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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밖 감정
성해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지도 위의 경계선은 언제부터 삶의 가능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을까.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에는 기회와 성공이 특정한 장소에 집중되어 있다는 오랜 인식이 배어 있다. 어느 도시에서는 저녁 식사 후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문화 행사가 다른 도시에서는 하루의 일정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된다. 같은 책을 좋아하고 같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그 마음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거주지에 따라 달라진다. 문화적 풍요가 특정한 장소에 집중될수록 취향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지리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서울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도시를 지칭하는 동시에 기회와 가능성의 척도로도 작동한다.
여섯 작가가 참여한 『서울 밖 감정』은 서울을 향한 서로 다른 감정의 궤적을 따라간다. 서울을 떠난 사람과 서울에 들어온 사람, 그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을 통해 도시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들의 기억에는 동경과 모멸, 자유와 외로움, 안도와 불안이 뒤섞여 있다. 한 도시를 향한 감정이 이토록 복잡한 까닭은 공간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또한 단일한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질서는 개인의 욕망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축적된 경험은 다시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놓는다.
성해나의 <탑승 시 손을 흔드시오>에서 버스는 지역 간 불균형을 드러내는 가장 일상적인 사물이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들어야 멈추는 버스와 승객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차하는 버스 사이에는 서로 다른 생활의 규칙이 존재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버스를 놓쳐도 곧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한 번의 놓침이 하루의 일정을 뒤흔든다. 불편을 오래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익숙함은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동시에 더 나은 조건을 상상할 기회마저 좁힌다.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정도에 따라 개인이 사용하는 시간과 선택의 범위도 달라진다는 사실은 지역의 격차를 단순한 편의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게 만든다.
공간이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방식은 주거에서도 발견된다. 이기호의 <두 번째 만남>에는 구기동의 열악한 자취방과 결로 문제를 둘러싼 분쟁, 법정에서 들었던 ‘가난한 작가’라는 말이 등장한다. 경제적 형편이 타인의 언어를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으로 규정되는 순간, 가난은 생활의 조건을 넘어 존엄을 침범하는 경험이 된다. 김현의 <장면들>에서 집은 또 다른 의미를 얻는다. 지하와 반지하를 거쳐 서울 밖에 마련한 집에 손님방이 생기면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던 공간은 타인을 맞이하는 장소로 확장된다. 주거의 여유는 면적이나 소유의 문제를 넘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과 연결된다. 대학 시절 병원 실습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고시원은 몸 하나를 눕히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하루의 긴장을 풀어야 할 방에서 오히려 숨이 막히던 경험은 집이 인간에게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안온함을 돌아보게 한다. 공간의 크기는 신체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감각은 마음의 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에게는 휴식조차 어려운 방이 주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초대할 여유가 허락된다. 집의 형태가 곧 삶의 형태를 결정하지는 않더라도, 그 안에서 허용되는 일상의 폭은 분명 다르다.
도시가 인간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은 물질적인 환경에서 그치지 않는다. 임선우의 <너도 어서!>에서 서울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앞서 나가라고 재촉하는 도시다. 더 높은 학력과 소득, 더 좋은 직장과 집을 향한 욕망은 개인의 열망처럼 느껴지지만, 그 기준은 이미 사회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목소리가 반복될수록 인간은 자신의 속도를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의 감각이 창작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작가의 고백은 도시의 욕망을 쉽게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사회가 형성한 열망이라 해도 그것을 통과하며 이루어낸 성취에는 개인의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호정의 <새소리>는 그와 다른 방향에서 도시의 자유를 살핀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살던 집을 떠나 혼자만의 공간을 얻은 뒤 찾아온 고요는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도시의 익명성은 사람들을 고립시키지만,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들여다보지 않는 거리 또한 제공한다. 관심이 언제나 배려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걱정과 애정에서 비롯된 말조차 상대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고 정당화해야 한다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타인을 존중하는 일에는 그가 아직 말하지 않은 사정을 섣불리 해석하지 않는 태도도 포함된다. 외로움과 자유가 서로의 곁에 놓일 수 있다는 현호정의 인식은 공동체의 친밀함을 무조건적인 미덕으로 받아들이던 시선을 다시 살피게 한다.
