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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
우샤오러 지음, 정세경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9월
평점 :
인간의 생애에는 보이지 않는 마감일이 있다. 몇 살에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뒤에는 안정된 직업을 얻으며, 정해진 시기에는 어른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성적과 순위, 합격과 탈락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삶은 언제나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가 된다. 이 질서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속도를 요구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에는 일정한 눈금이 없다. 어떤 아이에게 열일곱 살은 무사히 지나온 한 해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벗어나기 어려운 계절이다. 사회가 측정하는 성장의 속도와 한 인간이 실제로 견뎌온 시간 사이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놓여 있을까.
방과 후 38분, 명문 여학교의 학생 쑤밍쉬안이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린다. 제자의 죽음을 마주한 교사 우이광에게 그날의 사건은 오래전 자신의 유년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교사로서 사건의 책임을 요구받는 현재와 누군가의 보호가 절실했던 과거가 교차하면서, 살아남은 소녀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작가는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는 서사에 우이광의 성장 과정을 겹쳐 놓는다. 그 결과 한 사람의 비극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가족과 학교, 사회가 아이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해 왔는지를 살피는 일로 확장된다.
실제로 우샤오러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에는 2019년과 2020년 타이완대학교와 자신의 모교인 타이중여고에서 잇따라 발생한 학생들의 죽음이 있었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개별 사건의 비극성만큼이나, 그 죽음에 자신을 겹쳐 보던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다만 소설은 특정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기록이 아니며, 쑤밍쉬안의 삶을 현실의 어느 한 학생과 동일시할 수도 없다. 실제의 비극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은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한 사람이 살아갈 의지를 잃어가는 사회적 조건을 문학의 언어로 탐색한다.
우이광의 어린 시절에는 사랑을 얻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들이 있었다. 어머니가 요구하는 성취는 딸의 미래를 위한 약속이었으나, 그 약속을 지키는 책임은 언제나 아이에게 주어졌다. 좋은 성적과 올바른 선택,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향한 요구 속에서 우이광은 자신의 감정보다 기대에 부응하는 능력을 먼저 길러야만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과 결합하고, 부모의 기대는 점차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아이가 자신을 이해하기도 전에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자기인식은 성취가 멈추는 순간 자신의 가치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심리학자 졸린 E. 헤인스와 니컬라 S. 슈테는 2023년 발표한 논문 「Parental Conditional Regard: A Meta-analysis」에서 부모의 조건부 인정과 자존감의 불안정성, 우울 증상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부모가 기대에 부응하는 정도에 따라 애정과 승인을 달리할 때, 자녀는 외부의 기준을 자기 가치의 척도로 삼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연관성은 우이광의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누군가의 칭찬을 얻기 위해 시작한 노력이 어느 순간 자신을 심판하는 내면의 목소리로 바뀌는 과정. 부모가 곁에 없어도 평가의 시선은 사라지지 않고, 아이는 자신을 감시하는 또 하나의 어른을 마음속에 만들어 낸다.
아이의 삶을 제한하는 가장 익숙한 명분은 사랑과 보호다. 부모는 자녀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며 선택에 개입하고, 학교는 학생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성적과 행동을 관리한다. 성공을 향한 열망이 클수록 아이가 실제로 원하는 삶은 중요성을 잃는다. 부모의 두려움은 아이의 의무가 되고, 학교의 평판은 학생이 감당해야 할 성과가 된다. 『그 소녀』에서 교육은 개인의 가능성을 넓히는 과정인 동시에,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를 미리 결정하는 제도로 작동한다. 아이를 위한다는 확신이 아이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순간, 보호와 통제는 같은 문법을 사용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이루어지는 선택들은 가해와 피해의 경계마저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나 복잡한 사정이 언제나 가혹한 행동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샤오러는 우이광의 어머니에게 불행한 유년이나 특별한 희생의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가한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그 사람의 상처부터 찾아야 한다는 관습을 거부한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교사,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학생들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행동하지만, 그 이유들이 모인 세계가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것은 아니다. 성취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어른은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 가능성에 순위를 매기는 사람이 된다. 한때 평가받던 아이가 자라서 다른 아이를 평가하는 위치에 서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제도가 지속되는 힘은 바로 이러한 일상성에서 비롯된다.
