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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증인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0월
평점 :
과거를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면, 그날의 진실도 되찾을 수 있을까. 건물의 위치와 거리의 폭, 가로등의 밝기까지 똑같이 재현한다면 인간의 기억도 최초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공간을 되돌리는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곳에 다시 선 인간은 이미 과거의 자신과 다르다. 기억에는 이후의 경험이 스며들고, 확신에는 타인의 말과 사회적 판단이 덧씌워진다. 니시무라 교타로의 『7인의 증인』은 이러한 인간 인식의 취약성을 기묘하고도 대담한 실험으로 형상화한다. 한 번 내려진 판결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 살인 현장 전체를 복제한다는 발상. 그 무대 위에서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것은 범인의 정체보다 인간이 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경시청의 도쓰가와 경부는 느닷없이 납치되어 외딴섬에서 깨어난다. 그곳에는 1년 전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거리가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고, 당시 법정에서 증언했던 일곱 사람이 함께 끌려와 있다.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사사키는 살인죄로 복역하다 사망한 아들의 결백을 밝히려는 노인이다. 그는 증인들에게 당시의 위치로 돌아가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다시 진술하도록 강요한다. 이미 법적으로 종결된 사건을 사적인 법정에 소환한 것이다. 그러나 증언이 반복될수록 과거의 확신은 서로 충돌하고, 새로운 살인까지 발생하면서 섬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실험실이자 또 다른 범죄의 현장으로 변모한다.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사실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한다. 직접 보았다는 경험은 전해 들은 이야기보다 확실해 보이며, 생생한 기억은 종종 객관적인 사실과 혼동된다. 그러나 목격은 언제나 제한된 위치에서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창문 너머로 사건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어두운 거리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포착한다. 각자가 확보한 정보는 하나의 사건에 속하지만 그들이 바라본 장면의 범위와 놓친 사실은 서로 다르다. 무엇보다 목격자가 자신이 본 장면에 부여한 의미와 실제로 발생한 사건 사이에는 해석의 거리가 존재한다. 『7인의 증인』은 그 거리를 증인들의 진술과 물리적으로 복원된 현장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심리학자 프레더릭 바틀릿은 『기억』(Remembering, 1932)에서 인간의 기억이 경험을 그대로 저장하고 재생하는 수동적인 기능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의 연구에서는 이야기를 반복해 회상하는 과정에서 낯선 요소들이 생략되거나 익숙한 서사에 맞춰 변형되는 양상이 관찰되었다. 우리는 기존의 지식과 기대, 익숙한 사고의 틀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한다. 따라서 기억의 생생함과 정확성은 반드시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작품 속 증인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진술을 확신하는 모습은 이러한 기억의 특성을 드러낸다. 특히 사진이라는 시각적 기록조차 촬영된 순간의 전후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눈앞의 장면을 고정할 수 있지만, 그 장면이 어떤 행위의 시작인지 결과인지는 별도의 검증을 요구한다. 정확하게 보존된 이미지조차 잘못된 해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더욱 두려운 것은 개인의 불완전한 인식이 사회적 판단의 권위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한 사람의 기억은 오류를 포함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비슷한 내용을 증언하면 그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서로 독립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진술들이 동일한 전제에 의존하고 있다면, 증인의 숫자가 늘어나도 판단의 정확성이 높아진다고 보장할 수 없다. 오히려 다수의 동의가 불확실성을 은폐하고, 최초의 추정을 반박하기 어려운 확신으로 굳힐 수 있다. 1985년 미국에서 성폭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로널드 코튼은 두 피해자의 범인 지목에도 불구하고, 1995년 DNA 검사를 통해 결백이 밝혀졌다. 이렇듯 목격자들이 확신했던 기억과 실제 사건 사이의 불일치는 증언의 일관성이나 단호한 태도만으로 사실의 정확성을 보증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일곱 사람의 증언을 차례로 해체하면서, 증거의 양보다 그것이 형성되고 검증된 과정을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철학자 미란다 프리커는 『인식적 부정의』(Epistemic Injustice, 2007)에서 사회적 편견이 한 사람의 증언에 부여되는 신뢰도를 부당하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증언적 부정의라 명명하며, 발언자의 사회적 위치나 정체성에 대한 선입견이 지식의 전달 과정에서도 차별을 발생시킨다고 보았다. 살인죄로 기소된 청년의 결백 주장과 그를 지목한 목격자들의 진술은 과연 동일한 엄격함으로 검증되었을까. 더구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과거의 행적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현재의 혐의를 판단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누군가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일에는 사실관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물의 이미지가 개입한다. 이때 한 인간은 자신에게 부여된 평가를 넘어 자신의 말을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증언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권한이 곧 타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법정은 이러한 인간적 오류를 통제하기 위해 증거와 절차를 마련한다. 하지만 제도적 절차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오판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판결은 제도적 권위를 지니지만, 그 권위의 정당성은 증거의 충분성과 검증의 엄밀함에 의존한다. 『7인의 증인』에서 이미 종결된 사건이 다시 심판대에 오르는 것은 그 판결을 지탱했던 근거들이 여전히 검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확정된 판단을 존중하는 일과 그 판단의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은 양립할 수 있다.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처벌의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사법적 확신에는 더욱 무거운 증명의 책임이 따른다.
사사키의 행동은 이러한 사법적 문제의식에 복잡한 윤리적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그는 뒤늦게 찾아온 부성의 책임을 막대한 재산과 극단적인 계획으로 대신하려 한다. 무인도에 복원된 거리는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법정인 동시에, 아버지로서 자신의 부재를 보상하려는 속죄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절박함이 납치와 협박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사사키는 부당하다고 여기는 판결을 바로잡으려 하면서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새로운 위험을 초래한다.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법적 절차의 바깥에서 무제한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때, 그 행위는 또 다른 심판의 대상이 된다. 소설은 사사키의 고통을 이해할 여지를 제공하면서도 그가 선택한 방식에 대한 윤리적 판단까지 독자에게 위임한다.
이러한 철학적 긴장은 작품의 독창적인 추리 형식과 정교하게 맞물린다. 무인도라는 폐쇄된 공간, 제한된 인물, 과거 사건의 재연, 이어지는 새로운 살인이라는 장치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도쓰가와가 증언의 모순을 검증하는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목격자의 시선과 사건 현장의 구조를 반복해서 대조하게 만들고, 익숙한 장면을 전혀 다른 가능성 아래 다시 살펴보도록 유도한다. 특히 인공적으로 조성된 거리는 사건을 설명하는 배경을 넘어 추리의 논리를 가시화하는 무대가 된다. 일본 본격 미스터리가 지닌 기발한 발상과 치밀한 논리적 검증의 매력이 이 설정에 응축되어 있다. 추리의 즐거움이 인간의 인식에 대한 철학적 의심과 결합하면서 작품의 지적 긴장도 한층 깊어진다. 철도 미스터리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니시무라 교타로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동의 속도보다 한 장소에 인물들을 고립시켰을 때 발생하는 논리적 긴장에 집중한다. 공간 전체를 하나의 추리 장치로 활용하는 과감한 발상에서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풍부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7인의 증인』이 다루는 문제는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일에서 인간이 타인의 죄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검토하는 일로 확장된다. 과거의 거리는 복원할 수 있어도 그날의 목격을 최초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 인간이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불완전한 기억과 해석,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판단이 개입한다. 그럼에도 진실을 향한 검증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은 우리의 확신이 누군가의 자유와 존엄, 나아가 생사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일곱 개의 증언을 통해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쉽게 잘못된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타인을 심판하는 권한 앞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윤리임을 일깨운다.
✏️도서출판 블루홀식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