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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짐승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평점 :
세 개의 몸이 하나의 허기를 느끼고, 세 개의 입이 같은 소리를 내며, 서로 다른 심장이 하나의 박자로 뛰던 시절이 있다. 어린 형제들에게 세계는 아직 각자의 몫으로 나뉘지 않았다. 배고픔도 장난도 두려움도 함께 겪었으며, 누구의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해 누구에게로 옮겨 갔는지 구분할 필요조차 없었다. 저스틴 토레스의 『우리, 짐승들』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던 세 형제의 유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몸이 타인의 몸과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서로 다른 욕망을 품을 수 있음을 알아간다. 가장 가까운 존재들과 공유했던 세계가 더 이상 자신의 전부를 설명해 주지 못하는 순간, 어린 시절의 ‘우리’는 이전과 같은 의미로 지속될 수 없다.
푸에르토리코계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세 형제는 뉴욕 북부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다. 부모는 충분히 어른이 되기도 전에 부모가 되었고, 아이들은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스스로를 돌보는 법부터 익힌다. 이 집에서 사랑은 따뜻한 포옹과 거친 손길을 번갈아 입는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웃음을 나누다가도 폭력을 행사하며, 어머니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면서도 자신의 절망을 그들에게 의탁한다. 가족의 애정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그 애정이 언제나 안전한 형태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상처받은 몸으로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반복된 경험은 세 형제의 몸짓과 언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조금씩 스며든다.
사랑과 폭력이 뒤섞인 환경에서 아이들은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일찍 깨닫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맡겨야 한다. 그러나 보호와 위협이 같은 손에서 비롯될 때, 아이들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이들에게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장소이자 언제든 낯설어질 수 있는 세계다. 그리고 가난은 그 불안정함을 더욱 깊게 만든다. 불규칙한 노동과 결핍은 부모의 몸을 지치게 하고, 충분히 돌봄받지 못한 아이들은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하루를 견딘다. 세 형제가 그토록 강하게 결속하는 데에는 사랑뿐 아니라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깃들어 있다.
그러한 형제들을 작가는 ‘짐승들’이라고 부른다. 원제 We the Animals에는 집단의 이름을 선언하는 듯한 힘이 있다. 미국 헌법의 첫머리인 We the People을 연상시키는 이 어구에서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짐승들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오래된 위계 속에서 짐승은 흔히 본능에 충실하고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세 형제의 동물성은 그들을 비하하는 언어로 작동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아 달려들고, 기쁘면 소리를 지르며, 서로의 몸을 밀치고 끌어안는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단정한 몸가짐보다 생존과 욕망의 리듬이 먼저 흐른다. 짐승이라는 이름은 거친 유년을 설명하면서도, 인간에게 허락된 삶의 형태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되묻게 한다.
그러나 같은 짐승으로 살아가던 형제들도 영원히 같은 방향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하나의 몸처럼 움직였던 세 사람이 성장하면서 서로 다른 감각과 욕망을 갖게 된다. 특히 막내에게는 형들이 공유하는 남성성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내면이 자라난다. 그는 형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자신의 일부로 간직하면서도,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발견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지만, 그 관계가 허락하는 모습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일에는 때때로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이해를 벗어나는 경험이 뒤따른다. 가족에게 속한다는 감각과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욕망은 그렇게 한 사람의 내부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 소설의 동물성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처음의 짐승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생명들이었다면, 성장한 막내를 둘러싼 세계에서는 어떤 몸과 욕망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규범이 한층 엄격하게 작동한다. 인간은 사회적 질서 안에서 자신의 몸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그 질서가 승인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누가 그 정상성의 기준을 정하는가. 