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도 사랑을 아는데 - 세상을 연결하는 가장 작은 생명들
김응빈 지음 / 사회평론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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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생명들은 인간이 부여한 감정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의 선의를 기대하지도 않고,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고마움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연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해 왔다. 꽃의 개화를 기다림으로, 낙엽의 추락을 이별로, 서로 기대어 자라는 나무를 우정으로 읽는다. 미생물의 세계에도 인간의 언어가 스며들 수 있을까. 세균에게 사랑을 묻는 김응빈의 제목은 생물학과 감정 사이에 제법 엉뚱한 통로를 낸다.

『세균도 사랑을 아는데』에서 미생물들은 한없이 부지런하고 대체로 계산적이다. 나무의 뿌리 주변에 모여든 세균은 식물과 물질을 주고받고, 곰팡이와 미세조류는 각자가 가진 능력을 결합해 살아간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유기물은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고, 미생물의 활동은 식물이 영양분을 이용하는 데 관여한다.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질 때 관계는 지속되지만, 환경이 달라지면 그 양상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들에게 협력이란 아름다운 성품의 발현보다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활동이다. 인간이 그 모습을 보고 우정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미생물들은 그저 살아갈 방법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생존의 셈법이 언제나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곰팡이가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생산한다는 사실은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조금 다른 감각을 요구한다. 페니실린은 인간에게 질병을 치료하는 약물이지만, 그것이 발견된 생물학적 맥락에는 미생물 사이의 경쟁이 있다. 한쪽의 생존에 유리한 작용이 다른 쪽의 활동을 방해하는 일도 자연에서는 얼마든지 벌어진다. 인간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물질에 구원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같은 물질을 마주한 미생물에게는 전혀 다른 결과가 기다린다. 생태계의 어느 장면을 아름답다고 부르고 어느 장면을 잔혹하다고 판단할 것인지는 결국 관찰자의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공생을 이야기할 때 인간이 떠올리는 평화로운 이미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대개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생물학적 공생은 인간의 도덕적 감정과 별개로 성립한다. 기생과 경쟁, 협력과 의존은 생명체들이 서로의 존재에 관여하는 여러 방식이다. 생존을 위한 관계에는 상대를 이롭게 하는 작용도, 해를 끼치는 작용도 존재한다. 자연의 복잡함을 이해하려면 그 안에서 인간이 보고 싶은 윤리적 장면만 골라내는 습관부터 살펴야 한다. 미생물의 세계가 보여주는 것은 화합의 이상향보다 서로 다른 생명들이 동일한 환경을 점유하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접촉과 마찰이다.

그 접촉이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장소는 의외로 인간 자신의 몸이다. 장과 피부, 구강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인간의 생리적 활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내미생물의 대사산물은 숙주의 생리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면역계는 다양한 미생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하고 조절된다. 인간은 자신의 몸을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다른 생명체들의 활동이 복잡하게 관여한다. 몸속의 미생물들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준다. 인간은 자신의 몸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명 활동의 주도권까지 독점하지는 못한다. 생물학자 스콧 길버트와 동료 연구자들은 2012년 발표한 논문 「A Symbiotic View of Life: We Have Never Been Individuals」에서 생명체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규정해 온 생물학의 오랜 관습을 재검토한다. 그들의 논의에서 개체란 자신의 세포만으로 완결되는 단위가 아니라, 다른 종의 생명체들과 생리적 기능을 나누며 유지되는 복합적인 존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세포와 미생물의 세포는 서로 구별되지만, 그 경계가 생명 활동의 단절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면역계 역시 외부의 모든 존재를 일률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허용할 것인지 조절하는 복잡한 과정 속에서 신체의 안정성이 유지된다. 인간은 흔히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경계를 확고하게 그으려 하지만, 생물학적 개체의 경계는 물질과 신호가 끊임없이 오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몸 안에 사는 미생물을 모두 낯선 침입자로 여긴다면, 인간의 건강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살아 있는 몸이 수많은 생명의 활동으로 유지된다면, 죽은 몸 역시 다른 생명들의 활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죽은 생명체의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도 미생물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 퇴비화는 이 생물학적 작용을 장례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례다. 죽은 몸을 구성하던 물질이 미생물의 활동을 거쳐 변화하고, 일부는 다른 생명체가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순환한다. 인간에게 죽음은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 관계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사건이다. 그러나 자연의 물질적 과정에서는 그 몸을 이루던 성분들이 다른 형태로 이동한다. 삶의 종결과 물질의 순환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동시에 성립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동시에 한 사람을 구성했던 물질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향하는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분해자는 인간이 버려졌거나 사라졌다고 여기는 물질을 다른 생물학적 과정에 편입시킨다. 낙엽이 썩고 죽은 나무가 분해되는 동안 물질은 형태를 바꾸며 이동한다. 한 생명체의 몸은 그 자신만의 역사로 완성되지 않는다. 탄생 이전부터 존재했던 물질들이 잠시 하나의 개체를 이루었다가 다시 흩어지는 과정에는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길이가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순환이 죽음의 상실을 위로하거나 사라진 존재를 되돌려 주지는 않는다. 생태계의 물질적 지속과 한 인간의 부재는 서로를 상쇄하지 않은 채 나란히 존재한다.

