학적인 프랑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사유의 풍경을 오래 거닐게 될 것이다. 믿음을 설명하는 소설은 많지만, 믿음을 품은 인간을 이토록 깊이 탐구하는 소설은 흔치 않다.

✏️도서출판 등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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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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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독립을 배우는 일이라지만, 현실은 빚을 배우는 과정에 더 가까울 때가 있다. 신용카드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꺼내 쓰는 약속이고, 이자는 그 시간을 빌린 대가다. 그래서 빚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노동과 희망, 견뎌낼 힘까지 조금씩 현재로 끌어오는 일이다.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이러한 자본의 원리를 설명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성실하게 내어주며 살아가는지를 지켜보게 만든다. 시간을 숫자로 환산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시인 수진은 미래를 갚기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 시를 쓰고, 원고를 보내고, 인세를 기다리고, 다시 일을 한다. 기분이 가라앉을수록 소비는 충동이 되었지만, 그것은 허영보다 불안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현재는 늘 미래에게 빚을 지고, 미래는 다시 현재를 재촉한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이자를 갚기 위해 숨을 몰아쉬는 달리기처럼 이어진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로 주어진다. 하지만 살아낸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어떤 하루는 아무 흔적 없이 지나가고, 어떤 하루는 한 사람의 삶을 간신히 붙들어주는 버팀목이 된다. 자본은 시간을 비용으로 계산하지만, 인간은 그 시간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인간에게 시간은 흘러가는 단위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존재를 조금씩 완성해가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잔인한 것은 빚이 아니라, 그 시간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수진은 수많은 날을 버텨내며 거액의 빚을 갚아왔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끝내 남아 있는 얼마의 돈만 보인다. 이미 흘려보낸 시간은 누구의 계산에도 남지 않는다. 성실함은 과정이 아닌 결과로 평가되고, 노력은 숫자가 사라지는 순간 함께 지워진다. 인간은 실패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견뎌온 시간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깊은 절망에 빠진다.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감각이다.

자본은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데 탁월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삶으로 바꾸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 두 시간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본에게 시간은 이자를 불려주는 자원이고, 인간에게 시간은 사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동안 축적되는 생의 두께다. 그래서 자본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한다. 얼마나 벌었는지, 얼마나 갚았는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존재는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계속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래서 현대인은 살아가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노동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자본이 가장 먼저 점유하는 것은 돈이 아닌 인간의 시간이다.

『이자만큼 성실하게』라는 제목은 묘한 역설을 품고 있다. 가장 성실한 것은 인간이 아닌 이자다. 인간이 지치고, 흔들리고, 멈춰 서는 동안에도 이자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불어난다. 반대로 인간의 성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버텨낸 하루도, 삼켜낸 눈물도, 다시 시작한 용기도 숫자로 환산되는 순간 흔적을 잃는다. 이자는 시간을 따라 불어났고, 인간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갔다. 이 순간 시간은 더 이상 흐르는 배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 체계가 경쟁하는 공간이 된다. 자본은 시간을 증식시키지만, 인간은 시간을 축적한다. 같은 시간을 지나도 서로에게 남는 것은 전혀 다르다. 성실은 결과로 환원되는 능력이 아니라, 환산되지 않는 시간을 자신의 삶으로 축적해가는 일이다.