우이광 역시 그 반복의 한가운데 서 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세계에서 살아남은 그녀는 이제 그 세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은 교사다. 어린 시절의 고통을 기억한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아이의 고통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견뎌온 경험을 기준으로 타인의 어려움을 가늠할 위험도 존재한다. 우이광이 제자의 죽음 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와 함께, 현재 자신이 어떤 어른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문제다. 피해의 기억이 타인을 이해할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잔인하면서도 중요한 깨달음이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 날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일까. 반대로, 그 상처를 여전히 안고 살아간다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일까. 우이광은 열일곱 살의 절망을 지나 일상을 이어왔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삶을 지속했다는 사실과 그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은 일치하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은 고통의 소멸을 보증하지 않으며, 성숙이라는 이름 아래 미처 이해하지 못한 감정들이 오래 보존되기도 한다. 과거는 기억 속에 고정된 장면으로 존재하면서도 현재의 관계와 선택에 개입한다. 한때 견뎌냈다고 믿었던 시간이 타인의 고통 앞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순간과 마주한다.
이러한 문제는 실제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최창용과 조슈아 P. 머스키가 2025년 발표한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and health-related outcomes in early adulthood: Evidence from the Korean Welfare Panel Study」는 한국복지패널의 종단자료를 분석해 아동기 역경 경험과 이후의 건강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특히 청소년기의 우울 증상이 아동기 역경과 초기 성인기의 우울 증상 사이의 관계를 부분적으로 매개한다는 결과는 과거의 경험이 이후의 삶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모든 상처가 동일한 경로를 거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의 생애를 하나의 연구 결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다만 성장의 시간이 반드시 치유의 시간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우이광의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읽게 한다.
우이광에게 제자의 죽음은 자신의 유년을 다시 해석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를 떠올리는 행위 자체보다, 과거에 부여했던 의미가 현재의 경험을 통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사건들을 연결해 하나의 생애를 구성하지만, 그 이야기는 완성된 기록처럼 고정되지 않는다. 어제까지 극복의 증거였던 시간이 오늘에는 외면해 온 감정의 흔적으로 읽힐 수 있다. 살아남았다는 말 역시 그러하다. 그 말에는 견뎌온 시간에 대한 긍지가 담겨 있으면서도, 그동안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슬픔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우이광의 성장은 과거의 소녀를 지워가는 일보다, 그 소녀가 겪었던 고통을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배우는 과정으로 읽힌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이 타인의 고통까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한 소녀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이유를 찾는다. 가정환경과 성적, 친구 관계와 심리적 어려움을 살피며 무엇이 비극을 불러왔는지 밝혀내려 한다. 그 노력에는 책임을 규명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동시에 누군가의 삶을 이해 가능한 원인과 결과로 정리하고 싶은 욕망도 작용한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이해했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한 사람의 내면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알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고통의 원인을 찾는 일이 고통받았던 존재의 전부를 설명하는 권한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우샤오러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작품의 서술 속에 보존한다. 죽음의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의 삶이 드러나지만, 그들의 경험은 하나의 정답을 완성하기 위한 증거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특히 우이광과 쑤밍쉬안의 고통은 서로를 비추면서도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다. 자신의 유년을 통해 타인에게 접근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그의 존재를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를 포함한다. 작품이 죽은 소녀에게 섣부른 설명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까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그 소녀』의 저항은 우이광 개인의 상처를 넘어선다. 자신을 억압했던 기준을 의심하는 일, 그 기준이 다음 세대에게도 정당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피는 일,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경험으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서로 연결된다. 살아남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책임을 모든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고통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삶을 성적과 성취만으로 평가해 온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어른의 자격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견뎌냈는지보다, 자신의 경험이 타인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태도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원제 『那些少女沒有抵達』(그 소녀들은 도착하지 못했다)에는 도착하지 못한 소녀들이 있다. 그들이 도달해야 했던 곳은 누구의 기준으로 정해졌을까. 어떤 삶은 정해진 시간표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어떤 삶은 그 시간표를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선택을 발견한다. 우샤오러는 살아남은 한 사람의 현재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 소녀들의 시간을 함께 기록하며, 성장과 성공을 동일한 말로 취급해 온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누군가의 삶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성장의 비유로 소비할 수는 없다. 그 삶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억에서 지워서도 안 된다. 도착하지 못한 소녀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지금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어떤 목적지를 강요하고 있는지 살피는 일과 연결된다. 그 소녀들이 미처 살아보지 못한 시간 앞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성장의 순서와 성공의 기준은 더 이상 이전처럼 자명할 수 없다.
✏️도서출판 빈페이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