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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과 무릎들 -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우리는 혼자 있을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홀로 남겨질 가능성에는 유난히 겁이 많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하루를 꿈꾸다가 문득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내일을 두려워한다. 독립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의존을 부끄러워하는 습관은, 정작 가장 취약한 순간에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지 모르게 만든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조차 자신의 몸이 언제까지나 그 약속을 지켜주리라는 낙관을 전제한다. 늙고 병드는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며,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자부심은 몸의 사소한 고장 앞에서도 무력해질 수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날들을 조금씩 나누어 갖는 일이기도 하다.
김소민의 『책방과 무릎들』은 이러한 불안에서 출발한다. 오랜 기자 생활을 거친 작가는 늙음과 가난, 아픈 몸을 홀로 감당해야 할 미래를 두려워하다가 마을 공동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2024년 봄, 반려견 몽덕이와 함께 경남 남해로 이주한 그는 작은 책방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낯선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해변과 한적한 마을이 곧 평온한 일상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이웃들은 불쑥 찾아와 말을 걸고, 함께하는 식사는 예상보다 길어지며, 책방의 일들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외로움을 피하려고 찾아온 곳에서 오히려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잦아지는 것이다. 남해에서의 하루는 기대했던 고요함보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뜻밖의 소동으로 더 자주 채워진다. 저자는 사람 때문에 웃다가도 화가 치밀고, 다정함에 고마워하다가도 참견이 성가셔지는 감정을 특유의 유머와 솔직함으로 기록한다. 그 덕분에 남해는 낭만적인 도피처라는 외피를 벗고, 각자의 사정을 지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활의 장소가 된다.
타인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에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들이는 일이다. 혼자라면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관계 속에서는 상대의 형편과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 누군가의 호의가 기쁨이 되는 순간과 부담이 되는 순간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김소민이 경험한 남해의 일상은 이러한 친밀함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함께 밥을 먹고 마을 행사에 참여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 관계의 온기를 만들어내지만,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공동체를 향한 열망과 고독에 대한 욕구는 한 사람 안에서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순간을 공유할 필요는 없으며,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람이 타인을 향한 애정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편안한 관계는 상대의 고독까지 존중할 때 가능해진다. 곁에 있어주는 다정함과 한 발 물러서 주는 배려가 함께 필요하다는 사실을 남해의 소란스러운 일상이 가르쳐준다.
그러나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에는 적절한 거리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하고, 공간을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하며, 서로의 불편을 살펴야 한다. 저자가 몸담은 작은 책방 역시 누군가의 수고 없이는 하루도 굴러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처음에는 임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던 노동이 점차 인정과 보상의 문제로 이어지고, 매출과 북토크를 둘러싼 부담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기쁨마저 잠식한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는 구체적인 노동이 수반되며, 그 노동을 지속하려면 돌보는 사람의 형편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라도 누군가의 희생만으로 유지된다면 언젠가 지치게 마련이다. 애정과 책임이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을 때 오래도록 함께할 힘이 생긴다. 『책방과 무릎들』은 이러한 현실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기꺼이 수고를 감수하는 순간들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
관계의 어려움은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의 한계에서도 비롯된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에는 예민하지만, 자신이 무심코 건넨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는 뒤늦게 깨닫곤 한다. 김소민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모멸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않는다. 상대의 태도에서 무시의 기색을 읽어내고, 서운함을 쌓아두다가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까지 자신의 불편한 내면을 드러낸다. 동시에 자신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가볍게 대했던 경험도 돌아본다. 자기 마음의 상처에만 시선을 두고 있을 때는 타인의 사정을 충분히 살피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상대의 두려움과 서운함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의 고백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했다고 선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의심하고 질투하며 옹졸해지는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에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대하는 정직함이 있다. 그 솔직함은 웃음을 자아내고, 누구나 비슷한 마음을 품어본 적 있다는 사실에 은근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살아온 환경도, 익숙한 생활 방식도,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남해에서의 갈등과 책방을 떠나는 경험, 새로운 공유공간을 만들어가는 시도는 이러한 차이를 안고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서운함에 등을 돌렸다가도 다시 마주 앉아 밥을 나누는 일이 그곳에서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된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언제나 일정할 수 없고, 그때마다 서로에게 허락되는 자리 또한 달라진다. 이때 책의 부제인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가 한층 다정하게 읽힌다. 성기다는 것은 서로의 사이에 빈틈이 있다는 뜻이고, 엉긴다는 것은 그 빈틈을 사이에 두고도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억지로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모두 덜어줄 수는 없어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고, 마음의 모양이 달라도 내민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은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다가 서로에게 필요한 순간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남해의 이웃들은 그렇게 완벽한 이해 없이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무릎’은 이러한 관계를 가장 구체적인 신체의 언어로 표현한다. 무릎은 누군가가 몸을 기대어 쉬는 자리가 되지만, 동시에 몸의 무게를 견디고 움직임을 지탱하는 관절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기대고 싶은 순간이 있고, 누군가를 받쳐주어야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러나 타인의 무게를 감당하는 무릎에도 피로가 쌓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몽덕이와 남해의 이웃들이 저자에게 내어준 자리는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없지만, 혼자 감당하기 벅찬 순간에 조금의 무게를 나누어 질 수는 있다. 잠시 기대어 쉬고, 다시 자기 발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 오래도록 혼자 버텨온 사람에게는 그 잠깐의 쉼이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무릎에 기대어 한숨 돌리고 나면, 다시 걸어갈 힘도 조금은 생길 테니. 남해의 사람들은 오늘도 서로에게 투덜거리고 웃음을 터뜨리며 제각기 서툰 걸음으로 하루를 건너고 있을 것이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하니포터 13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