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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의 해부학
애슐리 엘스턴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8월
평점 :
정오부터 자정까지 단 열두 시간. 남편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치려는 캐밀과, 그의 남편이 10년 전 사고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오브리는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주기로 한다. 오브리는 캐밀의 옷을 입고 휴대전화를 들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캐밀의 이름으로 세상 속을 걸어간다. 그동안 캐밀은 남편의 감시에서 벗어나 자신이 알고 싶은 진실을 찾아간다. 서로의 삶을 잠시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계획이지만, 다음 날 아침 캐밀의 남편이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두 사람의 공모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알리바이의 의미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알리바이의 해부학』은 이 기묘한 설정에서 출발해 범인을 찾는 과정과 한 사람을 믿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빠른 속도로 풀어낸다.
알리바이는 시간과 장소를 증명하는 장치다. 그러나 그 증명이 성립하려면 먼저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누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기록은 무엇을 보여주는지. 여러 조각이 한 방향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결국 알리바이의 힘은 진실 그 자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진실처럼 보이도록 배열된 정보에서 발생한다. 사실은 혼자서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순서를 정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하나의 서사가 된다. 같은 사건도 어떤 장면을 먼저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히고,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 『알리바이의 해부학』은 바로 이 과정을 스릴러의 속도 안에 숨겨놓는다. 독자는 사건의 진실을 한 번에 전달받는 대신 여러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과하며 하나의 그림을 조립한다. 그림이 완성될수록 처음에 보았던 조각들의 의미가 달라진다. 독자는 진실에 가까워지는 동시에 자신이 믿었던 이야기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이 구조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얻는 정보 역시 언제나 부분적이다. 상대가 말해준 기억, 함께 보낸 시간, 반복해서 관찰한 습관,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모여 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그 이미지가 오래 유지되면 우리는 그것을 실제 인물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에는 관찰할 수 없는 시간이 존재한다. 혼자 있을 때의 생각,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기억,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한 감정은 타인의 시야 밖에 놓여 있다. 한 인간의 정체성에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타인이 기억하는 시간이 함께 포개져 있다. 내가 기억하는 나와 타인이 기억하는 나는 언제나 조금씩 다르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와 실제로 살아가는 나 사이에도 간격이 생긴다. ‘나’라는 존재는 혼자 완성하는 자아인 동시에 타인의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다시 만들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브리가 캐밀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장면은 이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름과 물건, 자동차와 휴대전화, 익숙한 행동 몇 가지가 한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는 표지가 된다. 외부에서 바라본 인간은 놀라울 만큼 많은 흔적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흔적들이 아무리 정교하게 복제되어도 한 사람의 기억과 경험까지 그대로 옮겨갈 수는 없다. 누군가가 알고 있는 나, 내가 기억하는 나,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 사이에는 각기 다른 얼굴이 놓인다. 오브리가 캐밀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열두 시간은 바로 그 차이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밀어붙인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보다 그것을 판단하는 타인의 믿음이 얼마나 쉽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정체성에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 둘은 완전히 포개지지 않으며, 그 사이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끊임없이 변한다.
캐밀과 벤의 관계에서는 그 거리가 감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가까운 관계에서 상대를 알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욕망이 상대의 위치와 행동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려는 행위로 변하면 관계의 공간은 달라진다. 미셸 푸코가 감시의 구조를 설명하며 주목했던 것도 그 시선이 개인의 내면으로 스며드는 과정이다. 감시의 힘은 감시자가 눈앞에 있을 때보다 그 시선이 개인의 내면으로 들어왔을 때 더욱 강해진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를 관리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말할지 고르고, 어디에 갈지 계산하고,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먼저 생각한다. 결국 타인의 시선은 행동을 제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꾼다. 그런 환경에서 오브리의 열두 시간은 일종의 역할 교체다. 감시받는 사람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서 고정되어 있던 관계의 시선이 잠시 뒤집힌다.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야 한다는 역설도 생겨난다. 자유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빌리는 이 설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타인의 시선 속에서 구성하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긴장은 현재에서 과거로 뻗어간다. 현재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오래전 사건을 들여다봐야 하고, 과거의 사건을 이해하려면 그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따라가야 한다.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기록물이 아니다. 현재의 감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장면의 의미가 달라지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갈라진다. 한 가족 안에서 같은 사건을 공유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과거를 삶의 중심에 놓고, 누군가는 그 과거를 봉인한 채 현재를 살아간다. 사건은 하나지만 그 사건이 각자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제각각이다. 그래서 오래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기보다 오히려 현재의 선택을 설명하는 힘으로 변한다. 과거는 뒤에 놓인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현재가 된다.