시를 쓰던 사람이 소설을 쓰면 어떤 문장이 탄생할까.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그 물음에 대한 가장 독특한 대답처럼 읽힌다. 이소호는 시의 리듬으로 삶을 쓰다가도, 어느새 논문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해부하고, 마침내 가장 거친 언어로 인간이 버티는 마지막 자리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문체가 한 권 안에서 충돌하면서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빚이라는 현실이 애초에 하나의 언어만으로는 담기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품위 있는 문장만으로는 품위 없는 현실을 끝까지 견뎌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소호는 문체 자체로 증명해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생계의 곤란을 이야기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도 삶이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사람, 꿈과 생계 사이에서 여러 번 현실과 타협해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웃음과 씁쓸함이 번갈아 스쳐 지나가는 동안, 어느새 한 사람의 생존이 자신의 일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본이 시간을 계산하는 방식과 인간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은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성실이라는 단어를 무엇으로 다시 정의해야 하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도서출판 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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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루팡
박상민 지음 / 서랍의날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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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원래는 필요 없어야 할 사람들이 생겨난다. 의료 브로커라는 이름도 그렇다. 병원이 환자를 지키고, 법이 진실을 밝히며, 정의가 제때 도착하는 세상이라면 그들은 처음부터 태어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늘 가장 이상적인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절망이 반복되고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때, 제도의 빈자리를 메우는 사람들은 법의 바깥에서 조용히 걸음을 시작한다. 『닥터 루팡』은 그 모순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병원은 사람이 가장 큰 신뢰를 맡기는 공간이다.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타인에게 맡기는 일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뢰란 모든 안전이 확인된 뒤에 내리는 결론이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내일을 먼저 맡겨 보기로 하는 인간의 오래된 약속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벌어지는 잘못은 단순한 사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상처 입는 것은 육체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병원을 바라볼 때마다 생명을 살리는 숭고함과 함께, 때로는 가장 감추고 싶은 진실 역시 그 안에 묻힐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했다. 이 작품은 그 불편한 현실을 통해 신뢰란 얼마나 쉽게 잃을 수 있는지보다, 얼마나 어렵게 쌓아 올려지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신뢰를 잃은 공간에서 정의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나타나야 하는가.

정의가 제때 도착하지 못한 자리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먼저 도착한다. 승재는 그런 사람이다. 의료 브로커라는 이름은 정의롭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정의가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필요해진 이름이다. 의료사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누군가는 신분을 숨기고, 누군가는 제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씁쓸하다. 정의는 잘못을 처벌하는 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누구도 함부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의 약속이 지켜질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정의가 빛 아래에서 당당히 걸어가지 못하고 그림자의 모습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은 공동체가 잃어버린 신뢰의 크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의료계만을 향하지 않는다.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법조문보다 먼저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법과 제도 역시 그 믿음 위에서만 힘을 얻는다. 그 확신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점점 제도보다 개인을, 공식적인 절차보다 비공식적인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는 언제나 또 다른 누군가가 등장한다. 탐정이, 내부고발자가, 브로커가 된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결과다. 결국 그림자 속에서 정의를 수행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빛 아래에서 작동해야 할 사회는 그만큼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닥터 루팡』은 통쾌한 메디컬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건의 긴장감보다 사회를 향한 씁쓸한 성찰이 이 책의 본질이다. 의료 브로커의 활약이 박수받는 현실은 결코 건강한 사회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 우리가 끝내 도착해야 할 모습일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란 영웅이 많은 사회가 아니라, 영웅이 나설 이유조차 없는 사회다. 병원은 다시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신뢰는 다시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평범한 당연함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장 간절히 회복하고 싶었던 가치가 아닐까.

모든 사회는 보이지 않는 믿음 위에서 세워진다. 그래서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제도가 아닌 인간이다. 정의가 언제나 법의 이름으로만 도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곱씹어 보고 싶은 독자, 사회파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더욱 즐기며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병원이라는 공간의 빛과 그림자를 가까이에서 마주해 온 의료인이라면,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질 만큼 깊은 몰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은 허구의 설득력을 더욱 깊게 만든다. 무엇보다 신뢰란 어떻게 무너지고, 또 무엇으로 다시 세워지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닥터 루팡』은 사건을 따라가는 재미를 넘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까지 넓혀 줄 것이다. 현직 내과 의사인 박상민 작가가 그려낸 병원의 풍경은 낯설 만큼 생생하고, 그 사실감 위를 누비는 의료 브로커의 잠입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한층 단단하게 끌어올린다.

