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도 꽃도 필요 없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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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래도 좋다고 말하기까지 제법 많은 것을 헤아린다. 잃어버린 것과 아직 포기하지 못한 것, 어떻게 해도 달라질 기미가 없는 사정들을 차례로 세어보다가 어느 순간 계산을 그만둔다. 그러나 마음의 셈법은 영 엉터리여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던 사람이 하찮은 일에 발끈하고 아무런 기대도 없다던 사람이 내일의 일을 궁금해한다. 체념에도 잔돈이 생기는 것이다. 삶에 대한 미련은 대개 이런 식으로 정확한 액수를 숨긴다.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면서, 인간은 자기 몫의 하루를 꼬박꼬박 소비한다.

아사쿠라 가스미의 『관도 꽃도 필요 없다』에는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하루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불안정한 노동과 노후의 불안, 오래된 관계의 변화, 계획에서 벗어난 미래와 가족의 책임. 다섯 편의 소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사정들을 품고 있지만, 그 사정들이 흘러가는 방향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인물들은 대단한 결심 없이 이상한 선택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타인에게 뜻밖의 말을 건넨다. 삶이란 원래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듯, 작가는 그들의 어설픈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한다. 비극적인 사정 속에서 불쑥 우스운 장면이 튀어나오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의 뒤편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배어난다.

아사쿠라 가스미의 소설에서 인물의 성격은 대개 그가 처한 사정만큼이나 그 사정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걱정은 걱정대로 하면서 엉뚱한 데 정신을 팔고, 오래 묵은 감정은 적당한 이름을 얻기도 전에 말이나 행동으로 새어 나온다. 작가는 이 어긋난 순서를 그대로 따른다. 심리의 원인을 추적해 행동의 의미를 확정하기보다, 행동이 먼저 벌어지고 감정이 뒤늦게 따라오는 인간의 불규칙한 리듬을 살린다. 인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주어지지만, 그 정보만으로 인물의 전부를 소유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사정을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을 안다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끼어 있다.

특히 이 소설집에서 비극과 희극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에도 생활의 구체적인 계산이 따라붙고, 심각한 사연은 뜻밖의 우회로를 거쳐 엉뚱한 장면에 도착한다. 그 모습은 때로 우습고 때로 처연하다. 작가가 구사하는 유머에는 웃음의 대상을 쉽게 지정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인물의 행동이 우스운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사정이 우스운지, 혹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는 독자의 처지가 우스운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희극의 형식 안으로 들어온 불행은 잠시 낯선 표정을 짓는다. 웃음이 터진 자리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정들이 널려 있다. 독자는 웃음의 뒷맛에 섞인 씁쓸함까지 삼키게 된다.

그런 까닭에 작품 곳곳에서 감지되는 ‘아무래도 좋다’라는 태도에는 일정한 온도가 없다. 어떤 순간에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체념이고, 어떤 순간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요구를 잠시 밀어내는 방어이며, 또 어떤 순간에는 무엇이든 반드시 의미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의 해방처럼 들린다. 이 말은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진술하기보다 그 상태를 잠정적으로 처리하는 데 쓰인다. 인간은 감정을 일일이 분류하며 살 수 없으므로, 때때로 여러 사정을 하나의 말 아래 대충 밀어 넣는다.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에는 그렇게 처리된 마음의 잡동사니가 쌓여 있다. 그 안에는 이미 식어버린 욕망도 있고, 아직 손대기 어려운 상처도 있다.

어떻게든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생존의 경험에서 빌려온 서툰 낙관이다. 지금까지의 생존이 앞으로의 안녕을 보증해 줄 리 없지만, 인간은 자신의 이력에서 다음 하루를 살아갈 이유를 빌려온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과거의 생존을 증거 삼아 현재를 통과한다. 이 허술한 추론에는 인간의 끈질김과 취약함이 함께 들어 있다. 어떻게든 되겠다는 말은 어떻게든 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감춘 채 낙관의 문법을 빌린다. 그 느긋한 어조에는 내일의 불안을 잠시 속여 넘기려는 궁여지책이 배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긍정은 유난히 낮은 목소리로 발화된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기에도 피곤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허락하는 하루치의 신용이다.

물론 그 신용에는 사회가 떠넘긴 빚도 섞여 있다.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과 아직 미래를 선택해야 할 나이의 사람이 비슷한 체념을 배운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씁쓸하다. 누구에게나 내일은 오지만,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여유는 불균등하게 배분된다. 어떤 사람은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당장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가능성을 지운다. 그 차이가 개인의 결심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질 때, 생존은 지나치게 손쉬운 미덕이 된다. 때로 체념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세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이 된다. 아사쿠라 가스미의 인물들은 바로 이 모호한 영역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무심함에는 상처가 있고, 그들의 집착에는 생의 의지가 있으며, 그들의 우스운 행동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절박함이 뒤따른다.

다섯 편을 묶는 것은 공통된 교훈보다 인물을 대하는 작가의 일정한 거리감이다. 파견 사무소와 커피숍, 낡은 맨션과 풀밭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건의 무대이면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장소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 타인의 시야에서는 사소한 풍경으로 지나간다. 소설은 그 시야의 차이를 세밀하게 조절한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인물의 사정은 구체화되지만, 그의 모든 행동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독자에게 인물의 속사정을 들여다볼 자리를 내주면서도 그를 완전히 판정할 권한까지 넘기지는 않는다. 연민과 판단이 쉽게 결탁하는 자리에서, 이 문학은 인간의 불가해함을 하나의 개성으로 보존한다.

『관도 꽃도 필요 없다』라는 제목에는 장례식의 엄숙함을 슬쩍 비트는 말맛이 있다. 관과 꽃은 죽음을 수습하고 애도하는 데 쓰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비용과 절차, 남겨질 사람들의 수고이기도 하다.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에도 생활의 형편이 끼어드는 것이다. 그러니 관도 꽃도 필요 없다는 말에는 장례의 형식을 거부하는 고집과 그 형식에 들일 여력마저 헤아려야 하는 현실이 동시에 묻어난다. 필요 없다는 선언이 언제나 충분히 가진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일 수는 없다. 때로는 원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오래 줄여온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에 붙이는 가격표처럼 들린다. 그런데 관도 꽃도 필요 없다는 말은 이상할 만큼 구체적이다. 정말 아무래도 좋다면 굳이 두 가지를 골라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인간은 세상일을 대강 포기하면서도 자신이 싫어하는 것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죽음이라는 가장 확정적인 사건 앞에서도 취향과 성미, 사소한 고집이 고개를 든다. 장례의 장식을 덜어내려는 제목에서 도리어 살아 있는 사람의 생활감이 짙어지는 까닭이다. 관과 꽃이 빠진 자리에는 한평생 무언가를 염려하고 계산하고 거절해 온 사람의 습관이 놓인다. 죽음을 다루는 문장이 이렇게까지 생활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고, 그 우스움에는 차마 웃어넘길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삶의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감당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적당한 값을 치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어떤 날에는 기꺼이 지불하고, 어떤 날에는 가진 것을 몽땅 털어도 모자란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좋다고 말한다. 그 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 없이, 잠시 계산을 멈추기 위해서. 아사쿠라 가스미는 그 짧은 중단과 다시 시작되는 생활을 지켜본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체념하고, 그 체념을 조금씩 어기면서 살아간다. 관도 꽃도 필요 없다는 사람에게도 아직 하루치의 생활이 있다.

✏️도서출판 열림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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