같은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서로의 모든 차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막내의 퀴어 정체성은 가족이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남성성과 충돌하고, 그가 속해 있던 공동체의 사랑이 어떤 조건 아래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감추어야 한다면, 그 사랑은 한 인간의 어디까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는 소설에 겹쳐진 인종과 계급의 조건을 통해 더욱 복잡해진다. 세 형제는 푸에르토리코계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경제적으로도 사회의 중심에서 떨어진 삶을 살아간다. 가난과 혼혈이라는 조건은 이들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막내의 성적 정체성은 그 위에 또 다른 차이를 더한다. 태어난 집의 형편과 물려받은 혈통, 몸에 밴 습관과 뒤늦게 알아차린 욕망은 서로 얽히며 한 사람의 삶에 저마다 다른 흔적을 새긴다. 그 흔적들은 같은 몸 안에 축적되지만, 세상은 그중 일부만을 골라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한다. 막내가 경험하는 소외를 이해하려면 그가 누구를 사랑하는지뿐 아니라, 어떤 가족 안에서 어떤 몸으로 성장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세계는 처음부터 여러 경계가 포개진 장소였으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은 그 경계들의 의미를 새롭게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저스틴 토레스가 이 이야기를 구성한 방식 역시 이러한 성장의 경험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소설은 유년의 사건들을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로 정돈하기보다 짧고 감각적인 장면들로 나누어 제시한다. 어떤 기억은 몸에 가해진 충격으로, 어떤 기억은 웃음소리와 춤의 리듬으로, 또 다른 기억은 설명하기 어려운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되살아난다. 삶의 모든 순간이 같은 밀도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며, 어린 시절의 경험은 사건의 순서보다 그때의 감각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파편적인 서술은 이러한 기억의 성질을 문학의 형식으로 옮겨 놓는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공백에는 시간이 흐르고, 독자는 그 생략된 시간 속에서 세 형제가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을 감지한다. 이러한 형식적 관심은 이후 발표한 『암전들』에서 더욱 대담하게 확장된다. 『우리, 짐승들』이 유년의 기억을 짧은 장면들로 엮었다면, 『암전들』은 사진과 역사적 기록, 검게 지워진 문서와 이야기의 조각들을 교차시키며 지워진 퀴어의 역사를 더듬는다. 전자가 개인의 기억에 생긴 공백을 감각으로 채운다면, 후자는 기록에서 사라진 존재들을 그 공백 자체를 통해 드러낸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이 작품을 자서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했다. 이 태도는 『우리, 짐승들』의 문학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인간은 지나온 경험을 선택하고 배열하며, 그것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자신의 삶을 이해한다. 허구는 이러한 재구성에 더 넓은 가능성을 부여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벗어나, 경험이 한 인간의 내부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삶을 소설적 사건으로 꾸미는 방식을 거부하고, 실제로 들었던 말과 생활의 세부를 통해 한 개인과 계급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다. 한쪽이 허구를 통해 경험의 감각을 되살린다면, 다른 한쪽은 사실에 대한 충실함을 통해 삶의 사회적 실체에 접근한다. 서로 다른 방법이지만, 개인의 경험이 문학으로 옮겨지는 순간 그 경험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토레스가 선택한 파편적인 형식과 서정적인 문장은 유년의 사실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시간을 통과한 존재가 자신의 과거를 어떤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소설의 목소리가 변화하는 방식이다. 초반의 세 형제는 함께 먹고 뛰고 소리치는 ‘우리’의 언어로 묶여 있다. 그러나 막내의 감각과 욕망이 뚜렷해질수록 집단의 목소리 안에서 개인의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이는 서술 기법의 변화이면서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막내는 자신을 형성한 가족의 기억을 지울 수 없지만, 그 기억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점차 자신의 것이 된다. 어린 시절의 ‘우리’가 경험의 주체였다면, 성장한 ‘나’는 그 경험을 다시 서술하는 주체가 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 짐승들』에서 성장은 독립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한때 세 형제는 서로의 허기를 알아보는 데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같은 식탁에 달려들고, 같은 두려움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서로의 웃음소리를 자기 것처럼 터뜨렸다. 그러나 같은 집에서 자란 사람들이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가장 깊이 사랑했던 세계가 자신의 모든 모습을 허락하지 않을 때, 익숙한 체온조차 낯선 감각으로 바뀐다. 막내는 그 세계의 언어를 배웠고, 그 언어로는 발음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 개의 심장이 같은 박자로 뛰던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 리듬을 기억하는 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제 그 몸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소리를 조금씩 익혀 간다. 누구의 박자에도 맞추지 않은 채,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도서출판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