장소와 인간의 관계는 기억 속에서 더욱 복잡해진다. 김화진의 <둘로 나뉘어 있다는 감각>에서 남태령역과 선바위역은 서울의 자신과 안양의 자신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가 된다. 같은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뿐인데, 특정한 역을 통과하는 순간 자신이 속한 세계가 달라진다고 느낀다. 그가 동경하던 문화적 공간에 가까워지기 위해 서울로 이주한 뒤에도 소속의 감각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거주지는 바뀔 수 있어도 그곳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는 여전히 일상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환경심리학자 스캐넬과 기퍼드(Scannell & Gifford, 2010)는 논문 〈장소애착의 정의: 삼차원적 구성 체계(Defining Place Attachment: A Tripartite Organizing Framework)〉에서 장소애착을 인간과 심리적 과정, 장소라는 세 차원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장소에 대한 애착은 개인과 공동체가 부여하는 의미, 감정과 기억을 비롯한 인지적 경험,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히며 형성된다. 따라서 같은 장소를 경험하더라도 그곳에 부여하는 의미는 서로 다를 수 있으며, 한 사람이 장소와 맺는 관계 또한 축적된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연이 지천이었던 나의 고향에서는 나무와 하늘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등하굣길이나 밤 산책에서 무심히 올려다보던 하늘은 다른 도시에서 생활하게 된 뒤에야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고향의 밤을 밝히던 주황색 가로등은 낯선 도시의 흰 불빛 아래에서 오래전의 색채로 되살아난다. 저녁이면 고요한 거리로 밥 짓는 소리와 냄새가 흘러나왔고, 밤이 깊어지면 눈이 내려앉는 소리마저 들릴 만큼 사위가 잠잠한 나의 고향. 도시의 밤이 여전히 사람들의 발걸음과 소음으로 이어질 때, 고향의 밤은 하루의 생활을 천천히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건물 사이에서 문득 하늘을 바라볼 때면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떠난 장소는 기억 속에서 새롭게 읽힌다. 그리움의 대상에는 고향의 풍경뿐 아니라 그 풍경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던 과거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장소는 눈에 보이는 풍경뿐 아니라 빛의 색과 소리, 냄새와 침묵을 통해서도 한 사람의 내면에 새겨진다.
그러나 주황빛 가로등 아래에서 누렸던 고요가 그곳의 모든 시간을 다정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자연과 친숙했던 생활에는 촘촘한 인간관계가 있었고, 더 넓은 도시에서는 자연과의 거리가 멀어진 대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여지가 생겼다. 친밀함이 안정감을 제공하는 만큼 개인을 평가하는 시선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며, 익명성은 외로움을 동반하면서도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낼 기회를 허락한다. 어느 장소가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유의 형태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같은 장소로 돌아간다고 해서 과거와 동일한 감정을 경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장소를 기억하는 사람 역시 시간 속에서 변화해왔으므로.
결국 『서울 밖 감정』의 여섯 산문이 함께 보여주는 것은 장소와 인간이 서로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서울이라는 중심은 기회와 자원의 배분을 통해 삶의 조건을 바꾸고, 개인은 그 안에서 욕망과 좌절, 애정과 소외를 경험한다. 그러나 한 장소의 의미는 그곳에 주어진 조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지에 따라 소속의 감각도 달라진다. 그곳에서 누리는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기울이는 관심과 책임 역시 장소를 삶의 일부로 만드는 요소가 된다. 서울의 안과 밖을 가르는 선은 지도 위에 선명하게 그어져 있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 경계를 따라 나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 서울은 도달하고 싶은 세계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떠나야만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던 장소다. 같은 도시에서도 누군가는 기회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잃는다. 장소에 대한 판단은 삶의 어느 시기에, 어떤 조건으로 그곳을 통과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한때 자신을 가두었던 거리가 훗날에는 돌아가고 싶은 풍경이 되고, 그리워하던 도시의 불빛이 어느 날에는 피로의 색으로 번진다. 장소는 그대로여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안과 밖을 다시 그려나간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하니포터 13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