진실을 향해 움직이는 과정에서는 각자가 지키고 싶은 것이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할 사실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이다. 이 차이는 인물들의 행동을 선명한 선악의 구도로 정리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야기를 선택하고, 그 이야기를 믿을 만한 형태로 만들어간다. 이때 거짓말은 삶을 감추는 도구인 동시에 삶을 계속하기 위한 방어가 된다. 하나의 거짓말이 또 다른 침묵을 만들고, 침묵이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면서 사람들의 관계와 기억은 복잡하게 얽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에서 진실을 찾는 일은 사건의 정답을 확인하는 작업을 넘어, 서로 다른 삶의 서사를 읽어내는 일이 된다.
이 지점에서 제목의 ‘해부학’이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해진다. 해부는 겉으로 드러난 형태를 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부의 구조를 살피는 행위다. 『알리바이의 해부학』 역시 알리바이 하나를 붙잡고 그 안에 어떤 시간과 기억과 관계가 들어 있는지를 차례로 들여다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는 그 사람이 지키려는 것이 있고, 특정한 장소에는 지나간 사건의 흔적이 있으며, 한 사람의 침묵에는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역사가 들어 있다. 알리바이를 해부한다는 것은 사건의 외피를 벗겨내는 동시에 그 사건을 둘러싼 인간의 구조를 살피는 일이다. 범죄의 진실을 찾는 과정이 인간의 기억과 관계, 욕망과 두려움을 들여다보는 과정으로 넓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바라보면 ‘누가 누구의 알리바이가 되었는가’라는 문장은 살인사건을 향한 질문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향한 문장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완전히 알 수 없고, 그 사람이 보여준 장면들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상대가 건네준 이야기와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겹쳐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이 완성된다. 그 과정에는 선택이 개입한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침묵할지, 어떤 모습으로 타인에게 남을지를 결정하는 선택이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모든 시간을 타인에게 건넬 수 없기에 결국 몇 개의 장면을 골라 자신을 설명한다. 그것이 기억이 되고, 변명이 되고, 때로는 진실이 된다. 삶 전체를 증명할 수 없는 인간에게 이야기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오래된 알리바이다.
『알리바이의 해부학』은 그 이야기가 얼마나 쉽게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빠른 호흡의 스릴러 안에 담아낸다. 범인을 찾는 동안 독자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사건의 단서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에 부여했던 신뢰, 한 사람에 대해 완성해놓은 이미지, 너무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았던 관계까지 함께 다시 살펴보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비밀이 늦게 드러나는 까닭도 결국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가까움은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익숙함이라는 필터를 만든다. 오래 알고 지낸 얼굴일수록 우리는 그 얼굴에 익숙한 의미를 먼저 덧씌운다. 신뢰는 관계를 이어가는 힘이면서 상대가 건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따라가는 동안 의심의 방향은 사건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자기 자신으로 옮겨간다. 누군가를 믿는 방식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만큼이나 내가 가진 기억과 욕망, 기대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알리바이의 해부학』이라는 제목은 사건의 핵심을 설명하는 동시에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건드린다. 알리바이를 해부한다는 것은 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었는지, 다른 사람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 믿음이 관계 속에서 어떤 형태로 굳어졌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가 누구의 알리바이가 되었는가. 처음에는 범인을 찾기 위한 질문이었던 문장이 마지막에는 사람을 믿는 방식에 관한 문장으로 넓어진다. 우리가 타인의 삶을 알고 있다고 믿을 때, 그 믿음에는 언제나 그 사람이 보여준 이야기와 내가 완성한 해석이 함께 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몇 개의 장면으로 남는다. 그 장면들이 모여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우리는 그 이야기의 일부를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알리바이가 만들어진다. 어떤 것은 진실을 지키고, 어떤 것은 진실을 감추며, 어떤 것은 한 사람을 오래도록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알리바이의 해부학』은 그 복잡한 구조를 살인사건의 속도 안에서 세밀하게 해부한다.
✏️도서출판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