✏️도서출판 서랍의날씨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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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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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가장 오래 바라보는 존재는 인간이다. 수천 년 동안 철학은 인간을 정의하려 했고, 심리학은 인간을 이해하려 했으며, 종교는 인간을 구원하려 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가장 낯설어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살아간다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긴 여정인지도 모른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그 여정 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의미보다도 의미를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은 흔히 환경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태어난 시대와 성장한 환경, 수없이 겪은 경험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다고 믿는다. 물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프랭클은 가장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도 인간에게는 끝까지 남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모든 것을 빼앗긴 자리에서도 그 마지막 자유만큼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었다는 그의 경험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인 동시에,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선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삶은 이미 정해진 본성을 따라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선택은 한 번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빚어 가는 과정이 된다. 인간은 주어진 운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만들어 가니까.

그래서 자유는 권리보다 책임에 가까운 말이 된다. 자유는 원하는 것을 그저 마음껏 누리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삶의 의미 역시 누군가 건네주는 답이 아니다. 매 순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에 따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상실을 겪어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을 허락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결단의 순간은 남겨 둔다. 인간은 그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조금씩 완성해 간다. 그러한 결단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자유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권한이라기보다 삶을 떠맡는 태도에 가까워진다. 책임을 외면하는 순간 자유는 가벼워지지만, 책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삶에는 무게와 방향이 생긴다.

프랭클은 고통을 숭배하지 않는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이라면 마땅히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 그 고통이 삶을 무너뜨리는 힘이 될지,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될지는 결국 인간이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절망을 지워 버리려 하지도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일, 바로 그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문장은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실과 시련을 무조건 견디라는 위로가 아니라, 그 앞에서도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는 믿음처럼 다가온다. 고통은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무엇을 잃지 않았는지를 보여 준다. 절망 한가운데에서도 존엄을 붙드는 의지, 인간이라는 존재의 마지막 품위는 바로 그곳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모두 이해하며 살아가지 못한다. 때로는 스스로도 낯설고, 어떤 선택은 오래도록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 앞으로 흐르고, 인간은 그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씩 알아 간다. 존엄은 특별한 업적이나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성공했는가보다 어떤 태도로 살아냈는가에 의해 오래 기억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완벽한 환경도, 흔들리지 않는 행복도 아니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려는 의지,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용기다.

마음을 움직이는 한 문장의 힘을 믿는다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책도 드물다. 어떤 문장은 위로를 건네고, 어떤 문장은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로 세운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그런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삶의 의미를 오래 고민해 온 사람, 인간이라는 존재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명 삶을 살아가며 여러 번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될 것이다. 또한 상실과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 자유와 책임이라는 말의 무게를 자신의 삶으로 다시 헤아려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한 권을 다 읽고 얻는 깨달음보다 한 문장을 오래 붙들며 살아가는 시간이 더 깊은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인상 깊은 문장을 몇 개쯤 수집하는 방식으로는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한 문장을 밑줄 긋고 나면 다음 문장이 다시 손을 붙잡고, 또 그다음 문장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결국 이 책을 읽는 순간 필요한 것은 문장 수집이 아닌 통필사가 되겠다. 어느 한 문장만을 고르기에는, 거의 모든 페이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이 평생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삶의 의미 이전에 인간이라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시대를 건너 지금도 같은 자리를 향한다. 인간은 끝내 인간다울 수 있다는 믿음, 이 책은 그 오래된 가능성을 증명해 낸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던 독자라면, 그 믿음이 한 사람의 철학으로 깊어지는 과정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삶이 다시 흔들리는 날, 가장 먼저 펼치게 되는 책 역시 이 책일지도 모른다.