인간의 감정으로는 쉽게 헤아리기 어려운 이러한 생명의 활동을, 김응빈은 유머와 비유를 통해 익숙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세균에게 ‘혼밥’이라는 말을 붙이고 미생물들의 생존을 인간의 일상처럼 이야기하는 태도에는 연구 대상을 오래 바라본 사람 특유의 친밀함이 배어 있다. 전문적인 용어를 익숙한 장면에 연결하는 설명은 독자가 생물학적 현상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면서도 미생물의 생존이 인간의 감정과 동일하게 작동한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감각적인 책의 디자인까지 더해져 낯선 학문의 문턱이 한층 낮아진다. 이토록 감성적인 미생물학자라니.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설명하는 문장에서 인간의 생활과 관계를 향한 관심까지 발견하게 되는 경험은 제법 특별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언어가 반가운 까닭은 미생물이 인간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면서도 좀처럼 친숙한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알고, 몸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일은 드물다. 저자는 이러한 낯섦 사이에 인간의 언어를 들여놓는다. 세균의 협력을 사랑이라 부르고, 먹이를 얻는 방식을 식사에 빗대는 순간 현미경 너머의 생명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이웃처럼 가까워진다. 생물학적 현상에 일상의 어휘를 입히는 방식은 낯선 세계를 익숙한 감각으로 번역하는 일이며, 독자가 미생물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마련한 다정한 초대이기도 하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존재들에게 생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그 작은 상상력이 생명에 대한 이해를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 저자는 유쾌한 문장들로 증명한다.

인간이 미생물의 생활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낯선 생명에게 관심을 갖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우리는 자연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발견하려 하고, 때로는 자연의 모습으로 인간의 삶을 설명하려 한다. 익숙한 감정과 언어를 빌려 다른 생명의 활동을 상상하는 동안, 평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생존의 조건들이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을 얻는다. 나무의 뿌리와 미생물의 활동, 인간의 장내 생태계, 죽은 생명체를 분해하는 작은 존재들의 노동은 한 개체의 삶이 얼마나 많은 외부의 작용과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그 관계를 사랑이라 부를 것인지는 인간의 언어가 결정할 문제다. 다만 그 관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인간의 감정과 무관하게 성립한다.

『세균도 사랑을 아는데』의 다정함은 미생물을 인간처럼 묘사하는 표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오래 관찰하고, 그 낯선 생존의 원리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옮기려는 저자의 태도에도 다정함이 있다. 인간이 세균에게 사랑을 가르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세균의 삶을 이해하려는 인간에게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관계의 형식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연의 생명들은 인간의 감정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사유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잠시 빌려 미생물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그 단어에 미처 담지 못했던 복잡한 생존의 모습까지 발견하는 것.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그 낯선 왕복에 있다.

✏️도서출판 사회평론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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