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도록 - 권오중의 삶의 긍정
권오중 지음 / 수오서재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얼마만큼의 계절을 나눌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미래를 계획하고 약속을 건네며, 오늘의 평온이 내일도 이어지리라 믿는다. 생의 질서는 언제든 예고 없이 무너진다.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해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이 있고, 온 힘을 다해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인간의 의지로 다스릴 수 없는 영역 앞에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세상이 자신에게 약속한 적 없는 내일을 너무 오래 당연하게 믿으며 살아온 탓일까. 배우 권오중의 첫 에세이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도록』은 익숙한 삶의 경계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고백이다.

권오중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먼저 유쾌한 웃음과 익살스러운 표정이 그려진다. 사극 속 인물로 시대를 넘나들고, 단발머리 가발을 뒤집어쓴 채 영화 속 하비에르 바르뎀의 기묘한 표정까지 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익살꾼.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웃게 하던 배우에게도 무대 밖에서는 웃음으로 건너기 어려운 날들이 있었다. 아들 혁준은 어린 시절부터 자주 넘어지고 또래보다 말이 늦었다. 오랜 검사와 진료 끝에 밝혀진 원인은 미토콘드리아의 칼슘 흡수를 조절하는 유전자 MICU1의 변이였다. 널리 알려진 병명조차 낯선, 유전자의 기호를 통해서야 그 실체를 설명할 수 있었던 극희귀질환. 수많은 유전자의 작은 서열 하나가 아이의 몸에 이토록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정교한 질서가 얼마나 섬세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 보여주는 현실이었다. 전국의 병원을 전전한 오랜 세월 뒤에야 확인한 병명은 불확실성의 일부를 해소했지만 가족이 감당해야 할 현실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권오중은 아들의 숨소리를 확인하고서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던 날들을 고백한다. 누군가에게는 무심히 지나가는 아침이 그에게는 매번 안도해야 하는 사건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무력함을 가장 뼈아프게 경험한다. 부모라는 이름에는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이 따르지만, 그 책임을 감당할 능력까지 언제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오중은 아들을 낫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다녔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지만 정작 가장 절실한 것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러나 이 가족의 이야기는 치료의 가능성을 좇던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외출할 때면 권오중은 자신의 팔꿈치를 내밀고 혁준은 그 팔을 잡는다. 걸음의 속도도, 몸의 균형도 서로에게 맞추어야 하는 길. 누군가의 팔에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잠시 타인에게 맡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팔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 믿음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걷는다. 앞서가는 사람도, 뒤처지는 사람도 없이.

돌봄은 한 사람의 생을 다른 사람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여놓는다. 끼니를 챙기고, 몸의 상태를 살피고,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일이 반복된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상대의 고통을 온전히 대신 겪을 수는 없기에 돌보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미처 해주지 못한 일들이 생긴다. 하지만 돌봄받는 사람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치유자’ 혁준은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병원에 데려가고 싶어 한다. 자신의 몸이 겪어온 어려움을 통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보는 것이다. 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과 그 사람이 지닌 고유한 마음을 알아보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돌봄은 서로가 가진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상대의 세계를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을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사람의 슬픔을 놓칠 수 있다. 권오중은 신혼 시절부터 아내가 건넸던 부탁을 떠올리며 자신이 얼마나 무심한 남편이었는지 돌아본다. 밖에서는 웃고 떠들며 사람들과 어울렸지만, 정작 집에서는 아내가 감당하는 외로움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명절이면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아버지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은 그 모습을 오랫동안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습관으로 여겼다. 그러나 간암 말기 진단 이후 권오중은 아버지가 겪었을 고통을 뒤늦게 돌아보게 된다. 오랜 시간 같은 집의 불빛 아래 있었어도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방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상대에 대해 익숙해질수록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을 키운다. 그러는 사이 작은 변화와 말끝에 묻어나는 피로, 평소와 다른 침묵을 지나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모습만큼이나 아직 드러내지 못한 내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혁준의 삶 역시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비슷한 순서로 성장하고 비슷한 속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기대 속에서 자란다. 제때 말을 배우고 학교에 다니며 직업을 갖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무엇이 평범하고 무엇이 정상적인 삶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좁다. 혁준은 그림을 그리고, 혼자 버스를 타고 화실에 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스스로 해내는 일에서 얻는 기쁨도 있다. 인간의 존엄은 얼마나 많은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내민 팔꿈치를 잡고 걷는 혁준과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혁준은 동일한 한 사람이다. 그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과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순간 모두를 함께 바라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고통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권오중은 오랫동안 성공을 좇았고, 배우로 인정받고 싶어 했으며, 지금도 다른 사람의 성취 앞에서 질투를 느낀다고 고백한다.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자리한 오만함을 발견했고,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에게 충분히 다정하지 못했던 시절을 후회한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생겨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무심한 순간은 찾아온다. 인간의 내면은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권오중은 자신이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라고 선언하는 대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의 이야기가 친밀하게 읽히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후회하고 흔들리는 존재인지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부끄러운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아들의 숨소리를 확인하던 아침과 아버지의 고통을 뒤늦게 이해한 순간 사이에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유한성이 흐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실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이미 지나간 날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인간은 내일을 보장할 수도, 어제를 다시 살아낼 수도 없다. 그렇기에 사랑은 자주 서툴고 후회는 언제나 한 박자 늦다. 그래서 함께 맞이하는 하루는 반복되는 일상의 얼굴을 하고서도 매번 다른 무게를 지닌다. 다만 고통을 경험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반드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픔은 오래 지속되고, 아무런 보상도 약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권오중은 자신이 살아온 방향을 돌아보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피려 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어제는 지나쳤던 표정을 오늘은 알아보고, 미처 듣지 못했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걸음에 자신의 보폭을 맞추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위로를 약속하는 문장들은 세상에 넘쳐난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언어로 정직하게 드러내는 일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도록』은 배우 권오중이라는 익숙한 이름 뒤에 놓여 있던 한 인간의 사적인 슬픔을 보여준다. 그 슬픔은 독자의 동정을 구하거나 대단한 교훈을 설파하려 들지 않는다. 삶의 고단함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문장들 사이로 아버지의 두려움과 남편의 후회, 배우의 열등감, 한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고 평범한 기쁨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무거운 사연을 품고 있으면서도 책이 수월하게 읽히는 까닭은 이러한 꾸밈없는 고백이 독자를 한 사람의 삶 가까이 데려가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수식으로 슬픔을 장식하지 않기에 오히려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누군가의 삶을 읽는 일이 어느새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일로 이어지는 순간도.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든 상처가 치유되고 고통이 사라진 미래를 약속하는 말과는 다르다. 해결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오늘을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에 대한 고백이다. 올해 서른 살이 된 혁준은 여전히 자신의 속도로 세상을 배워가고, 권오중 부부는 홍제천을 따라 달리며 몸을 움직인다. 세 사람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길 위로 나서기도 한다. 2인용 자전거 한 대와 1인용 자전거 한 대. 누군가는 페달을 조금 더 세게 밟고, 누군가는 잠시 속도를 늦추는 동안에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있다. 삶은 여전히 그들에게 쉬운 길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바퀴가 한 번 구를 때마다 발아래로 새로운 길이 지나간다. 그렇게 이 가족은 오늘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길을 달리고 있다.

✏️도서출판 수오서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