✏️도서출판 북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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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초콜릿 도넛 ㅣ 그늘 단편선 5
백수연 지음 / 그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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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을 많이 살아낸다는 뜻처럼 들린다. 그래서 어린 시절은 늘 지나온 계절처럼 취급된다. 뒤돌아서면 보이는 풍경일 뿐, 지금의 삶과는 분리된 시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을 통과하는 존재인 동시에 시간에 의해 빚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오래전의 기쁨과 상처, 사랑받았던 순간과 외면받았던 순간은 과거라는 이름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들은 성격이 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이 되고, 세상을 해석하는 시선이 되어 여전히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는 오늘의 나를 이루는 가장 오래된 재료가 된다.

소설집 속 인물들도 현재의 사건만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사랑의 표정을 바꾸고, 오래된 친구를 떠올리는 마음에는 비교와 결핍이 깊숙이 스며 있다. 무너져 가는 부부의 관계 역시 눈앞의 배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구도 과거를 손에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이미 그 시간을 닮아 버린 채 살아간다. 현재의 감정은 갑작스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천천히 형태를 갖추어 온 결과인 셈이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은 지금 눈앞에 있는 모습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며 자라온 감정의 결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타인의 삶을 안다는 것은 그가 지나온 시간의 깊이를 함께 헤아리는 일이며, 한 사람의 현재는 언제나 수많은 어제들의 목소리를 품고 있다.

인간은 기억으로 형성되는 존재다. 그래서 같은 사건도 누구에게는 흉터가 되고, 누구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시간은 흔적을 지우기보다 의미를 축적한다. 살아온 날들이 켜켜이 쌓여 한 사람의 말투와 표정, 선택과 침묵을 만든다. 우리는 세월을 지나온 존재가 아닌, 살아낸 나날로 이루어진 존재다. 같은 기억도 삶의 어느 계절에서 다시 마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품지 않는가.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과거를 끊임없이 새롭게 이해하며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간다. 현재의 나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인 동시에 수많은 시간의 축적이다. 그 과정 속에서 과거는 더 이상 회상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일부가 된다. 결국 지금을 이해하려면 지나간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저마다 다른 관계를 살아가는 소설집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지난날을 품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관계는 언제나 현재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감정의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그래서 관계는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면서도,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에도, 상처를 견디는 방식에도, 침묵을 선택하는 방식에도 살아온 시간이 스며 있다. 한 사람의 삶은 수많은 과거가 천천히 퇴적되어 만들어진 지층과도 같다. 그 지층은 어느 한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반복된 경험과 오래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한 사람의 기질을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빚어낸다. 지나온 시간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어쩌면 사람은 과거를 두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과거가 된 채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삶은 지나온 시간을 떼어 내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의미로 품어낼 것인가를 배워 가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은 끝내 해석되지 못한 감정의 형태로 오래 남아 있다. 삶의 깊이는 상처의 유무가 아니라, 그 시간을 삶 속에 받아들이는 힘에서 비롯된다. 살아온 시간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도 외면하지 않는다. 과거는 우리를 붙잡기 위해 있지 않다. 오늘의 우리를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백수연의 소설집은 인간이 결국 살아온 시간의 총합이며, 그 시간을 끌어안는 방식이 곧 한 사람의 삶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맛은 혀끝보다 오래 기억된다. 어린 날의 레인보우 초콜릿 도넛 하나는 시간이 말로 남지 못한 감정을 대신 품고 있다. 어떤 사물은 기억을 간직하는 그릇이 되고, 어떤 기억은 한 사람의 삶을 오래 이끌어 간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지금의 삶에 어떤 모양으로 남아 있는지 돌아보고 싶은 사람,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비슷한 감정과 마주했던 사람이라면 이 소설집을 오래 곁에 두어도 좋겠다. 그리고 타인의 말과 행동보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먼저 헤아려 보고 싶은 사람,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이 천천히 열리는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도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백수연은 삶을 바꾸는 거대한 사건보다 오래도록 스며 있는 기억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깊게 빚어 가는지를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려 낸다.

✏️도서출판 그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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