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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평점 :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독립을 배우는 일이라지만, 현실은 빚을 배우는 과정에 더 가까울 때가 있다. 신용카드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꺼내 쓰는 약속이고, 이자는 그 시간을 빌린 대가다. 그래서 빚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노동과 희망, 견뎌낼 힘까지 조금씩 현재로 끌어오는 일이다.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이러한 자본의 원리를 설명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성실하게 내어주며 살아가는지를 지켜보게 만든다. 시간을 숫자로 환산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시인 수진은 미래를 갚기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 시를 쓰고, 원고를 보내고, 인세를 기다리고, 다시 일을 한다. 기분이 가라앉을수록 소비는 충동이 되었지만, 그것은 허영보다 불안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현재는 늘 미래에게 빚을 지고, 미래는 다시 현재를 재촉한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이자를 갚기 위해 숨을 몰아쉬는 달리기처럼 이어진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로 주어진다. 하지만 살아낸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어떤 하루는 아무 흔적 없이 지나가고, 어떤 하루는 한 사람의 삶을 간신히 붙들어주는 버팀목이 된다. 자본은 시간을 비용으로 계산하지만, 인간은 그 시간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인간에게 시간은 흘러가는 단위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존재를 조금씩 완성해가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잔인한 것은 빚이 아니라, 그 시간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수진은 수많은 날을 버텨내며 거액의 빚을 갚아왔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끝내 남아 있는 얼마의 돈만 보인다. 이미 흘려보낸 시간은 누구의 계산에도 남지 않는다. 성실함은 과정이 아닌 결과로 평가되고, 노력은 숫자가 사라지는 순간 함께 지워진다. 인간은 실패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견뎌온 시간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깊은 절망에 빠진다.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감각이다.
자본은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데 탁월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삶으로 바꾸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 두 시간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본에게 시간은 이자를 불려주는 자원이고, 인간에게 시간은 사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동안 축적되는 생의 두께다. 그래서 자본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한다. 얼마나 벌었는지, 얼마나 갚았는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존재는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계속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래서 현대인은 살아가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노동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자본이 가장 먼저 점유하는 것은 돈이 아닌 인간의 시간이다.
『이자만큼 성실하게』라는 제목은 묘한 역설을 품고 있다. 가장 성실한 것은 인간이 아닌 이자다. 인간이 지치고, 흔들리고, 멈춰 서는 동안에도 이자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불어난다. 반대로 인간의 성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버텨낸 하루도, 삼켜낸 눈물도, 다시 시작한 용기도 숫자로 환산되는 순간 흔적을 잃는다. 이자는 시간을 따라 불어났고, 인간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갔다. 이 순간 시간은 더 이상 흐르는 배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 체계가 경쟁하는 공간이 된다. 자본은 시간을 증식시키지만, 인간은 시간을 축적한다. 같은 시간을 지나도 서로에게 남는 것은 전혀 다르다. 성실은 결과로 환원되는 능력이 아니라, 환산되지 않는 시간을 자신의 삶으로 축적해가는 일이다.
시를 쓰던 사람이 소설을 쓰면 어떤 문장이 탄생할까.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그 물음에 대한 가장 독특한 대답처럼 읽힌다. 이소호는 시의 리듬으로 삶을 쓰다가도, 어느새 논문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해부하고, 마침내 가장 거친 언어로 인간이 버티는 마지막 자리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문체가 한 권 안에서 충돌하면서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빚이라는 현실이 애초에 하나의 언어만으로는 담기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품위 있는 문장만으로는 품위 없는 현실을 끝까지 견뎌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소호는 문체 자체로 증명해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생계의 곤란을 이야기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도 삶이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사람, 꿈과 생계 사이에서 여러 번 현실과 타협해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웃음과 씁쓸함이 번갈아 스쳐 지나가는 동안, 어느새 한 사람의 생존이 자신의 일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본이 시간을 계산하는 방식과 인간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은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성실이라는 단어를 무엇으로 다시 정의해야 하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도서출판 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