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휩쓸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 흔들리는 시간을 지혜롭게 건너는 마음의 철학
나디 미리안 지음, 김지유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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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삶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을까. 예측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우리가 세워둔 질서는 무력해지고, 익숙했던 세계는 어느 날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다. 상실은 준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며, 관계의 변화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온다. 그럼에도 인간은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여긴다. 감정을 능숙하게 다스리고, 불행을 신속하게 극복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는 사람이 성숙한 인간의 표본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삶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는 존재에게 완전한 평온을 요구하는 일은 얼마나 가혹한가. 인간의 취약함은 의지의 부족에서 발생하는 결함일까, 아니면 살아 있다는 사실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조건일까.

독일의 심리치료사 나디 미리안은 『단단히, 휩쓸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에서 고통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그것을 규정하는 사회적 관습을 살핀다. 철학과 심리학, 예술과 실제 삶의 경험을 넘나드는 그의 논의는 고통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로 끌어올린다. 쇼펜하우어에게 인간은 끊임없는 욕망과 결핍의 운동 속에 놓인 존재였으며, 카뮈가 그려낸 시시포스는 완결되지 않는 노동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의식하는 인간의 형상이었다. 서로 다른 사유의 출발점에는 인간이 세계의 모든 조건을 결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 놓여 있다. 고통의 가능성이 사라진 삶을 상상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유한성마저 지워버리게 된다. 삶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일은 자신의 한계를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는 데 유난히 인색하다. 슬픔에는 적당한 기간이 정해지고, 좌절에는 극복의 서사가 요구되며, 불안은 관리해야 할 심리적 문제로 분류된다. 누군가의 상실 앞에서 우리는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허락하기보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저자가 비판하는 자기최적화의 문화 속에서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내면에까지 침투한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분석한 성과주체는 끊임없는 자기개선의 요구를 내면화한 인간이다. 이러한 성과의 논리가 감정의 영역에까지 확장되면서, 슬픔과 불안조차 관리하고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행복은 추구해야 할 성과로, 회복은 증명해야 할 능력으로 변모한다. 자신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일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고통을 겪는 시간마저 생산성과 효율의 척도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의 불행을 온전히 경험할 자유를 잃어간다.

타인의 삶을 끊임없이 목격하는 환경은 이러한 압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SNS에 펼쳐진 타인의 성취와 행복은 개인의 삶을 측정하는 비공식적인 기준이 되고, 서로 다른 삶의 조건과 시간은 어느새 앞서거나 뒤처졌다는 평가의 기준으로 바뀐다. 누군가는 이미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데 자신은 여전히 지난 상실을 애도하고 있다는 사실, 누군가는 실패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신은 아직 두려움 속에 있다는 사실이 불안을 증폭시킨다. 사회적 비교의 문제는 단순한 열등감에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속도를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경험을 해석할 권한까지 외부에 맡기게 된다. 고통의 크기와 회복의 속도를 비교하는 행위에는 서로 다른 삶을 동일한 척도로 환산할 수 있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그러나 상실의 무게는 객관적인 순위로 측정할 수 없으며, 감정이 통과하는 시간에도 보편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다시 살펴보는 회복탄력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회복탄력성은 흔히 역경을 겪은 뒤 빠르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능력으로 이해되지만, 인간의 회복은 언제나 이전의 모습으로 복귀하는 과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상실은 삶의 조건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키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회복은 그렇게 달라진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관계를 다시 조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고통의 개별성은 여기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필요한 시간이 다르며, 회복의 방식 또한 각자의 경험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슬픔을 충분히 경험하는 시간은 정체의 증거로 환산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회복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책의 띠지에 적힌 이 문장은 강인함의 의미를 다시 검토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 사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어려움을 해결하는 사람을 강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 아래에서 인간은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에너지를 소모한다. 강인함을 고통에 대한 무감각으로 이해한다면, 가장 인간적인 감정들이 오히려 극복해야 할 약점으로 취급될 것이다.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기에 상처받고,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기에 상실을 두려워한다. 취약함은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신의 슬픔을 인정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며,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삶을 이어가는 능력 또한 강인함의 중요한 형태다. 그 힘은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렇다면 휩쓸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데 주목했다. 타인의 판단과 이미 발생한 사건은 개인의 의지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 속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인지는 여전히 사유할 수 있다. 여기서 수용은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뜻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사건을 인정하는 일과 부당한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자신의 중심을 지킨다는 것 역시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거나 관계에서 철수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타인의 평가를 듣되 그것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권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외부의 속도에 자극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필요한 시간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주체성은 세계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려는 욕망을 내려놓을 때, 주어진 현실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으로 구체화된다.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는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 곧 고통을 통해 배운다는 사유는 상처가 반드시 성장을 가져오는가 하는 오래된 물음을 다시 불러온다. 인간은 상실을 경험하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감각을 획득하기도 한다. 예술이 개인의 고통을 표현과 소통의 형식으로 전환하는 과정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 배움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상처를 경험한 사람에게 반드시 성장의 결과를 요구할 수도 없다. 고통을 통해 성숙해져야 한다는 명령은 행복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회의 요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은 오랫동안 이해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상실은 뚜렷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권리가 있다. 고통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혹은 당장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유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를 미리 알지 못한다. 평온한 시절에는 사소하게 여겼던 사건이 삶 전체를 뒤흔들기도 하고, 도저히 견딜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시간을 지나 다시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강인함은 미래의 불행을 대비해 미리 갖추어둘 수 있는 완성된 성질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삶이 예측을 벗어날 때마다 자신의 한계를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과 관계된다. 나디 미리안이 이야기하는 회복의 가능성 또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갈 능력이 있으며, 그 능력은 언제나 확신이나 용기의 형태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도 타인과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또 다른 강인함을 발견한다. 삶은 그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 않았으며, 인간은 그 약속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배워왔다.

✏️소정의 원고료와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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