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은 계절보다 늦게
오윤희 지음 / 리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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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있다는 사실과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고향이라는 말에는 지리적 좌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어떤 이에게 국경은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계이고, 다른 이에게는 일생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한 번의 정치적 결정으로 수많은 사람이 조상의 땅에서 추방되고, 그 후손들은 자신이 직접 떠나온 적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어떤 기억은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다음 세대의 언어와 습관 속에 스며들고, 어떤 상실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정체성에까지 흔적을 새긴다. 그렇다면 인간이 고향이라고 부르는 곳은 어디까지 자신의 것일 수 있을까. 오윤희의 장편소설 『작별은 계절보다 늦게』는 그렇게 역사의 바깥으로 떠밀린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발견한 친숙함을 통해, 인간에게 소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색한다.

2000년 겨울,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숲에서 북한 출신 벌목공 영호와 고려인 4세 소냐가 만난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은 일본의 첩자 침투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소련 극동 지역의 고려인 약 17만 2천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며칠의 통보만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이들은 열차에 실려 낯선 땅으로 향했고, 그 추방의 역사는 후손들의 정체성에도 깊이 새겨졌다. 한편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소련과 러시아의 벌목장으로 노동자들을 보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고된 노동과 통제를 피해 작업장을 탈출하기도 했다. 영호는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낯선 땅에서도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소냐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도 어디에 자신의 뿌리가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두 사람이 짊어진 역사의 무게는 서로 다르지만, 어느 곳에서도 온전한 안식을 얻지 못한다는 고독은 닮아 있다. 소설은 이들의 만남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개인의 감정과 연결한다. 국가가 결정한 경계는 지도에서 끝나지만, 그 경계의 영향은 사람들의 일상과 관계,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침투한다. 개인이 겪는 소외의 배후에 얼마나 오랜 역사가 축적되어 있는지 두 인물의 삶이 증언하고 있다.

독일 출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겪는 권리의 상실을 논하며 ‘권리를 가질 권리’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권리를 선언하는 언어보다 그 권리를 실제로 보장하고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소속의 조건이었다.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존엄과 자유가 보장되리라는 믿음은 정치적 공동체의 보호를 상실하는 순간 취약해진다. 영호가 처한 현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인 삶의 조건으로 드러낸다. 위험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자유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어디에 머물 수 있는지, 자신의 이름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사람에게 국경 너머의 세계는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다. 소냐가 경험하는 소외와 영호의 법적·정치적 불안정성은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비롯되었지만, 두 사람 모두 역사적 조건이 개인의 정체성과 소속감에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소설 속 고향은 그리운 장소인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끊임없이 협상해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익숙한 눈빛을 발견한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소속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순간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인간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 연결이 끊어진 자리에서는 익숙한 언어조차 낯설어지고, 오랫동안 살아온 공간도 온전한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충분히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도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살아갈 토양이 필요하다. 소냐와 영호에게 사랑은 낯선 세계에서 잠시나마 그러한 토양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서로의 결핍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두 사람 사이에 친밀함을 만들어내고, 고향이라는 말은 어느새 지리적 공간을 넘어 한 사람의 존재와 연결된다.

그러나 누군가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안식을 타인의 존재에 의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발견하는 일은 아름답지만, 인간의 관계에는 언제나 서로 다른 기억과 욕망이 개입한다. 사랑이 깊어진다고 해서 두 사람이 완전히 동일한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조차 상대의 내면에 닿을 수 없는 순간이 존재한다. 이때 소설이 제시하는 이방인의 의미는 역사적 추방의 경험을 넘어 친밀한 관계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같은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공유하더라도 마음의 거리가 저절로 좁혀지지는 않으며, 한 사람에게 소중한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깊이를 가늠하는 일은 서로가 감당해 온 외로움을 이해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작품은 소냐와 영호가 공유한 특별한 감정에만 시선을 집중하지 않고, 그들 곁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의 내면까지 살핀다. 악셀 호네트는 『인정을 위한 투쟁』(1992)에서 사랑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중요한 인정 관계로 설명했다. 여기서 인정은 상대를 단순히 애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일을 넘어 그의 고유한 감정과 필요를 존중하는 태도와 관련된다. 소냐의 남편 파샤라는 인물을 통해 사랑의 문제는 누가 더 오랫동안 곁에 있었으며 누구의 감정이 더욱 강렬했는지를 판별하는 일에서 벗어난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외로움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고, 오랜 동행 속에서도 상대가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도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랑이 얼마나 복잡한 상호 이해의 과정인지를 보여준다.

더욱이 사람들은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지나간 관계는 소중한 청춘의 일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 기억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타인의 영역이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감정에 따라 새롭게 해석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내면에서 여전히 생생한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의미로 존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소설 속 25년이라는 간극은 그러한 기억의 비대칭성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같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도 서로 다른 과거가 축적되고, 그 기억들은 현재의 관계에 각기 다른 무게로 작용한다.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 기억을 새롭게 이해하기도 한다. 사랑은 그렇게 서로 다른 과거를 지닌 두 사람이 각자의 경험을 존중하며 하나의 현재를 공유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나간 계절은 인간에게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오는가. 작품에서 계절의 반복은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의 비가역성과 아름다운 대조를 이룬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찾아오지만 그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은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2000년의 겨울과 2025년의 봄 사이에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지나온 나날들이 놓여 있다. 그사이 각자의 삶에는 새로운 관계와 책임, 오래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상들이 쌓여간다.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조차 그 모든 세월을 통과한 현재의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과거를 되돌리는 대신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그 사랑을 경험했던 자신 사이에도 스물다섯 해의 거리가 생겨난다.

어느 계절에 속했던 사람들은 그 계절이 지나간 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은 태어난 땅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의 곁에서도 이방인이 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한때 자신이었던 사람조차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자연의 계절은 일정한 질서에 따라 순환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달력으로 측정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른다. 어떤 겨울은 눈이 모두 녹은 뒤에도 계속되고, 어떤 봄은 이미 도착했으나 아직 봄으로 불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오래전의 이별이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얼굴로 찾아오기도 한다. 떠나온 장소와 헤어진 사람, 그 시절의 자신을 하나씩 떠올리는 동안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한 사람의 내면에서 뒤섞인다. 계절은 이미 여러 번 바뀌었는데, 아직 어느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마음. 그렇게 뒤늦게 도착한 작별 앞에서, 사람은 지나온 계절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도서출판 포레스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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