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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평점 :
불행에도 예절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지어야 할 표정과 슬픔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식, 타인의 위로에 응답하는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비극을 겪은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감당하는 동시에 그것이 진짜 고통임을 증명해야 한다. 카메라 앞에서 흘리지 못한 눈물은 의심을 사고, 무심코 지은 웃음은 인격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슬픔의 진정성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내부에서 발생하지만, 그 진정성을 승인하는 권한은 어느새 타인의 손으로 넘어간다.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는 이러한 감정의 사회적 규율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한 인간의 삶이 타인의 해석에 의해 얼마나 쉽게 재편되는지 보여준다.
결혼 5주년 아침, 아내 에이미가 사라진다. 남편 닉은 아내의 행방을 알지 못하고, 경찰은 집 안에 남겨진 흔적들을 조사한다. 실종 사건은 곧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며, 닉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건을 해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결혼생활은 행복했는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질문들은 실종된 사람의 행방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내면으로 방향을 바꾼다. 사적인 관계의 역사는 공적인 검증의 대상이 되고, 한 사람의 성격과 습관은 범죄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자료가 된다. 닉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건에 관한 설명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증명이다. 인간의 얼굴에는 감정의 흔적이 드러나지만, 그 흔적을 읽는 방식에는 관찰자의 기대가 개입한다. 같은 침묵도 누군가에게는 충격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으로 받아들여진다. 슬픔의 표준을 벗어난 반응이 의심받는 까닭은 우리가 감정을 특정한 표정과 연결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감정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플린은 이 간극을 이용해 인간이 타인을 판단할 때 얼마나 많은 부분을 추측으로 채우는지 드러낸다. 얼굴은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그 얼굴의 의미는 보는 사람의 경험과 욕망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공개적인 신체의 일부가 가장 사적인 오해를 생산하는 셈이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상대의 현재보다 그에 관해 축적해온 기억을 먼저 읽는다. 부부는 서로의 습관과 취향을 알고, 일상의 사소한 변화를 알아차리며, 오랜 시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함께 보낸 시간의 길이가 상대를 이해하는 깊이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익숙함은 관찰을 생략하게 만들고,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성격은 새로운 행동을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굳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상대가 실제로 어떤 말을 하는지보다 그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근거로 말을 이해한다. 친밀함이 깊어질수록 타인을 새롭게 발견하는 능력은 오히려 둔해질 수 있다.
연애의 시작에서 인간은 자신을 가장 매력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농담에 조금 더 크게 웃고, 관심 없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불편한 성격을 적당히 감춘다. 관계를 맺기 위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조정에는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작용한다. 어빙 고프먼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무대에 비유했듯, 우리는 타인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그 표현에 대한 반응을 살핀다. 고프먼의 관점에서 자아는 타인과 분리된 채 완성되는 실체라기보다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되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무대 위의 배우가 관객의 반응을 의식하듯, 인간 역시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하며 그 역할에 걸맞은 인상을 유지하려 한다. 문제는 사랑받기 위해 선택한 모습이 어느 순간 상대에게 약속된 성격처럼 취급된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호의였던 행동이 의무가 되고, 자발적인 배려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굳어진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만들어낸 가장 좋은 모습이 이후의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를 찾아줘』의 결혼생활에도 서로가 기대하는 역할의 무게가 짙게 실려 있다. 닉과 에이미가 기억하는 과거에는 서로에게 매혹되었던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의 매력은 시간이 흐르며 현재의 불만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경제적 불안과 생활환경의 변화는 두 사람의 관계에 새로운 조건을 부여하고, 한때 사랑했던 성격은 다른 맥락에서 불편한 특성으로 읽힌다. 여기서 결혼의 시간은 두 사람이 함께 변화해온 역사이면서 서로의 변화를 평가해온 기록이기도 하다. 상대가 달라졌다는 불만에는 자신이 사랑했던 모습을 계속 유지해주기를 바라는 욕망이 숨어 있다. 인간이 변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사랑 안에서는 종종 배신처럼 받아들여진다.
