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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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타인의 표정을 통해서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몸에 붙어 있지만 외부에 속한 기관. 나에게 속해 있으면서도 나만의 것이 아니고, 가장 익숙한 신체의 일부이면서 타인의 시선 안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 것. 아베 코보는 이 기이한 신체의 성질을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바꾸어놓는다. 얼굴을 잃은 남자. 그리고 그 얼굴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면. 이제 그는 자신을 보기 위해 타인의 눈을 필요로 한다. 자신을 숨기기 위해 만든 가면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시험하기 시작한다.

얼굴이 사라진 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거울 속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의 태도다. 같은 목소리와 같은 몸,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 어느 날 얼굴만 잃었을 때 주변의 세계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를 대하지 않는다. 그 변화는 외모에 대한 편견이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얼굴이 한 사람을 알아보게 하는 표식이라면, 그 표식이 사라진 순간 사회가 그 사람에게 부여하던 자리 역시 달라진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과 타인이 알아보는 자신 사이에 차이가 생기고, 그때부터 ‘나’라는 말은 혼자서는 완성하기 어려운 단어가 된다.

가면은 이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흉터를 가리기 위한 물건이지만, 가면을 쓰고 나서야 주인공은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대하고, 그는 달라진 시선 속에서 평소의 자신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던 선택을 한다. 가면이 감추는 것은 얼굴에 남은 흔적만이 아니다. 얼굴이라는 표면 아래 얌전히 접혀 있던 욕망까지 함께 풀려 나온다. 그래서 가면 아래에 있는 얼굴만을 진짜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상황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내보인다. 직장에서의 표정과 집에서의 표정, 처음 만난 사람 앞의 태도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 앞의 태도가 모두 다르지 않은가.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사회적 관계를 무대 위의 연기에 비유했던 것처럼,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연출한다. 어느 얼굴이 진짜인지 묻는 순간 오히려 답하기 어려워진다. 가면을 벗으면 본래의 자신이 나온다는 믿음 역시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하나의 얼굴만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이한 이야기를 더욱 낯설게 만드는 것은 사건보다 그것을 기록하는 문장이다. 소설은 편지 같기도 하고, 조서 같기도 하며, 혼자 작성한 실험 보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충분히 격렬하고 불온한 사건들이 이어지는데도 문장은 침착하다. 비명을 지르는 문장이 아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비정상적인 일을 보고하는 문장. 기괴한 사건을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고 마치 실험 결과를 보고하듯 기록하기 때문에 독자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보다 그의 사고방식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섬뜩함은 사건의 잔혹성보다 그것을 너무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의 태도에서 발생한다.

이런 문학적 감각에서 한국의 모더니스트이자 아방가르드 작가인 이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두 작가를 직접적인 영향 관계로 묶을 이유는 없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묘한 친연성이 있다. 이상이 일상적인 세계를 의식의 기묘한 구조 속으로 변환했다면, 아베 코보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를 따라가면서 현실을 낯설게 만든다. 설명 가능한 일을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설명의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일본의 카프카’라는 별칭 역시 현실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이러한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비현실적인 사건을 만들어내기보다 현실의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 비현실에 도달하는 것.

가면을 둘러싼 실험이 사랑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소설의 불편함은 한층 선명해진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순간, 사랑은 하나의 검증 대상이 된다. 사랑받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사랑받고 있는가. 얼굴이 달라져도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욕망은 어느 순간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시험하려는 욕망으로 변한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타인을 분석하려는 태도로 바뀌는 순간이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는 나의 인식으로 전부 환원할 수 없는 존재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끝내 나와 다른 자리에 남아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은 독립적인 존재라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거울처럼 변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 사람을 자신의 세계 안에 가두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사랑의 문제가 개인적인 감정의 실패에 머물지 않고 타인을 대하는 방식의 문제로 확장되는 이유다.

얼굴과 가면은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본다. 얼굴은 타인이 나를 인식하게 하는 표면이고, 가면은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를 구성하는 표면이다. 하나는 외부에서 나를 규정하고, 다른 하나는 내가 외부를 향해 나를 조절한다. 그 사이에 놓인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자아가 홀로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얼굴에서 가면으로 넘어갈수록 선명해지는 이 소설의 불안이다.

그리고 여기서 기록이 다시 등장한다. 세 권의 노트는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하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기록하는 순간 경험은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을 제작했듯 자신의 삶을 문장으로 제작한다. 얼굴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면이라면 기록은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면이 된다. 따라서 글쓰기도 하나의 가면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설명하는 행위가 자신을 투명하게 만드는 대신, 또 다른 형태의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과 가면이 몸의 표면을 다루는 장치라면, 기록은 의식의 표면을 다루는 장치다.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 거울을 필요로 하듯,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언어로 옮겨진 삶은 이미 한 번 선택되고 배열된 삶이다.

이렇게 보면 『타인의 얼굴』에서 실제로 해체되는 것은 얼굴 하나뿐이 아니다. 얼굴을 잃은 한 남자의 사건을 따라가면서 인간이 자신을 동일한 존재라고 믿는 방식도 조금씩 흔들린다. 얼굴을 바꾸면 타인의 시선이 달라지고, 타인의 시선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자신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진다. 자아는 관계 바깥에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초상이 아니라, 타인과 마주하는 순간마다 달라지는 모습들 속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공포는 괴기나 폭력에서만 생겨나지 않는다. 가장 평범한 얼굴 하나가 얼마나 많은 타인의 시선 위에 놓여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하는 데 있다. 매일 거울을 보며 확인하는 얼굴조차 온전히 자신의 소유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사랑하거나 외면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이다. 얼굴을 잃은 남자가 새로운 얼굴과 함께 찾아 헤매는 것은 타인의 세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가면을 쓰면 새로운 삶이 가능해지는 듯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시선과 욕망이 따라온다.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기록하면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지만, 기록하는 순간 또 하나의 자신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타인에게서 자신을 확인하려 할수록 자신은 더 많은 얼굴을 갖게 된다.

얼굴은 내 몸에 있지만 나만의 것은 아니다. 가면은 내가 만들었지만 그 의미는 타인의 눈에서 결정된다. 기록은 내가 썼지만 그 안의 나는 문장 속에서 다시 만들어진다. 『타인의 얼굴』은 인간이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세 가지 표면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벗겨내면서,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사용해온 ‘나’라는 단어를 낯선 것으로 만든다. 그 아래에 도달하면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베 코보가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편이다. 그 아래에서 발견되는 것은 완전한 ‘나’가 아니다. 타인의 시선과 기억과 언어를 거치며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존재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얼굴이라는 가장 익숙한 신체는 가장 낯선 것이 된다. 거울 속에서 매일 확인하면서도 스스로 직접 볼 수 없고, 타인이 알아보아야 비로소 사회적인 의미를 얻는 것. 내가 가진 얼굴이면서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얼굴. 평생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의 눈으로 본 적 없는 얼굴.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낯선 얼굴은 바로 그것이다.

✏️문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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