사랑에는 상대를 알고 싶어 하는 욕망과 상대에게 알려지고 싶은 욕망이 공존한다. 우리는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누군가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면서도, 그가 자신을 단정하는 순간 답답함을 느낀다. 타인의 이해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그 이해의 한계에 저항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다는 소망에는 자신조차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숨어 있다. 그러나 타인의 이해가 완전해지는 순간을 상상할수록, 그 이해 속에서 허용되지 않을 자신의 가능성 또한 의식하게 된다.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도 설명되지 않는 영역은 존재한다.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그 영역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할 뿐, 그것을 소유할 권리까지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관계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쉽게 흐려진다. 상대를 잘 안다는 확신은 그가 자신의 예상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기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플린은 이러한 사적인 확신이 사회적 판단과 만나는 과정을 냉소적으로 그려낸다. 실종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은 닉의 말과 행동을 선택하고 배열하며, 대중은 그 장면들을 통해 한 인간의 도덕성을 평가한다. 몇 초간의 웃음과 침묵,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의 내면을 설명하는 자료로 소비된다. 개인의 감정은 화면에 적합한 길이와 형태로 편집되고, 복잡한 관계의 역사는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정돈된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불행을 목격하면서 동시에 그 불행을 해석하는 즐거움에 참여한다. 사건의 진상을 기다리는 인내보다 누가 어떤 인간인지 먼저 규정하는 만족감이 앞서기도 한다. 오늘날 이러한 판단은 짧게 편집된 영상과 온라인 댓글을 통해 더욱 빠르게 확산된다. 하나의 표정이 맥락을 잃은 채 유통되고, 반복된 의혹은 어느새 검증된 사실과 비슷한 무게를 얻는다. 판단에 참여하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그 판단에 책임지는 사람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언론이 제공하는 것은 정보와 함께 인물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어떤 장면을 먼저 보여주는지, 누구의 말을 인용하는지, 어느 표정을 반복해서 재생하는지에 따라 대중의 판단은 달라진다. 푸코가 진실의 생산과 권력의 관계를 논의했듯,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진실은 그것을 전달하고 승인하는 구조와 분리되기 어렵다. 『나를 찾아줘』에서 공적인 시선은 사건을 밝히기 위한 감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개인의 삶을 일정한 서사에 맞춰 해석하도록 압박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망은 때로 한 사람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축소하려는 욕망과 결합한다. 사람들은 복잡한 현실보다 인과관계가 분명한 이야기를 더 쉽게 믿는다.
소설의 형식은 이러한 인간의 인식 습관을 독서의 과정으로 옮겨놓는다. 닉의 현재와 에이미의 과거가 교차하면서 독자는 두 사람이 공유했던 시간을 서로 다른 언어로 접한다. 하나의 결혼생활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다른 순서와 무게를 얻는다. 같은 사건도 그것을 설명하는 목소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독자는 어느 진술에 더 설득되는지 끊임없이 선택하게 된다. 플린은 정보를 제한하고 시점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독자의 판단을 유도한다. 독자는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면서도 자신이 어떤 인물에게 호감을 느끼고 어떤 태도를 의심하는지 확인하게 된다. 독자는 소설의 심판석에 앉아 있다고 믿지만, 자신이 내린 판결의 근거 또한 작가가 배치한 언어와 장면에서 빌려온 것이다. 심리 스릴러의 긴장은 단서가 축적되는 속도와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 사이에서 형성된다. 독자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싶어 하지만, 그 욕망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로 이야기를 완성하려는 조급함을 동반한다. 길리언 플린은 이 조급함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는다. 독자의 확신이 서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추리의 즐거움에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해야 하는 불편함이 스며든다.
『나를 찾아줘』라는 제목에는 한 사람의 행방을 찾는 사건의 표면과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겹쳐 있다. 우리는 타인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인물로 존재하지만, 그 기억이 자신의 전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소망과 그가 이해한 모습에 갇히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한 사람의 내부에서 동시에 작용한다. 타인에게 발견되기를 바라면서도 그가 부여한 의미만으로 자신의 존재가 완성되는 것을 경계하는 인간의 모순이 그 안에 있다. 길리언 플린은 가장 가까운 관계를 통해 인간이 타인의 삶을 얼마나 성급하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얼마나 쉽게 진실로 받아들이는지 드러낸다. 누군가를 오래 사랑했다는 사실은 그 사람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과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삶의 영역이 존재한다.